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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21. 2024

연애와 결혼사이

서울 문래동- 저 이 여자랑 결혼해도 될까요?

오랜만에 찾아온 문래동. 오늘의 메뉴는 1차로 돼지갈비다. 남자 둘이 술 먹기에 가장 만만한 곳이 사실 삼겹살 아니면 돼지갈비다. 어딜 들어가나 사실 실패하기 힘들거든. 고기가 다 구워지기 전에 이미 한 병을 비운다.

같이 마시는 이 친구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5년 차 대리다.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재테크를 해서 돈도 많이 모았다. 덩치만큼 듬직한 멋진 친구다. 현재 기계공학과를 나와 설비 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막역한 사이지만 문과를 졸업한 나와 다른 분위기가 아직 많이 보인다. 이과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말이 많거나 활발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라기보다는 점잖고,

Geek(괴짜스러운) 매력이 있는 느낌이다. 요즘 어쩌면 가장 인기 있는 이상형, 청바지에 후드티 입고 주변에 여자 없고 뿔테안경을 쓴 이과남자의 이미지. Nerd매력. 딱 그런 친구다.

근데 친구는 고기를 먹다 말고 고민이 있다며 심각하게 말을 꺼낸다.


“나, 얘랑 결혼하는 게 맞는 걸까?”

무던한 성격에 늘 상대를 경청하고 배려하는 친구다.

2년이나 사귄 여자친구는 듣기로 가끔 싸우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없는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 친구랑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는 없는데 막상 결혼하려고 하니, 고민이 되네"

친구는 연애로써는 좋지만 결혼을 할 때 이 여자친구와 많은 부분에서 부딪힐 것 같다고 걱정한다. 결혼은 연애와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기에 그렇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는 나이에서 혹여나 이 선택이 후회로 남을까 봐 고심하는 것. 한 번의 섣부른 선택으로 인생이 망할 수도 있기에 꽤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2년이나 사귀었는데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상대방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우리 나이 대에 더 짧게 연애를 한 사람들은 아마 더 심각하게 고민할 거라고 덧붙인다.

난 이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너 흥수 알지? 걘 100일 만에 결혼 준비했어"

이 외에도 5개월, 6개월 만에 결혼준비하는 사람도 주변에 봤다. 그럼 어떤 순간의 확신으로 이들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걸까?

인생의 나이테와 연애기간은 결혼을 결정하는 데 사실절대적 요소가 아니다. 서로 간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너도 너만의 기준을 확실히 정해"

라며 나는 내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리고는 당시 내가 세웠던 기준을 말했다. 그 기준은 우선순위로 한 다섯 개 정도 된다. 순서를 매기자면 자존감, 생활력, 술, 외모, 취향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는 취미가 꼭 나랑 비슷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술을 잘 마시는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고.

이건 온전히 본인의 지식, 가치관, 기호, 지식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득 및 손해를 봤던 경험들이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는 그 기준이 2개일 수 있고, 3개일 수 있다. 하나뿐인 사람도 있다. 내 주변에는 상식적인 남자가 좋다며 다른 건 아예 안 보고 '4년제 대졸' 학력만 보는 친구도 있다.

우선순위가 몇 개든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기준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그걸 모두 충족하는 이성은 더 갈수록 찾기 힘들어진다는 거다. 결혼정보회사가 떼돈을 버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 쉽게 욕심을 내려놓질 못하거든. 그래서 난 기준에 60% 이상 충족한다면 결혼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결론을 말해줬다.

예를 들어, 내가 자존감이 높은지, 생활력이 있는지, 술을 평소에 많이 마시는지, 외모는 어떤지, 취향이 어떤지를 기준으로 삼았으면 이 중에서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개만 맞다면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와이프는 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와이프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취향이 다르다. 근데 그거 하나 달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더 가치를 두는 부분이 맞으면 장점이 극대화되어 단점을 가리기 때문. 내 취향을 상대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받지도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게 건강한 관계다. 포기하면서 배우기 때문에 나머지 40%는 내려놓으라고 하는 거다.


친구는 늘 무던한 성격에 모든 걸 받아주는 타입이라, 나를 좋아하면 나도 좋아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본인만의 확고한 기준이 필요했다. 그게 아니면 어디라도 다 끌려 다녔을 테니까. 본인만의 기준이 없다면 결혼을 하기 전이든, 결혼을 하고 나서든 계속 끌려만 다닌다. 주관 없는 삶은 어떤 경험을 미래의 그녀와 함께 해도 와닿지 않는다. 스스로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전혀 다른 것이 와도 그걸 포용할 수 있고, 배울 수 있어 또 다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지식이나 경험들이 통째로 온다. 평생을 그 세계와 함께 살아야 한다. 전혀 다른 세계가 하나 더 오는 것이다. 기존의 나만의 기준이 다가오는 그 절반의 세계를 더 단단하게 스며들도록  돕는다. 0에서 1이 오는 것과, 1에서 1이 와 2가 되는 것은 천지차이다. 내 세계와 결혼할 상대의 세계가 함께 스며들어 덜 편협하고 다양한 세계가 완성된다.

그래서 나만의 것이 일단 있어야 한다.

"여자친구, 결혼할 상대를 만날 때 나만의 기준을 한번 세워볼게 고마워"

라고 친구는 말한다.


2차에 왔다. 문래동 최고맛집 은진포차. 성시경도 왔다 간 곳이다. 병어조림으로는 대한민국 원탑이다.

병어조림과 갈치조림을 시켰다. 갈치조림은 단짠맛이 기묘하다. 소주를 부르는 맛이다.

친구는 2차로 술을 마시더니, 내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잘난 것도 하나 없는데 결혼상대를 고를 자격이 있냐며 한숨을 쉰다. 가장 먼저 자존감을 챙기라 말한다.

사실 내 앞가림하면서 경제활동을 하고, 노동으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 위대한 거다. 내가 자존감이 높아야만이 모든 행동에서 여유가 나오고, 그게 사실 진짜 매력이다. 평균 올려치기가 이렇게 무섭다. 월 천만 원이 우습고, 누구나 서울 아파트, 대기업, 전문직에 살아야 만족이 되는 세상. 온갖 빈 공간을 수치로 채워 비교 속에서 안도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겨우 우리는 숨을 쉰다. 이걸 깨우치고 발견하면서 술 마시는 게 사실 의미 없어 보여도 우리 삶을 더 단단하고 커다랗게 만들 최소한의 동기부여는 된다.


결혼정보회사 2024년 등급표다. 1등급부터 15등급까지 직업으로 사람을 이렇게 수치화해도,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하고 있는 생각들, 흔들리는 삶의 불완전한 30대의 윤곽을 수치화할 수는 없을 테니 우리는 1등급으로 자부하며 살아가도 된다. 그 자체로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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