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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08. 2024

30대 중반이 전문직 도전?

서울 합정동- 가고자 하는 길에 확신이 없을 때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단칸방을 구한 친구가 있다. 그는 약 6년 동안 약사를 준비했다. 대학교를 자퇴하고 6년이 가깝도록 열심히 준비했으나 시험에는 아쉽게도 합격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친구들은 종종 그의 안부를 내게 묻는다.

"아직 시험 준비해?"

"야, 붙었어? 붙었어?"

남일에 참 관심 많다. 왜냐면 붙었다면 붙은 대로 각자의 자극과 질투가 공존하며 술안주가 되고, 떨어졌으면 떨어진 대로 자기 위안과 시답잖은 동정으로 술안주가 되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언제나 당사자들의 얘기보다 다른 사람들 얘기가 주를 이룬다. 그래도 이 친구는 공부머리가 있어 머리가 굳기 전에 다른 시험에 마지막으로 2년을 태워보겠다고 나와 마지막으로 함께 한 술자리였다.

이번엔 세무사 공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며 양껏 술을 마셨다.  1차는 안동소주에 회다. 당찬 포부와 희망 섞인 그의 목소리 뒤에는 약간의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 이때까지 공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과목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앞선 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

친구가 내게 말한다.


"난 지금 너무 뒤처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 오래전부터 다녀 돈도 많이 모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최소한 연애라도 하면서 인생을 잘 꾸리는 것만 같은데 본인은 이제 또 공부를 하러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이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우리가 33살이라는 나이보다 그것이 더 그의 목을 조이고 있다. 정확히는 33살에 정상적으로 대한민국 남자로서 살고 있어야 하는 상향평준화된 부나 명예, 자산, 평판, 직업, 집안 등의 기준에 혹여나 미달인지에 대한 여부가 그를 조인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장황한 변명이나 시답잖은 위로보다 서로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나눴다. 먼저 내가 말한 건 경주마 얘기다.

"경주마는 달릴 때 옆 말이 어느 정도까지 갔는지 보지 못하게 천으로 가린다. 혹시나 중간에 앞서가서 자만하거나, 뒤로 처져서 불안해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옆의 말이 어디까지 갔든 그냥 가장 빨리 골인지점에 도착만 하면 된다. 고작 말도 이런데 우리가 남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서 뭐하겠노?"

그리고는 친구에게 서울에 올라온 걸 친구나 지인들한테 몇몇을 제외하고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 SNS도 그냥 삭제하고,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이 친구집은 잘 산다. 아버님이 자동차 정비소를 하시는데 울산 전체에서 유명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약사를 준비하는 오랜 기간 동안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사실상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보통 집안은 남자 나이 30만 넘어도 경제활동을 안 하면 집안이 아주 난리가 난다. 이렇게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자체가 큰 복이라는 것을 이 친구도 안다. 그래서 내가 딱 하나 걱정되는 것은 친구가 2년이라는 본인이 정한 기간 안에 합격을 하지 못해도 살 궁리가 있다는 보험을 가질까 봐였다. 그냥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네가 원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2년 죽었다 생각하라고 했다. 그렇게 둘이서 소주 4병을 비웠다.


밤 10시 반. 2차로 이동한다. 2차는 무조건 노포다. 노포만 오면 우리 수준에 딱 맞는 것 같아 술맛도 좋다. 절대 남자끼리는 비싼 곳에 가지 않는다. 이번엔 간고등어다. 우리는 만나면 늘 생선류를 2차에 먹는다. 배가 든든히 채워졌을 때 짭짤한 간고등어만큼 소주 안주에 좋은 게 없다. 여기서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남들 생각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서울에 집도 사고, 적금도 들면서 여행도 꾸준히 다니고, 남부럽지 않게 인생을 살 거라고 그 친구는 부러워한다. 나는 솔직히 여기에 진짜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직장도 사실 직장 나름이고 직장에서 버는 돈보다 어떻게 그걸 내가 굴리고, 소비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부만 따졌을 때 말이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해 늘 눈앞에 놓인 조건들을 재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연봉이 8천만 원인 사람과, 직장인 연봉 4천만 원이 있다고 하자. 절대적 비교로 당연히 전자가 삶이 훨씬 윤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근을 하는지, 직장의 위치는 어디며, 출퇴근은 얼마나 걸리는지, 조직문화는 어떤지, 무슨 직무로 가는지는 아무 고려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연봉만 높으면 성공에 가까워진다 생각한다. 근데 이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착각이다. 사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입사하기 전 애초에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다. 연봉이 높다고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자산을 가진 사람들도 주변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직장 좋은 데 다닌다 해서 삶은 사실 바뀌지 않고 대감집 노예가 되는 것뿐이다. 나는 얘기했다.

"차라리 너처럼 늦게 합격하더라도 오히려 대체되지 않는 전문직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장래가 훨씬 밝다"

이제야 그는 걱정거리가 줄어들고 취기가 올랐는지 웃기 시작한다. 나이 33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건 누구나 두려울 거다. 차라리 미래의 답이 어느 정도 보인다면 생각도 안 하고 야심 차게 도전해 보겠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에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방향인지 공부하면서도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근데 그건 친구야, 너뿐만이 아니야.  출근길 그런 생각을 안해본 직장인이 없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도, 김연아도, 박지성, 손흥민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해왔다고 난 생각한다. 유명한 개그맨, 유튜버, 영화배우도 떡상하기 하루 전까지 다 그런 생각했을 거다. 결국은 너도 나도 그냥 꾸준한 사람이, 계속 버티는 사람이 나중에 작은 결과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세상에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건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돈 많이 주고 팔자 좋은 직업이 어디 있으랴.  


한 병을 또 비우고 내가 묻는다.

"네가 그때 약사 공부 몇 년 만에 합격했었다면 지금보다 무조건 행복했을 것 같나?"

"어"

"아니, 내 장담하는데 절대 안 그렇다"

사람은 무조건 본인이 현재 주어진 환경에서만 생각한다. 2를 가졌을 때는 1이었던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모닝을 타다가 그랜저를 탔는데, 모닝을 탔던 때가 그립거나, 진지하게 그때를 고심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때 친구가 약사에 한방에 합격했다 해도, 그 약사만의 또 다른 고충이 있다. 연애문제나, 가족문제나, 집안문제나, 또 다른 문제가 늘 발생하고 그걸 순간순간 고심하면서 해결해 가야 한다. 단지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직업 문제에서 그냥 그다음 퀘스트 단계로 넘어온 것뿐이다. 마치 레벨 올리는 흔한 게임처럼. 우리 고3 때 같이 정독실에서 수능하나만 신경 쓰면서 그렇게 공부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것처럼 그때그때 늘 다른 문제에 우린 봉착하기 마련이다. 지금 약사를 포기하고 세무사를 공부하면서 나중에 세무사가 됐을 때 약사보다 훨씬 잘 풀릴지는 그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 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서로 만취를 하고 집에 간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음날 택시 결제내역에 23,000원이 찍혀 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그에게 전화가 온다.


"야, 내 세무사 1차 붙었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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