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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l 02. 2024

모두가 가면을 썼다

경기도 수원시 -솔직함이 독이 되는 세상

주변에서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뇌에 필터를 거치지 않고 서면으로나, 말로나 어디서든 솔직하게 내 할 말을 해서 그런가 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군대에서 솔직하게 부조리에 대해 대들었다가 죽기 직전까지 맞았고, 지난 연애에서 상대방이 고쳤으면 하는 8가지 이유를 말했다가 차였다. 이런 일상에서 벌어지는 문제 말고도 내 눈앞에 펼쳐진 일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방향이라고 내가 판단이설 때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빤히 현실에 존재함에도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예 언급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일들에 자극적으로 말하고, 썼다.

사회의 악성종양을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도 아니고 타인에게 객관적 폭력을 행사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말 안 하면 불편해서다. 말을 할 때 그렇다고 내가상대방에게 무례하게 한다거나, 건방진 어투로 말하는것도 절대 아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한다. 아무쪼록 말할까 말까 혼자 끙끙 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일전에 짝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한 것도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내가 아닌 상대가 고민하도록 차례를 넘겨줘야 본인이 편해서다. 그래서좋으면 너무 좋다고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내 모든 걸 줄 수 있을 만큼의 애정을 드러낸다. 반대로 싫으면 어떻게든 싫다고 표현하던가 자리를 피한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면 다 퍼주기 때문에 자칫, 시간이 지나 타인은 나의 편안함에 익숙해져 나를 무례하게 대하거나,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위악을 떤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만 상처받고 말거나 자연스레 그냥 시간에 맡길 뿐.


근데 나와 정확히 반대의 고민을 가진 친구가 있다. 이 친구와는 약 1년 반 만에 만났다.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단짝이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서로 일상에 치여 자주 못 보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심지어 친구가 취업준비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혹여나 불편해할까 봐 연락을 못했는데, 드디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 어느 정도 적응 뒤 이렇게 만나게 됐다. 1차는 수원에 한 참치집이다. 내가 먹어본 역대 최고의 가성비 참치집이다. 장소는 <금정 참치>.

수원에 올 일이 있으신 분들은 꼭 와보길 바란다.

친구는 30대가 되면서 친구나 지인,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나 가면을 쓰는 본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진짜 본인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웃는 모습, 아닌 척, 상대를 맞춰주는 본인의 모습이 싫다는 거다.

친구와 커피 한잔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실제의 본인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모습이 싫다고 한다. 본인을 스스로 속이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진정한 친구는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본인이 미련이 있는 상태에서 연인과 헤어졌다고 하면 누구나 그 친구에게 미련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붙잡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항상 반대로 말하는 법이다. 헤어지라는 식. 더 좋은 사람 만나 떠나라는식. 직설적이고 상투적이다.


이건 고민의 문제라기보다는 본인 선택의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 어떤 쪽을 선택하든 정답은 없고, 장단점과 희생이 상존하거든. 나는 전자를 택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살아서 후회와 답답함은 없다 할지언정 욕을 X나게 먹는다. 설령 내가 긍정적인 말을 해도 너무 솔직하다고 상대는 걱정을 한다. 이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한정이다.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해 주는 것일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대놓고 싫어한다. 늘 상처받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관계에서 늘 상처를 많이 받아왔다.

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100을 줬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던 경우 각자의 상황마다 상처를 달고 살았다. 애초에 지인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긴 하다만.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 가면을 쓴 사람이 내 눈에는 잃을 게 없어 보인다. 친구에게도 그게 능력이라고 얘기했다. 눈뜨고 코베이는 현대사회에서 본인을 다 드러내고, 상대에게 헌신해 봤자 현실적으로 돌아오는 건 사실 없다. 언제 어디서 뒤통수 칠지 모른다. 특히 친구나 가족은 둘째 치고, 사회생활에서는 내 모든 걸 드러내면 그걸 좋은 쪽으로 치환해 기회가 주어진다기보다, 그걸 어떻게든 약점으로 삼아 헤치는 하이에나가 더 많은 법이다. 나만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내 얼굴을 가리는 것과 동시에 나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굳이 나처럼 솔직해서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 나오고, 시기와 질투, 오해, 구설수를 살 필요가 없다.

나는 여태껏 방패하나 없이 살았다. 아무리 내가 상처받고, 약점 잡히고, 욕먹어도 이 태도를 나는 계속 고수하려 한다. 왜냐고? 그냥 울며 겨자 먹기. 나에겐 내 얼굴을 다 가리는 완벽한 가면을 쓸 능력이 없어서다. 이건 타고난 재능이다. 타인에게 내 본연의 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 난 이 능력이 없으니 나대로 그냥 살아야 한다. 친구에게 오히려 부럽다고 말했다.


이건 고민이 아니라 능력이야!


2차에 가려다 컨디션이 안 좋아 1차만 간단히 하고 헤어진다. 둘이서 네 병을 먹은 거면 뭐 사실 간단히도 아니다.

친구를 보내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면이 없어 큰일 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굴 만나든, 어떤 태도를 보이든 나는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될 뿐이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또 상처받거나 예상치 못한 피해를 봐도 내가 징징대지만 않으면 그뿐이다. 단, 과거처럼 극단적으로 무기나 방패하나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일회용 방패정도는 휴대하는 걸 습관화해 봐야겠다. 대신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가면을 써야겠지.

처음은 어색해도 조금씩 그 어색한 모습도 스스로 적응되지 않을까. 거울을 보고 내일은 어색하게나마 웃음을 지어보고 집 밖을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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