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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Oct 15. 2021

아침이 미운 불량엄마

그래도 나는 변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중에서도 내게 손꼽히는 힘든 과제를 이야기해보자면, 그건 매일 아침 보내는 시간들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아침형 인간"에 대한 책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한 번도 내 이야기라고 교감한 적은 없었다. '뭐 아침형 인간이 있으면, 저녁형 인간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새벽녘 동트기 전의 그 설렘을 기다리는 누군가는 아마 해질 무렵 모든 기운이 우주 밖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오묘함을 못 느끼겠지. 하루 종일 달궈졌던 땅의 열기도 사드러 들고, 허공에 떠다니던 미세먼지마저 어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은 그 저녁. 하루 종일 시끌시끌 대던 놀이터마저 차가워진 쇠 기운만으로 감돌고 있는 시간이다. 그 저녁을 난 사랑 했고, 그 저녁 공기를 사랑했으며, 그 저녁의 모든 내 상상력을 사랑했었다.


결혼 직후 나는 임신을  했고, 오롯이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건 열 달이 전부였던 내게 그 열 달은 지난 십 년간의 결혼 생활 중 가장 화려한 황금기였으며, 나는 아주 자유롭고 우아했다. 임산부라는 사회적 신분이 그렇게 나를 우아한 사모님으로 만들어 줄지 그 전에는 상상도 못 했으며, 평생 그 계급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시댁, 친정식구들은 소중한 생명에  마음껏 축하를 해주었고, 나는 나라를 구하기라도 한 듯 드높은 콧대를 하늘을 향해 찔러대던 시기였다. 당시,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만이 유일무이한 책임만이 있었으며, 낭만 가득한 저녁을 즐겨대기에도 적격의 시간들이었다.


"아 결혼하니 좋구나.

임산부가 되어 회사 안 가니 더 좋구나.

실컷 잘 수 있다!"




그러나 열 달 후 내 큰딸이 태어났고, 그 낭만 가득 품은 저녁은 더 이상 내게 와주지 않았다.  작은 천사가 내게 와줌과 동시에 내 안에 작은 천국은 깨져버린 것 같은 아이러니한 무질서가 일어났다. 나는 새벽 수유를 위해 세 번, 네 번 잠에서 깨야 했으며, 과연 몇 시간을 잤는지 계산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연속된 쪽잠을 자게 되었다. "요 녀석이 과연 내 배에서 나온 게 맞나? 내가 이렇게 이쁜 코를 만들어줬나? 이렇게 이쁜 입술을? 어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왔을까..."싶어서 일부러 아기를 울려도 보며 유난을 떨기도 했지만, 내게 온 무질서는 내 몸뚱이는 물론이고, 내 영혼까지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아기와 함께 하는 달콤한 시간이 내 빼앗긴 저녁시간까지 잊게 해 주지는 못했고, 그렇다고 아침을 사랑하게 해 주지도 못했다. 그냥 아침도, 저녁도 미웠다.


"아가야 엄마는 잠이 너무 부족하단다... 어쩌면 좋지..."


우울증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될 만큼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고, 아기를 안고 재우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네온사인과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버스들이 너무 미웠다. 이 시각, 저 버스에서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창밖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쉴 새 없이 세상과 소통하느라 지쳐있는 내 몸을 조용히 식혀주었었다. 가끔은 잘생긴 학교 선배를 볼 때도 있었고, 연예인처럼 아주 예쁜 여자들을 보고 곁눈질로 몰래몰래 보며 부러움과 질투를 느낄 때도 있었다. 가끔은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 들어오는 그 길에도 휴대전화로 투박한 메시지를 주고받느라 지나가는 그 저녁을 아까워하며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음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늦은 밤 서른두 살의 나는 잠투정으로 아파트 전체가 울려 퍼질 듯 우렁차게 울어대는 첫째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벌을 서고 있었고, 그날 베란다 유리창에 비친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피곤하다...

아침은 피곤해서 힘들고, 저녁은 외로워서 힘이 드는구나......

엄마는 언제까지 이렇게 외로운 저녁과 괴로운 아침을 대접해야 하는 걸까"


이런 외로운 세월 속에서도 내 작은 생명은 태어났고, 누구보다도 더 맑은 눈을 가지고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서른넷의 나는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고,  언제나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내 날개옷도 이미 잊히기 시작했다. 내 날개옷, 어디에 두었더라. 그래서 다행히도 조금 더 수월하게 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는데, 여전히 나는 저녁시간이 되면 창밖에 지나가는 버스와 행인을 구경하고 있었다.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부럽기도 했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늦은 저녁 분유 사러 마트 한번 나가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던 것이, 아이들은 해가 지면 엄마를 그리도 찾는다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창밖의 공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트렌치코트를 입고 스카프로 목을 감싸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얼굴 아래 온몸이 느끼는 따뜻하고 오묘한 설렘이 올라오는데...... 아쉽기만 한 밤이었다. 가끔은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여도 좋으니 분위기 있게 그렇게 거리를 쏘다니고 싶었다.


