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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이 Jan 24. 2022

흙수저(불행한 운명, 환경) 타령은 언제까지?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하라 미쓰요) 리뷰 2.

오하라 미쓰요는 자신이 다니던 미용실의 미용사에게 진로상담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여 미용학교에 합격했다. 합격통지서를 들고 선생님과 부모님께 찾아갔지만 선생님을 미쓰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도 전에 머리 꼴이 그게 뭐냐고 타박을 주었고, 부모님은 미쓰요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기술학원에 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다시 한번 배신감과 절망을 느낀 미쓰요는 지난 시간들보다 더 위험하고 정도가 심한 범법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야쿠자 두목의 아내가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자신도 잘 따랐던 아버지의 친구(오히라)를 만나게 된다. 그 아저씨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어려움에 처한 아이가 있으면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 아이들에게 맞는 자격증 같은 것을 따게 하고 취업을 알선해 주어 스스로 먹고 살 능력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애들은 부모를 고를 수가 없어. 애들은 아무 죄도 없으니까. 어른이 돕는 건 당연한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당시의 내 모습을 공개하자면,
항상 몸매가 확 드러나는 몸에 딱 붙는 옷을 차려입고,
짙은 화장에 긴 손톱에는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데서나 던힐 담배를 피워 물곤 하는 그런 천박한 모습이었다. (p.142.)


오히라 아저씨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 인 미쓰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여 미쓰요에게 '인간 대접'을 했고 그 진심을 믿고 받아들인 미쓰요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여전히 반항심에 가득 차 있던 나는,

"이제 와서 새 삶을 살라고요?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죠? 내가 왜 이렇게 돼버렸는지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국 내가 어찌 되든 책임도 안 질 거면서,
입바른 소리로 설교하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도 내가 새로운 삶을 살길 원한다면,
아저씨가 날 중학교 시절로 돌려보내 달란 말이에요." 참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해버렸다.

이 말을 들은 오히라 아저씨는, 이때 처음으로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물론 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건 너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지.
부모님한테도 주위 사람들한테도 책임이 있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정신 못 차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건 모두 네 책임이야.
자기가 잘못해놓고 언제까지나 뻔뻔스럽게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작작 해라!
그런다고 누가 알아줄 줄 알아?
누가 네 인생을 책임져준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다른 손님들이 놀라 들고 있었던 커피 잔을 놓칠 만큼 큰소리로 아저씨는 날 혼내셨다.

'아저씨... 언제나 다정한 아저씨가, 이렇게 화를 내시다니...'

벼락을 맞은 듯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겨우 날 인간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이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단을 맞아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건 너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지.
이 말이 내 머릿속에서 한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난 처음으로 오히라 아저씨의 진심을 깨닫게 되었다.

'아저씬 진짜로 날 걱정해주시는구나..
이런 날 인간이라고, 그래도 인간 대접을 해주시는구나...'

너무나 기쁜 나머지 몸이 떨려오는 듯했다.
그러고는 이제까지 태연한 척 참고 있던 눈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다.
창피함도 무릅쓰고 오열했다. (p146-148.)


우리는 태어나는 가정을 직접 선택할 수는 없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가정형편에 따라 특정 재질로 된 수저로 태생적인 환경을 나타내는 말이 미디어에서 많이 출현하고 있다. SNS나 TV 프로그램 등에 출현하는 소위 금수저(부자) 2세 등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관심을 받는 셀럽이다. 일각에서는 돈 많으면 다냐는 식의 입을 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 뿌리에서는 그 상황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역에서 한계까지 가져본 사람은 그 영역에서 자격지심(질투)이나 결핍이나 미련을 느끼지 않는다. (덜 느끼거나 굳이 남일에 입댈 정도로 질투가 폭발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오히려 필자의 경험상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커질수록 정치를 하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SNS에서 본인이나 본인 주변 지인들의 정보를 함부로 노출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매스미디어, SNS의 이런 프로그램과 게시물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아주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경제지표 관련 여러 통계자료들(중위소득표 등)을 보면 풍족하게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방송, 유튜브, SNS 등에는 자신의 형편보다 무리를 하더라도 가장 있어 보이는 모습,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받는 관심은 우리의 인정욕이나 지배욕을 채우는 아주 훌륭하고 쉬운 수단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유명해지는 만큼 채워지는 지배욕은 아주 매력적이어서 공중파 방송에 출현하는 사람들조차도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해 노력할 정도이다. 금세 들킬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지 자신의 금수저 집 딸이라고 하기도 하고, 가짜 명품 옷을 입으면서 진짜인 척하기도 한다.


