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친해지기(마음 - 형 feat. 노라조.)
공부와 친해지기 위한 마인드 세팅 첫 번째 글에서 '공부'라는 행위(수단으로)로 자타가 인정할 만한 무언가를 성취해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었다. 나름의 노력을 해도 이룰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특정 시험에 합격을 한다거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거나 내가 아는 것만 물어본다거나 하는 요행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은 내가 공부한 것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어려워서 공부를 안 했거나, 이게 나오겠어하면서 보지 않은 부분을 물어보거나 문제의 내용이 있는 페이지까지 기억나는데 내가 떠올리고 싶은 내용만 기억이 안 나거나, 5가지를 물어보면 4가지는 생각나는데 꼭 마지막 한 가지가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 발생한다. 수업시간 전에 예습을 했는데, 제발 저 문제만 나한테 시키지 마라 했는데 하필 딱 그 문제를 시키기도 하고, 오늘은 내가 프레젠테이션(발표) 할 차례가 아니거나 나는 피피티 제작을 맡았었는데 발표까지 나에게 해보라고 한다. (머피의 법칙..) 60점이 합격인 시험에서는 59점을 받고, 분명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고 생각하라고 했는데 나만 어렵기도 하다.
공부와 친해지기 위한 마인드 두 번째는 공부하는 것이 곧 '시련'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며,
배를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하게 하여,
행하는 일이 뜻과 같지 않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성품을 인내하여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자신이 해내지 못하던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언제나 과오를 저지를 후에야
그릇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며,
마음속에서 번민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난 뒤에야 변하고,
또 그 번민이 얼굴빛과 목소리에 나타날 정도로 괴로움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깨우치게 된다.
안으로 법도를 지키는 권문세가와 (임금을)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밖으로 적국과 외환이 없으면 그런 나라는 언제나 망한다.
그런 뒤에야 우환 속에서는 살 수가 있으나,
안락함 속에서는 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 맹자(pyoub 블로거 번역)
맹자가 남긴 말이다. 이것은 어느 영역에서든 '특이점'을 지난 사람들은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는 말일 것 같다. 하늘('환경')이 주는 어려움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을 이겨내면 그 전의 자신과는 다르게 이전에는 해내지 못했던 일들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내 마음(뜻)은 이게 아닌데 일이 왜 이렇게 풀리지 않을까? 그 시련을, 고난을 이겨내서 자신을 과오를 바로 잡고 새로운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아이(즐기는 자, 유희하는 자)', 오버 맨시, 창조하는 자, 철인에 좀 더 가까이 간 사람이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준비를 하면 걱정이 없다.'는 뜻을 가진 유비무환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얼핏 보면 뒷부분 '우환 속에서는 살 수가 있으나, 안락함 속에서는 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는 내용과 대치되는 내용 같지만, 사실 두 문장에 안에 담긴 뜻은 같다. 사람이란 존재는 어려움과 시련이 없으면 사람이든 국가든 발전할 수 없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왜, 외부적인 자극이 있어야 더 발전하는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의 뇌 행동 실험실 마티유 부아 공티에 박사의 실험에 대해 소개하겠다. 젊은 성인들에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림과 휴식을 취하는 그림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아바타(조작 가능한 캐릭터)를 주고 두 종류의 그림을 아바타에 가까이 접근시키기거나 멀리 떨어뜨릴 때, 자신들의 아바타를 해당 그림에 다가가게(좇아가게) 만들면서 EEG(전자 뇌파 측정 장치)로 뇌파의 활성도를 측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휴식을 취하는 그림이 아바타에서 멀어질 때 가장 뇌파가 가장 활성화되어 적극적으로 아바타가 휴식을 취하는 그림을 좇아갔다. 즉, 활동을 할 때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위해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나'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어떤 일을 처음 할 때는 요령 피우지 않고 원칙대로 하려고 하지만, 그 일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일을 점점 더 모아서 기한이 거의 찼을 때 몰아서 하게 된다. 운동을 할 때도 당연히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운동을 실제로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시험공부를 해야 함에도 미루다 미루다 하고, 보고서를 써도 이제는 써야겠다 할 때 쓰게 된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도 5분이라도 더 자고 최대한 늦게 일어난다. 이 '게으름(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한 상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인간이 어느 정도 타고난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에는 '경쟁', '비교', '의무', '부담' 등 부가적으로도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이 더해지니 얼마나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들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직접적인 목적은 괴로움이다. 그렇지 않다면 삶의 이유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명징하게 보는 것. 이것보다 확실한 위안은 없다.
