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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균희 Aug 09. 2023

내가 걷는 이 길이 재건축 부지일 때


  골목을 걸으면 나란히 좌우했던 작은 상점들이 짐을 빼기 시작했다. 세탁소부터 시작해 작은 언론사, 계란집, 떡집, 식당들을 넘어 PC방을 마지막으로. 높이가 낮은 아파트 사람들도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보금자리였던 옛날식의 빌라, 주택도 의미를 잃은 티를 냈다. 이사하면서 더미들로 나오는 쓰레기, 쓰레기를 포장하듯 덮어놓은 천막, 깨진 유리창, 빈 집을 쉼터 삼아 오가는 작은 동물들. 사람 소리는 줄어들고, 폐허가 무엇인지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어느 날 모든 유리창이 터진 작은 아파트 두 동의 잔해와 귀를 울리는 소음 그에 반해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트인 하늘은, 지던 노을을 더 짙고 지게하는구나 싶었다.


 재건축 부지 아래 계획은 울려퍼지기 보다 작고 두꺼운 종이로 붙여졌다. 사람들의 말은 폐쇄적으로 오갔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 들면 어느 구석에 가야했다. 입주와 퇴거의 보상에 대한 각각의 욕망들이 부딪쳐 오른 갈등이 카더라로 올라왔다 금세 내려갔다.


 재건축 기준에 달하지 못한 건물들, 보상금도 안 받겠다 버티던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부서졌다. 공사를 위해 가벽이 세워졌다. 사람들은 썰물처럼 물러갔다. 해가 져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에 주민들은 귀가 시간을 앞당겼고, ‘동네’는 축소되어 조용해졌다. 인정 받지 못한 차량들이 곳곳에서 몰려와 불법 주・정차로 길을 점거하고, 갈 곳 없는 이들이 밤부터 새벽을 넘나들며 떠들다 갔다. 밤이 지나면 새벽 6시부터 철거와 공사로 이슬을 맺을 공기가 깨졌다. 먼지가 자욱이 일어나고 그를 잠재우기 위한 물이 위에서 아래로 분사되는 날들이 한참 이어졌다. 언덕을 깎겠다는 건설사와 시의 허가로 땅도 구멍이 나고 타르로 땜질이 됐다. 새 아파트 규모에 따라 기존에 있던 길은 폐쇄되었다. 불법 주・정차 사이로 겨우 차와 사람들이 오갔다. 제일 먼저 교통을 위해 찻길이 다듬어졌고, 시간이 꽤 지나 가로등이 켜지는 밤과 노인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인도가 생겼다. 하지만 기존의 길을 없앤 덕에 재건축 부지 주변에 있는 학교와 복지회관에 가야하는 학생들과 노인들은 길을 멀리 돌아가야한다. 돌아가지 않으려고 어느 아파트를 통과하려고 하면 반대에 부딪힌다. ‘우리’와 ‘우리’는 각각 다른 목적으로 부딪친다. 이용하지마라, 일단 누가와도 시끄럽다, 길을 이용하며 버린 쓰레기들, 놀이터를 점거하며 뿜어내는 학생들의 험악한 분위기에 노출될 우리 아기들은, 하면 우리는 노인인데 돌아가야하나, 봐주면 안 되나, 학생들도 다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이야기들이 곳곳 솟는다. 아파트 주민들은 투표도 한다, 이들을 봐주냐 안 봐주느냐. 결과로 길을 마주하는 세대들의 반대표가 컸다. 해당 구성원들의 사회는 구성원들이 지켜냈다. 모두가 같은 이해를 갖진 않았어도.


 재건축 부지를 조금 지나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건설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백반 식당이나 한식 뷔페가 노골적으로 들어섰다. 장을 볼 수 있는 마트는 손에 꼽고 편의점은 곳곳에 있다. 은행과 상점 이용 등 거주자들의 편의는 버스를 타고 나가거나 15분 이상은 걸어야하는 값을 가져야 생긴다. 적은 거주 세대들을 향한 상점은 열려있기 힘들다. 외부가 이러한 한편 거주 세대의 내부도 심상치가 않다. 진행 중인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이들이 전,월세로 들어와 임시 거주하면서 없던 일들이 생겼다. 고층에서 창문 밖으로 오물을 버리는 행위, 반려견 산책 후 배변을 처리하지 않는 행위, 세대 내 흡연에 따른 불편 및 층간소음 갈등 증가로 관리사무소의 방송이 크고 길어졌다. 기존 거주 세대는 달갑지 않다. 분위기 조차 달라지는 것이 탐탁지 않다. 재건축이 끝나고 새롭게 2천 세대에 가까운 이들이 30층 높이에서 내려와 같은 장소를 쓰는 일은, 시간은 어떨까. 서로 동네의 성원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분위기와 저 분위기는 융합 될 수 있을까. 노후된 아파트, 새 아파트 주민이 서로 동네 ‘사람’으로서 인정은 할 수 있을까. 이 시의 이 동의 주민으로서 서로를 환대할 수 있을까? 당장의 건물 짓기로만 유지되는 소음과 거주하는 이들의 공통어린 나름의 침착 또는 조용함은 타인들의 입주를 거치며 달라질 것이다.


 공동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건축물 밀집 지역으로 재개발되는 해당 지역은 안양시 융창아파트 주변지구로, 기존 1561세대였으며 2021년 공사 착공, 2024년 준공 및 2517세대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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