요즘은 아주 어린아이들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기술발전의 결정체인 기계와 수단을 가지고 온갖 (상업적 목적을 가진) 정보들에 노출되게 되고 자신의 환경을 그것에 맞춰 비관하고 판단하게 된다. 또 좋은 정보들도 많지만 예전보다도 나쁜 행동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정보들에도 더 쉽게 노출되고 여러 합법적인 플랫폼을 통한 불법적인 접촉이 더 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행'의 행동적, 지역적 범위가 더 넓어지고 경험하게 되는 시기도 더 빨라졌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청소년, 청년들은 더 쉽게 스스로의 가치를 놓아버리고 포기하게 된다. 미쓰요와 오히라 아저씨의 대화에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부모님 탓에 더 쉽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분명 그 삶의 주체인 본인의 탓이다. 범법행위, 비행을 일삼는 사람들(청년, 청소년들을 포함하여)을 보면 대부분이 결코 혼자서 뭘 하지 못한다. 학교폭력의 주체인 일진들도 자기 무리들이 있고, 비인격적 성범죄인 N번방의 경우에도 그들만의 카르텔이 있었고, 사기를 칠 때도 미쓰요가 당한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할 때도 몇 명이서 짜고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집단지성(요즘은 인터넷 카페 등 커뮤니티에서 면면히 관찰된다.)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비슷한 범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존재와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그리고는 늘 같은 커뮤니티 안에서 활동을 하면서 나 말고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니까 내가 맞는 거야 하면서 상식도 벗어나고 윤리의식도 희미해진 채 본인도 인정하지 못하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 세계를 의존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집단지성에 기대는 근본적인 이유는 '외로움'때문이다. (그곳 말고는 그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소속감이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체 편협한 시각으로 지내다 보면 발전이 없어진다.


사람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는,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오히라 아저씨가 미쓰요에게 알려주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언제까지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작작해라! 그런다고 누가 알아줄 줄 알아? 누가 니 인생을 책임 저준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자신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가 내가 아닌 남에게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가정형편, 부모님의 생각 등이 본인을 힘들게 해 자란 환경이 안 좋았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남 탓해봐야 입만 아프고, 우스운 사람이 되고, 주변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피곤한 사람이 된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외로움'을 극심하게 느끼게 되고 여러 정신적인 질환이나 나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이라고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결과를 제공하고, 그 결과 또다시 원인이 되어 더 나쁜 상황으로 몰아넣게 된다.


남 탓하는 습관을 끊어내야 한다. 필요하면 주변 인간관계를 정리해서라도. 나에게 일어난, 일어날 모든 일은 나의 책임이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살아가는 것 차제가 고통이다. 내가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남들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더라도 그 환경만 탓해서 내 형편이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변명 하면서 뭔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절대 내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전 세계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도 현실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글쓴이가 겪어보지 못 어려운 고통들을 많이 겪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고통을 겪었든, 지금 어떤 상황이든 절대 자신을 놓지말고 정신을 부여잡고 고통 중에도 최선을 길을 찾아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 자신에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을 것 같이 힘들 때는 잠시 쉴 수는 있겠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 삶은 너무나 소중하고 나에게 주어진 삶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고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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