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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08. 2024
부금 4백만 원 사건의 전말 1
그 남자의 조용한 사정
[Web 발신]
농협132****7050
08/11 12:12 입금
부금 26
4,000,000원
잔액 104,051,089원
그때는 이러했다. 정오가 되면 그곳은 언제나 한 뼘 정도 되는 햇볕이 길게 담벼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그때마다 작은 먼지 부스러기들이 햇볕 사이사이로 낱낱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차가운 편의점 삼각김밥을 씹으며 풋내 나는 얼굴을 한 이글의 주인공 청년 박길태가 그곳, 좁고 어둡고, 그늘진 담벼락 구석의 작은 앵두나무 화단에 걸터앉아 있다. 빛을 피해 몸을 숨긴다면 그곳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지 어쩐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어두운 구석이다.
길태는 이곳 가좌도서관에 올 때마다 자주 이 화단 구석에 나와 앉아 있곤 했다. 화단은 늘 가래침과 담배꽁초와 찌든 담뱃재로 얼룩져있다. 청년은 도서관 열람실 책상에 한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책장을 넘기다가 인기척으로 소란해지면 이 화단에 나와 앉았다.
그리고 그때 길태의 낡은 폰에서 소리 없는 불빛이 반짝 빛을 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요란스럽게 지나갈 때쯤이었다. 길태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마치 꾸깃꾸깃 욱여넣어 터지기 직전인 종량제 봉투처럼 화단 옆에 웅크리며 폰을 움켜쥐었다.
또 그 입금 문자다.
오늘로 26번째다. 처음 이 청년에게 알 수 없는 입금 문자가 온 건, 2년 전이었다. 정오가 막 지난 2022년 6월 11일 12시 12분. 그날을 길태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보라매공원에서 청소년축제가 열리는 날이었고, 그가 닭강정 푸드트럭 알바를 하는 날이었다.
가뜩이나 축제 당일이 휴일이라 인파가 오전부터 몰려들었었다. 시간당 12,000원짜리 알바를 위해 그는 닭벼슬 모자를 쓰고, 눈두덩이 와 입술에 우스꽝스러운 닭 분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시에 따라 털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털 앞치마를 메고 펄펄 끓는 기름통 앞에 섰다. 유난히도 더운 초여름이었다. 튀긴 닭에 양념을 입혀 믹싱볼을 흔들 때마다 길태의 머리카락에서 눈썹 위로 땀이 연신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불빛이 일렁이며 바로 그 문자가 처음으로 박길태에게 왔다.
[Web 발신]
농협132****7050
06/11 12:12 입금
부금 1
4,000,000원
잔액 4,001,089원
이게 처음 온 의문의 문자 메시지의 정확한 내용이다.
처음 그 문자 메시지는 소리나 진동도 없이 세상 사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길태의 폰으로 몰래 날아들어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