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가 시작됐다. KT 위즈는 가장 먼저 144경기를 채워서 다른 팀들이 경기를 하는 동안 제일 오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팀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얼른 가을 야구가 시작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된 가을 야구는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다웠다. 두산 베어스가 올라올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4위 팀인 NC 다이노스가 5위 팀 두산 베어스, 3위 팀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차례로 연승하며 파죽지세로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한참 물이 오른 NC 다이노스와 20일이나 쉰 KT 위즈의 첫 경기는 참혹했다. 우리 팀은 너무 오래 쉬어서 아직 몸이 덜 풀린 것인지 수비 실수들이 나왔고, 상대 팀은 그런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점수를 올렸다. KT 선발 투수 쿠에바스 선수와 NC 선발 투수 페디 선수, 각 팀의 에이스 투수 싸움에서도 밀렸다. 경기를 보면서 기대했던 것만큼의 좋은 공이 아니었기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속상해하는 쿠에바스 선수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니 너무 안쓰러웠다. 9:1로 지고 있던 KT가 막판에 만루 홈런으로 4점을 추가 득점했지만 역전 없이 경기가 끝났다. 그래도 나는 1차전 경기로 선수들 몸이 좀 풀렸을 거고, 이제 감각도 찾았겠지 싶은 마음에 우리가 갈 2차전 경기가 기대됐다.
2차전 경기 날, 우리는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야구장에 도착했다. 우리도 일찍 간다고 갔는데 야구장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었다. 외야석은 비지정석이기 때문에 선착순으로 자리를 고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2시간 전부터만 입장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더 일찍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우리가 입장했을 때는 자리를 고를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운 좋게 KT 불펜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덕분에 몸을 풀고 있던 KT 위즈 야구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구자로 온 연예인과 치어리더 누나들에게도 인사를 받은 겸이가 무척 기뻐했다. KT 위즈파크 외야석은 돗자리를 깔고 앉을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소풍 나온 것 같은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탁 트인 야구장의 경치도 너무 좋다. 겸이는 돗자리에 앉아 가져온 장난감으로 놀았다가 책도 읽었다가 숙제도 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경기 시작 전까지 먹고 또 먹었다. 야구장에서 먹는 음식들은 왜 이렇게 다 맛있는지 모르겠다. 야구장에서는 그냥 뭘 먹어도 맛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경기가 시작했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할 준비를 했다. 가을 야구는 그동안 봐왔던 야구장 열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뜨거웠다. 모든 좌석이 팬들로 가득 찼고, 모두가 일어나 목청껏 응원했다. 나 또한 응원할 야구팀을 KT 위즈로 정하고 첫 직관 경기였기 때문에 더욱 열정이 가득했던 것 같다. 드넓은 야구장을 가득 메우는 함성 소리가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나도 이 열기에 힘입어 10월 말 늦은 저녁에 얇은 티 한 장만 입었는데도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응원에 가담했다. 한 선수 한 선수 전부 집중해서 바라보며 응원을 보내고 우리 팀 선수들이 출루할 때마다 기쁨으로 돌려받았다. 휙 하고 치는 방망이 한 번에 뛸 뜻이 기뻤다가 아쉬움에 몸부림치기를 반복했다. 한 경기 동안 기분의 굴곡이 몇 번이나 올랐다가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평소 내 기분의 굴곡은 잔잔한 편인데, 이 날 야구장에서 단 몇 시간 동안은 그래프가 아주 큰 폭으로 요동 쳤다. 한껏 기뻤다가 한껏 아쉬웠다가 한껏 즐거웠다가 한껏 화났다가 모든 기분이 정도 없이 끝과 끝을 찍었다. 나는 야구장의 과열된 분위기에 흠뻑 취해있었다. 이것이 바로 가을 야구의 매력인 것 같다.
비록 경기는 아깝게 졌지만 목청껏 소리 지르고 에너지를 표출했기 때문인지 무언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마지막 수비수가 공만 놓쳤어도 역전이었기에 꿈에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쉽긴 했다. 다음 날 하이라이트 영상을 틀고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아쉬움을 곱씹기도 했다. 그렇지만 맥주와 음식을 그렇게 많이 먹고도 0.6kg이나 빠져있는 몸무게를 확인하며 역시 가을 야구는 옳다고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평일이라 무리해서 다녀왔지만 개인적으로 득이 더 많았던 가을 야구장이었다.
KT 위즈가 NC 다이노스에게 연속 두 번을 졌지만 앞으로 두 번 연속 이긴다면 나는 5차전을 다시 직관할 수 있다. 이럴 줄 알고 5차전 티켓도 성공했나 싶다. 5차전 티켓을 구매할 때만 해도 이 티켓을 쓸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이 티켓을 사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가을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