운명을 그대로 받아쓰듯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인생은 고통이요, 이 세계는 최악의 세계다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시민혁명이 실패하면서 헤겔의 낙관주의 철학이 쇠퇴하게 되자 주목받게 된 대표적인 염세주의 철학자이다. 내가 무언가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욕망이 있는 한, 그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도 그 기쁨은 잠시이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 때문에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고통받게 되고, 어떤 불행에서 벗어났다 싶어도 또 다른 종류의 고민거리와 걱정이 찾아오는 '고통'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네 삶이 늘 힘들어서 이 말이 맞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사람은 (소송을 통해) 어머니로 부터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 중 1/3을 받아내 평생을 풍족하게 살면서 교수하고 책 펴내고 살았던 사람이다. 솔직히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 (철학자로서 이론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사람이 보이게는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보통 중학교 2학년, 사춘기라고도 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는 생애주기에 공부하기 싫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한계다.. 왜 나는 평생 써먹지도 않을 수학 공부를 해야 하나.. 이게 행복일까? 공부를 잘하면 행복하게 될까? 이런 고민을 하기도 하고,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공부가 내 적성에 맞는지, 예술이 내 적성에 맞는지 등 속된 말로 '개똥철학'을 펴기도 한다. (글쓴이도 그랬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적인 부분은 종교 쪽(불교의 열반, 번뇌에서의 해방)에 가까워서 큰 참고는 되지 않겠지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말한 고통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부분은 정말 가히 아름답다.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명징하게 보는 것. 이것보다 확실한 위안은 없다. 운명을 그대로 받아쓰듯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련'을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먼저는 그렇게 했을 때 아래와 같은 일도 있게 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苦盡甘來(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고통을 견뎌내면 반드시 이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있고, 또 다른 것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성인지 감수성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전 재밌는 급훈에 '지금 공부하면 10년 뒤 남편(아내) 얼굴이 바뀐다.' 이런 내용도 있었고,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와 같은 감동적인 내용도 있었다.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어떻게 가르쳐주지도 않는 염세주의를 벌써 배워서 공부를 왜 하냐.. 돈 많이 벌면 뭐하냐.. 좋은 집에 살면 뭐하냐 그러면 행복하냐, 결혼해서 뭐하냐 잘난 사람이랑 살면 뭐하냐? 이런 말들을 하는데, 이 질문을 할 수 있고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돈이 많고, 정말 좋은 집에 살고, 정말 잘난 사람들과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외에는 '정신승리'다. 지금의 '고통'이 힘들다고 미래의 나의 성취를 포기하지 말라.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고통스럽다.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원을 잘 받는 곳에서 하는 공부든 힘든 일과 중에 하는 공부든 공부는 정말 삶의 큰 시련이고 힘든 일이다. 그것을 하고 있는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해도 된다.
나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일단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는 '내가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걷는 길을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 재능이 남다르다. 이 사람들은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그 길을 가면 된다. 육아 관련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주제가 '영재'였는데, 거기 영재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가 영재인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영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누가 봐도 영재는 그냥 영재라는 것이다. 그 외에 범인들은 모두가 운명적으로 의무교육 과정을 거치며 '공부'를 해야 한다. 나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을 하고 싶으면 그 일로 먹고살 수 있는 상업성이 있는 정도의 능력인지, 빠르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거기서 먹히지 않는다면 '공부'가 낫다. 예술병(운동선수병) 걸리면 진짜 답이 없다.
너는 가을에 노랗게 변해 떨어지는 나뭇잎 같아.
자기 소멸이 너무 슬퍼 울고 있는 나무 이파리 말이야.
새로 초록이 올 거라고 봄이 되면 다시 옷을 입게 될 거라고 이야기해주어도
넌 흐느끼면서 말하지.
"아냐, 그건 내가 아냐. 그건 다른 나뭇잎들이라고!"
오! 몰상식한 나뭇잎!
넌 나무속의 영원한 힘 속에 깃들여 있어.
이 힘은 모든 나뭇잎 세대를 통해서 생사에 구애받지 않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나'를 너무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말고, 이 '사회'에 속한 하나의 개체로 보자. 개인의 자아 자체를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면 남도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특별한 존재라는 개념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삶은 '고통'이라는 것과 그 '고통'을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노래한 너무 멋진 노래가 있다. 지금 삶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하라고 해서 해야 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모두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시련'을 겪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힘냈으면 좋겠다.
삶이란 시련과 같은 말이야
고개 좀 들고 어깨 펴 짜샤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 보니 괜찮더라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바람이 널 흔들고 소나기 널 적셔도
살아야 갚지 않겠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세상에 혼자라 느낄 테지
그 마음 형도 다 알아 짜샤
사람을 믿었고 사람을 잃어버린 자
어찌 너뿐이랴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세상이 널 뒤통수쳐도
소주 한잔에 타서 털어버려
부딪치고 실컷 깨지면서 살면 그게 인생다야
넌 멋진 놈이야
- 노라조 '형' (이영준, 이상준 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