저녁의 차가운 공기와 낭만 가득한 시간을 추억하자면 밤을 새울 수 있을 테다. 열다섯 살 때, 난생처음으로 시험공부를 위해 친구 손을 잡고 집 앞 독서실을 가보았는데 이것은 집 아닌 곳에서 공부를 해 본 첫 설레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소녀의 작은 일탈과도 같았다. 그날 나는 집에서 간단히 저녁밥을 먹고, 다시 저녁 공기를 마시며 독서실을 향해 갔고, 이미 나는 다 큰 여자가 된 것 같은 묘한 설렘까지 느꼈던 기억이다. 그날, 독서실 복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셔보았던  첫 자판기 코코아는 내가 마셔본 그 어떤 와인보다 가장 짜릿했었고, 늦은 밤 돌아오는 거리에서  숨 쉰 저녁 공기는 사춘기 소녀의 작은 해방을 노래하는 듯했다.




그 뒤에도  진짜 저녁을 느끼기 시작해 본 것은 내 나이 열일곱 살 때인데, 이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숨 막히는 입시공부의 출발선상에 놓인 상황이었다. 그전과는 달리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밤 아홉 시가 될 때까지 우리는 두 숨을 죽이며 공부해야 했었는데, 사실  틈만 나면 상상하기 좋아했던 나는 이런 평화로운 "자유시간(?)"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내가 갑갑했던 교실에서 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데에는 해 질 무렵 창밖에 보이는 교내 정원과 연못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일 테다. 아담한 연못, 장미덩굴, 백 년은 된 것 같은 고목들,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그 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참새 소리, 그리고 바람. 이 모든 것이 열일곱의 나를 눈물이 그렁그렁한 작은 시인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렇게 그리워만 하던 저녁의 낭만을 잊고 지내기 위해, 나는 조금 더 견디고, 숨기고, 주변을 보지 않는 습관을 몸에 들이기 시작했고, 오로지 내 아이들과 남편에게만 시선을 주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내 몸도 어느덧 저녁 9시가 되면 전원 뽑힌 선풍기처럼 힘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미 내가 사랑한 저녁을 잊었다는 것을 알았고, 신기하게도 기대하지도 않은 다음날의 아침을 위해 그 낭만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침을 열어주는 문지기가 되고 있었다.


덕분에 한동안은 피로가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내 지인들은 어디 아픈 게 아니냐며 내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폐인 코스프레와 같은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고, 다행히도 나는 주저 없이 계속해 나갔다. 나의 피곤함은 그렇게 단단하게 무뎌져 갔고, 내가 피곤한 건지... 피곤한 게 나인 건지 모를 만큼 우리는 이미 한 몸이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처럼 내 곁을 지나쳐버렸고,  내게 사십 대 중년 여성이라는 새 계급을 걸어주었으며 여기 베트남 호찌민에까지 날 데려다주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눈을 뜨면 암막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 오늘도 덥구나.. 어제도 더웠지.... 그래.. 내일도 덥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위해 아침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전쟁터 나가는 군인처럼 장엄한 얼굴을 하며 조깅복으로 갈아입었다. 한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던 유행과는 거리가 먼 주황색 러닝화를 챙겨 신고, 깜깜한 어둠을 뚫으며 굳게 닫힌 새벽 대문을 열었다.


 나는 남편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난다.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내가 만나는 새벽은 깜깜한 저녁과는 다른, 흰빛 품은 보라색으로 넘쳐난다. 아직 아파트 모퉁이로 깜깜한 밤의 기운이 미쳐 탈출 못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흐뭇하며, 밤새 숨죽였던 먼지 하나까지 다시 허공으로 떠다니기 시작하는 그 생명 가득한 아침을 보는 것은 내게 새로운 즐거이 되었다. 오늘의 그 보라 빛 바람은 지난밤 비가 와서인지, 더 차가워진 공기를 데려왔고, 잠시나마 여기가 일 년 내내 여름의 나라 호찌민이라는 사실을 잊게 해 주었다.


아직은 나 혼자 아침 독립을 하기에 의지가 많이 부족하여, 여전히 새벽을 함께 할 동지가 필요하며,  남편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내 남편과 부스스한 얼굴로 서로 대화할 힘도 없다는 듯 집을 나서지만, 오분만 지나면 우리는 수다쟁이가 된다. 그날의 아침 공기와 하늘, 나무, 먼지들이 어느 순간 우리 뼛속까지 파고들어 거침없이 재잘거리도록 만들어주며, 각자에게 몰입할 수 있는 명상과도 같은 시간을 제공한다.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했다. 세상에 나 하나만을 두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 남편도, 두 아이도 잠시 독립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았고, 내 아이 공부 걱정, 내 남편 회사 걱정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올 틈을 못 찾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나"

"내가 무엇이 부족하여 긴장하나"

"나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서있나"


아침이 싫었던 불량엄마, 저녁이 그리웠던 불량엄마도 이렇게 나이 먹으니 변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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