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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밤이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마무리를 부여잡는 태도에 대하여

by 홍그리

오늘은 홍그리 작가가 아닌 진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 내가 내게하는 고민상담이다.

꽤 올해는 유독 힘든 일들이 많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다시 돌아가도 불가항력적인 일들이라 쉽게 답도 못 낸다. 힘든 날의 연속일 땐 재기를 생각하며 그냥 가만히 멍 때리며 망상을 한다. 미래를 한 치 앞도 모르니혼자 생각하는 게남는 장사다.

어쩔 수 없는 ENFP. 정답이 없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진 않다. 다시 힘내서 도약할, 괜찮아질 시기가 분명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방법이 있다. 바로 내가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된다. 분명 험한 길이었지만 잘 헤쳐왔다는 건 결과가 늘 증명해 줬기 때문일 것이다.

산이 높아서 골짜기가 너무 깊다. 욕심은 많고 바라는 건 많아 기대보다 못한 결과를 자주 맞아 늘 실망과 자책부터 앞선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을 거니까 그냥 그렇게 고치고 고쳐 더 나은 과정을 만들어가는 법뿐이겠지.


늘 이 시기쯤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이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제목부터가 일단 내 스타일이다. 전혀 안 어울린다고? 처음에는 이런 이별냄새 풀풀 나는 일기로 글쓰기 시작했다. 채널에 늘 명확한 내 생각을 때려 박아대니까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내가 강단이 사람에다가 사리분별이 뛰어나다는 착각을 하신다. 사실은 공감 없이는 서운해하고 마음이 여려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으며, 노래하나 듣고 질질 짜는 그런 찌질인데.

또다시 찾아오는 가을처럼 나는 이 여름에 무언갈 남겨두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하나의 강인한 다짐. 내년여름엔 인생에 있어 이런 후회와 미련 자체를 가지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늘 부는 바람처럼 파도처럼 시련이나 생각들도 이젠 쉽게 그냥 흘러 넘기며 살아가기로 한다. 사실 그게 인생을 마음 편하게 가장 잘 사는 방법이다. 나아지면 나아지는 대로, 고치면 고치는 대로. 아님 말고.


‘안되면 말고’. 뭐 어때.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다. 노래제목처럼 지금 남은 건 볼품없겠지. 그냥 볼품없이 결국 그렇게 다 살아진다. 뭐 어떤가.

9월이 가고 10월이 되면 대부분 지금의 나처럼 24년의 4분기를 맞이해 본인이 하고 있는 걸 되돌아볼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다짐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미래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일 것이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봐야 하는 게, 누군가는 염세적이라 욕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 거의 그렇게 안 된다. 열명이 있으면 한두 명 성공하고 8명은 실패하는 사회다. 이 사회가 굴러가는 자체가 ’경쟁‘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넷플릭스에 한창 뜨는 <흑백요리사>만 봐도 흑수저에 있는 요리사 80명 중 1차부터 심사위원이 3/4인 60명을 떨어트린다.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솟아오르기도 전에 무자비하게 끝내버린다.

요리만 이런가.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쉬운 거 하나 없다. 회사 면접 경쟁률이 3대 1이라 치면 2명은 ‘무조건’ 떨어져야 하고, 잘났고 돈 많은 사람들이 SNS에득실거려도 몇 십배 많은 이들이 더 잘 살고 있고 반대로 몇백 배 많은 이들이 SNS 뒤편에 더 못나게 살고 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정상에 올라간 사람도 틈만보이면 기회다 싶어 닦달처럼 달려들어 집단지성으로 까내리는데, 애초에 굳이 올라가서 왜 상처받고 사나 싶기도 하다.


생긴 대로 살면 된다. 자기 계발에 열정적이고 ‘갓생’사는 현대인에겐 얼토당토않은 소리겠지만, 사실 난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거의 맹신론자다.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촛불이 꺼지기 전 가장 밝듯이, 남은올해 3개월을 열심히 각자의 환경에서 꿈을 향해 달려보고, 설령 안 돼도 좌절하지 말라는거다. 위와 같은 마인드면 상처가 덜하고 설령 상처를 받아도 쉽게 아문다. 그냥 무던해진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데 밑에 쿠션이 A급 아니 S급이야. 안 다친다. 근데 맨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진 사람은 어떻겠나. 즉사한다. 그냥 생긴 대로, 주어진 환경 안에서 뼈를 갈아서 무리하지 않아도 해보고 안되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철저한 ‘안 되면 말고’ 마인드.


미국 주식처럼, 부동산 가격처럼, 비트코인처럼 떨어질 때가 있으면 올라가는 때가 분명 있으니, ‘다시 괜

찮아질 시기가 분명 온다‘라는 마음만 갖고 있음 된다.

매년 진부한 다짐 속 결과는 볼품없어도 ‘내년에 잘하면 되지’라고 넘기는 실체 없는 것들. 내년에 또 못 이뤄도 된다. 빨리 가다 주변에 더 소중한 걸 놓칠 수도 있다. 어릴 적 늦잠을 자다 엄마가 학교에 늦겠다며 태워준다고 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때가 왜 지금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집 대문에서 엄마는,

“빨리 나와!!! 늦었어!!!!”

라고 한다. 나는 대답했다.

“응!!! 지금 나가!!”

하며 신발을 구겨 신고 나가던 그때. 내가 챙긴 가방은 비워져 있었고, 준비물도,지갑도 전부 못 챙겼다.심지어 학원회비는 봉투를 거꾸로 들고 뛰다 길거리에 10만원을 다 흘렸다. 당시 엄마는 화는 안내셨지만 그 십만원을 주운 누군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매사가 이런 식이다. 급하게 뛰어가봤자 얻는 게 있다한들 잃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매사에 접근하면 좋냐. 그냥 포기만 안 하면 된다. 오늘은 술도 마시고, 너무 피곤해서 러닝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하지 말고 내일 뛰면 된다. 어차피 술 마셨는데 오늘 뛰어봤자 얼마 뛰지도 못할뿐더러 살도 안 빠진다.

결과를 떠나 본인이 꾸준히 하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거 자체가 이미 밑에 A급 쿠션이 깔려 있는 거다.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영어공부 하든, 책을 읽든 그게 결국 다 각자의 몫인 것이다. 나는 이 몫을 ‘끈’에 늘 비유한다. 그 끈을 잘라버리면 내일 그 끈이 저절로 붙지 않고 잘린 대로 사라져 버린다. 또 그렇다고 그 끈을 욕심부려 여러 개 가지고 있다한들 나중엔 내가 가진 그 끈을 구분도 못한다. 본인이 품을 수있는 정도를 알고, 그 끈을 가져가고 그 하나의 끈을 놓지 않고 집중해야만 결국 미래에 그 끈이 다른 곳에 묶이기도 하고 엉키기도 하도 할 수 있는 것. 일단 오늘도손에 그 끈을 계속 쥐고 있어야만 내일 바뀔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이 생기는 꼴이다. 잘라버리면 그냥 그걸로 끝. 철저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올 4분기는 각자의 목표에서 무언가를 무조건 이뤄야 한다는 강박과 신념보단, 좀 더 편안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줘보는 게 어떨까. 훨씬 더 행복하고 편안한 연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포기만 하지 마라. 앞날이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몰라.

미래야 기다려라, 더뎌도 내가 네게 꼭 도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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