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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Nov 29. 2023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9.

흰머리의 운전수

예쁜 애님은 내가 그동안 톡을 주고받고 있는 웹툰리뷰 전문 브런치 작가라는 걸 모르는 눈치다.

몇 년 전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카톡개정도 바꿨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녀와의 카톡방은 지금까지 오래된 아이패드 안에서 열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나에게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내가 이웃에 사는 그 숲해설사인지 모른 체 예쁜 애님은 나에게  숲해설사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밤만 되면 오래된 아이패드로 들어가 예쁜 애님이 털어놓는 은밀한 일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읽고 또 읽었다. 자꾸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이며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읽은 후에는 모른 척하면서 그녀의 일기장에 신중히, 그렇지만 가볍게, 답을 달았다.


흥미진진하네요. 뭐든 응원합니다.



- 선생님,


고양이를 찾은 후, 예쁜 애님의 메시지가 왔다. 서둘러 카톡을 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신 영화 포스터 위주로 프로필 사진을 올리던 그녀가 오늘은 낯선 남자랑 카페에서 다정하게 빵 먹는 사진으로 바꿔 올렸다. 프사를 꾹 눌러 사진을 최대한 확대했다. 사진 속 배경이 익숙하다. 집 근처 852 카페 토스트 같다. 두툼한 남자 손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다정하게 브런치라도 먹는지 젊은 남녀사이가 귀엽고 경쾌하다. 아니, 굉장히 신경 쓰인다. 나이가 들어도 질투라는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이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가슴속을 후벼 팠다.


- 선생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면 같이 식사해요.
- 아, 그럴까요?
- 선생님, 그럼 제가 근처 한정식 집으로 예약하겠습니다.     


그녀의 격식 있고 예의 바른 메시지에 나의 알 수 없던 불쾌한 기분은 금세 밝아져서는 날개를 달고 서재방 천정까지 올라가 붙었다.


- 여보, 오늘 나 약속 있어 나가는데, 당신 혼자 저녁 챙겨 먹어요.


누런 버버리코트의 소매를 끼우다 말고 와이프가 내 서재방을 벌컥 열며 말했다. 와이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게져서는 서둘러 폰을 서랍 깊숙이 감췄다. 의외의 이런 내 감정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뭐라고, 그저 이웃이고, 어리디 어린 젊은 아가씨를, 일적으로 한번 엮인 적 밖에 없는데 왜 난 그녀를 의식하는지, 내 감정을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만큼 한 번쯤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용기가 내 안에서 불끈 솟아났다.




그녀는 지하 주차장 3~4호 라인 앞에 서있었다. 나는 시동을 켜고 조심스럽게 그녀 앞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청색원피스 차림에 부드러워 보이는 녹색 조끼를 입은 그녀는 더없이 젊고 예뻐 보였다. 나는 팔을 쭉 뻗어 그녀가 편하게 차에 올라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여자를 자연스럽게 태우려면 팔이 길어야 한다. 팔이 짧아서 하는 수 없이 엉거주춤 안전벨트까지 풀고 온몸으로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 많이 기다렸어요?
- 아니에요.


그녀가 차에 올라타자 웬일인지 토실한 기운으로  안이 꽉 차게 느껴졌다.  슬쩍 그녀의 벌어진 하얀 치마 속을 본 것도 같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갖고 성공한 회장님의 능숙한 운전기사처럼 앞만 보고 열심히 길고 쭉 뻗은 도로를 달렸다. 흰머리의 운전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순수했던 어릴 적 소년이 되어 동네에서 제일 예뻤던 여자애 손목을 잡고 마을 어귀 나무 그루터기 들판으로 달려가는 듯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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