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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기 싫어서 화분을 샀어요?!

지저분하다는 집에 웬 식물?!

by 지연


청소는 너무 하기 싫지만, 깨끗한 집은 원했던 나.

나만 이상한 걸까? 아니면 너무 솔직한 걸까?

깨끗하고 잘 꾸민 집에 대한 내 기대치는 점점 커져 갔고, 현실에 대한 벽은 더 높아져 갔다. 앞으로 내가 나가야 할 길은 광막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정리해 주는 업체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곳조차 베트남에서 찾기는 힘들었고, 나는 결국 쌍심지를 켜고 서점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분명 도사의 해답이 적혀 있는 서적이 있을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유레카를 외쳤던 것은, 책장을 펼치기도 전이었다.



당시 서점 한 모퉁이에 ‘책을 읽어 보라’고 놓여 있던 작은 테이블과 화분 몇 가지가 왜 이리 나를 흥분시키게 했던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흥분이라는 감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고, 흥분과 동시에 평온함을 주는 아이러니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너무 평온해 보여서 내게는 더 큰 희열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평온함을 진정으로, 우리 네 식구가 북적대던 집에서 찾고 있었으니까.

그 서점의 모퉁이 공간은 그 누구도 그것이 껴안고 있는 평화를 간여하여 깨부수려 하지 않았다. 그 공기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치 수백 년간 그렇게 고요했다고 설명하는 듯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무음 모드로 바꾸고는(서점에 와서 책은 한 줄도 읽지 않고 사진만 찍어 대는 여자라는 애석한 시선은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열심히 핸드폰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그 사진이 그 사진 같았겠지만, 내 눈에는 순간의 공기가 움직이는 것조차 눈치챌 수 있을 만큼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답을 찾았다는 듯 조용히 원목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 검색창을 열었다. 초보자도 키우기 좋은 식물 리스트!



다시 말하지만, (지난 글에 이어) 내가 서점에 온 이유는 청소에 대한 팁을 얻거나 청소를 해야만 하는 동기부여를 얻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책상 옆에 놓인 화분 몇 가지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내 핸드폰 속 사진들이었다. 일단 저렇게 흉내 내다보면 뭔가 해답이 보일 것 같았다.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지만, 예뻐 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동기를 주는 듯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근처 식물을 파는 화원으로 그랩택시를 잡아탔다. 평소에는 와 본 적도 없는 동네까지 택시는 계속 갔고, 그래서인지 뭔가 내가 하는 행동이 더 신비한 탐험 속으로 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신이 났다. 화분 사러 가는 앨리스.




정말 낯선 동네 속에서 택시가 점점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고, 나는 ‘그래, 여기구나!’라는 뜻으로 나도 모르게 Stop을 외쳤다. 화원은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득 뿜어냈고, 여기저기 인조 조명등을 이용해 아이들을 더 예쁘게 비춰 주고 있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여사장님과 대화하는 것은 정말 최근 들어 도전한 소통의 벽 중 가장 큰 벽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단 한 번도 힘든 내색 없이 핸드폰 번역기를 보여 주며 마냥 웃어 주셨다. 말 한마디 못하는 한국 여자가 현지 화원에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 모습에 아마 작은 감동을 받으셨던 것 같다. 나는 미리 서점에서 조사해 간 식물 리스트를 베트남어로 번역하여 사장님께 보여 드렸다.



그렇게 나는 그녀가 가진 마법 같은 식물들 중 5가지의 식물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나의 식물에 대한 열정은 그 주에만 두 번이나 더 찾아감으로써 사장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쯤 되면 사장님도 나의 열정에 감동했다기보다는 집착과 강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엄청난 희열을 준 아이들이었기에, 그 주 세 번 정도는 들러서 해소했어야 했다. 식물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사장님의 개인 연락처를 받아내고야 말았고 하루에 한 번은 꼭 그분께 우리 집 화분의 상태를 물어보는 등의 무서운 의지를 보였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도 나와 식물에 대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었고, 내 폰에는 그녀가 "Plant Coach"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녀의 대화명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설레기도 한다.




맨 처음 식물이 5개 들어오고 점점 늘어나면서(물론 그 사이에 한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기도 했다) 나는 드디어 소파나 침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게는 천금불매 같은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내 집에 놓인 식물 몇 그루에게 내 집의 일부 공간을 내주면서, 나는 그 공간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그 공간 1미터 주변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씩 애처롭게 떨어지는 나뭇잎을 치우며 바닥을 매일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무들이 숨 쉴 수 있도록 창문을 수시로 열게 되면서 비로소 나도 에어컨 바람이 아닌 자연바람을 수시로 마실 수 있었다. 나무가 숨 쉬는 1미터의 여백을 지켜 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집을 정리하는 것이 즐거워졌고, 그 아이들에게 시선을 본격적으로 빼앗기기 위해 집안 잡동사니와 산만했던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혼자서 청소한다고 해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생색을 내고 싶을 만큼 마음이 옹졸해지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지금도 일어나면 아침 창문을 활짝 연다. 당시에는 베트남 호찌민에 거주했고, 현재는 같은 나라의 하노이에 살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그 여름의 더위는 아침부터 시작되는 곳이다. 나는 집 안에 수많은 생물을 보살피는 집사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연바람과 씰링팬(천장에 달린 큰 선풍기)을 최대한 활용하고, 아이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이 자연의 모습을 지키려 한다. 이렇게 아침부터 자연바람을 들여보내고 나면, 식물 하나하나에 다가가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잘 잤지? 오늘도 잘 보내 보자.



처음 키워 보는 식물이라 뭐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자그마한 수첩에 이름과 특징, 물 주는 법, 주의할 사항들을 기재해 두고 식물 옆에 항상 두어 필요할 때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오래된 잎은 떼어 주고, 더러워진 화분 주변은 물걸레로 닦아 주고,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가끔 위치를 바꿔 준다. 그러면서 인터넷을 통해 ‘청소하며 듣기 좋은 음악 리스트’를 뽑아 틀어 놓고 내 시간을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미 집은 청소가 다 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청소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예전의 나는 청소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깨끗한 집만 원하는 이기적인 존재였고, 자기반성적 성향은 강해서 ‘나 혼자 왜 이런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성향인지’ 스스로 많은 시간을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뜻밖의 한 건물 모퉁이에서 영감을 받았고, 나는 행동으로 바로 옮겼더니 모든 것이 해결됐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식물을 키워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식물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필요한 것, 그들에게 넘쳐나는 것을 소통을 통해 눈치채고 행동으로 빨리 옮길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뜻밖의 무언가가 당신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 서점의 한 모퉁이의 화분 한두 그루와 책상, 의자일 수도 있고, 서점 속 근사한 잡지에 실린 인테리어 사진일 수도 있고, 때로는 생기 넘치는 시장이나 마트 속 사람들의 에너지일 수도 있고, 가끔은 헬스장에서의 역동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우리는 기회를 열어 두어야 한다. 청소는 싫지만, 깨끗한 집을 원했던 나. 어디에서 영감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나는 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독자여! 무엇이든 하라. 무엇이든 보라. 무엇이든 들어라. 온몸을 열고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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