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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un 28. 2023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릴레이소설


 “키스 한 번만 해볼래요?”

 숨결이 고스란히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물었다. 심장박동이 위험할 정도로 빨라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그를 피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더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가까워지니 그의 시선이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의 눈빛이 너무 집요해서 겹쳐지는 입술을 차마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갇혀버렸다. 얼굴 사이로 뜨거운 열이 오갔고, 나는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귀가 먹먹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몽롱해졌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내 뒤통수를 감싸고는 부드럽게, 하지만 깊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몸에 힘이 풀렸고 그런 나의 변화를 눈치챈 듯 그는 내 목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쌌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완전히 가둬진 품 안이 무서우면서도 안락했다.

 조금 전, 잠이 안 와 잠깐 산책이라도 하려고 나섰다가 달빛 아래에서 솜사탕을 냠냠 먹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잘생겼다.’ 나는 그에게 홀린 듯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이윽고 우리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의 묘한 긴장감에 나는 먼저 눈을 피했지만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볼이 붉어지고 심장이 제멋대로 박동을 높였다. “... 이거 드세요!” 익숙하지 않은 감정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그가 가까이 걸어온 것도 몰랐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가 내민 솜사탕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지난번엔 정말 감사했어요. 진심은 전해지는 거잖아요. 그날 저에게 해주신 따뜻한 말들이 무엇보다 위로가 됐어요.”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다. 맑은 눈빛, 오뚝한 코 그리고 통통하고 반질거리는 붉은 입술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 입술에 한 번만 짧게라도 입 맞춰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얼굴이 뜨거웠다. 퍼뜩 스스로가 한심해 찬물이라도 마시고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공기의 흐름이 무거워졌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그의 집요하고 끈질긴 눈빛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다.

 그와의 키스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맛이 났다. 내 입 안에 팡팡 터지는 아주 달콤한 캔디가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이 아주 생생해 온몸이 달달했다. 그리고 동시에 설명되지 않는 야릇한 느낌이 나의 발끝부터 타고 올라왔다. 입술이 맞닿아 밤의 고요를 채우는 소리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열이 펄펄 끓어 넘쳤다. 나는 몇 번이고 그의 다정한 손길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찔한 긴장감에 달싹거리며 온갖 데가 다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참을 얽혀있던 혀와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지자 나는 몸의 긴장이 풀려 버려서 비틀거렸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그의 얼굴이 또다시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복잡하고 미묘한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문득 이 위험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을 끊어내야 한다는 방어 기제가 발동됐다.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나한테 왜 키스한 거야?”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는 마치 오랜 시간 날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너무나 당당한 모습이었다. 내 인생에 엄청난 폭풍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 양가감정의 늪에 빠졌다. 그런데 거칠 것 하나 없이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그를 감당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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