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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게 되면

by 연산동 이자까야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67) 이사장은 창설 멤버입니다. 이 이사장은 1990년대 초 부산예대 김지석 교수, 전양준 영화평론가 등과 같이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려고 움직였습니다. 문정수 시장 등 부산시 공무원들도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문화부 차관을 지낸 김동호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김 전 사장이 이를 수락하면서 1996년 9월 13일 개막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대의 영화제이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우뚝 섰습니다. 2011년 개관한 '영화의 전당'은 부산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21764_1684310509.jpg 지난 15일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지역 기자간담회'에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제신문DB

이 이사장은 중앙대 영화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경성대·중앙대 교수로 활동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영화제 초기 수석프로그래머로 뛰었고, 2002~6년 영화제 부집행위원장, 2007~16년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 발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2018년부터는 이사장을 맡아왔습니다. 지난해 연임됐습니다.


하지만 올해 28회를 맞은 영화제가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곪은 상처가 터진 거 같습니다. 사단은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입니다. 집행·운영위원장 등 공동위원장제가 도입된 후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사태는 커졌습니다.


영화제는 그동안 이용관 이사장이 오래 관여하면서 이 이사장 위주의 인사와 운영으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이 이사장이 전횡을 일삼는다는 불만이 팽배했습니다. 부산영화문화네트워크 등 영화계는 허 위원장이 복귀하고 비상대책위원회에 준하는 체제로 전환해 영화제를 안정화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영화제작가협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부산영화학교수자협의회 등도 이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이번 기회에 잘못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우리는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초심은 보통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오래하다 보면 초심을 잃고 돈과 권력에 취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오늘날의 부산국제영화제를 있게 한 인물로 여러 명이 있지만 그 중 이 이사장의 역할은 컸습니다. 다만 그게 오래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죠. 이 이사장은 이번이 곪은 상처를 도려낼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사태 수습 후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어느 누구 개인의 것이 아닌 부산시민과 모든 영화인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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