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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과연 삶에 이로울까?

독서에 대한 생각들

by 홍그리

어제 지인이 여자를 어디서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한다. 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청년들에겐 참 힘든 숙제 같다. 여러 조건을 재서 내 맘에 쏙 드는 이성을 만나기는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 그래서 몇 천만 원 들여 결혼정보회사를 들락거린다.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신중해야 하는 선택이기에 그깟 돈 몇 푼 내는 건 일도 아닐지도. 그때 난 웃으겟소리로 딱 한마디 했다.


서점에 가. 서점에서 책 읽는 여자 번호 따면 못해도 평타는 갈 거야!


이 외에도 누군가 시간이 남으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을 때 단 하나의 고민 없이 책을 읽으라고 답변할 정도로 나는 독서 신봉자다.

그런데 어젯밤, 책과 관련된 글을 보다 내 시선을 고정시키는 하나의 댓글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하는데 한 명이 다른 얘기를 하면 당연히 튄다. 그녀의 질문은 이랬다.


"책을 읽는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문제의 그녀가 이렇게 답했다.


별로예요. 본인만의 세계에 갇혀살것 같아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사회이기에 여기에 날카로운 단어로 반박한다거나, 에너지를 분출해 굳이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끌고 와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책은 더 편협하게 나만의 세상에 갇혀있을 수도 있구나'


단순히 여러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본인의 표현을 글로 옮긴다던지, 독서토론처럼 말을 한다던지 하면 생각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아이디어를 이어 무언가의 형태로 구체화시키는 연결고리 등 인생에 도움이 될 장점만을 생각했던 나였는데, 한방 먹었다. 그럼 다른 방면으로 그녀의 주장에 관련한 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자.


1) 주식으로 큰돈을 잃은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 복리개념의 시간을 두는 일로 천천히 자산을 모으는 데 관심이 생겼고, 이것이 나와 맞다고 여겼다.

자, 그러자 서점에 가 재테크 코너에 가면 주식이나 코인보다는 당연히 안전한 자산을 굴리는 방법에 대한 책만 들여다본다. 개개인이 결핍이 동기부여가 돼 어쩌면 더 편협한 한 부분에 힘을 싣는 꼴. 실제로 주식으로 크게 성공했거나, 꼭 시간을 오래 두지 않아도 재테크를 잘해 자산가가 된 사람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는데. 내가 믿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닌데. 심지어 내가성공경험이 있어도 그게 내 실력으로 성공한 것이 결코 아닌데. 내가 지금 서울에 부동산을 샀고, 누군가 똑같은 부동산을 샀다는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나는 그의 방법은 잘못된 것이고, 부정하고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뒤에서 내 말에 힘을 더 실을 수 있는 근거를 오늘처럼 눈에 불을 켜고 긁어모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아주 미세한 것에만 그렇게 집착한다. 그걸 못 찾으면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일 테니.


2) 최근 추리소설을 어쩌다 보니 읽을 기회가 많았다. 누군가 취미를 묻거나,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으면 추리하는 걸 좋아한다고 최근 처음 답해봤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자전거 타기, 산책, 영화 보기, 운동하기, 널리고 널린 취미생활 중에 추리를 한다니. 괜히 찝찝하고 괴짜 같다. 상대는 크게 개의치 않아 해서 다행이겠지만 문득 집에 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이었다면 나의 취미를 맞춰줄 수 있었을까? 오히려 보편적인 걸 거부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결국 이것도 편협한 내 세상을 더 철옹성처럼 굳건히 하는 게 아닐까. 난 그냥 책을 읽었을 뿐인데. 독서율이 갈수록 줄고, 취미를 독서로 한다는 것이 워낙 기이해진 세상이라 어쩌면 더 그럴지도.


3) 서평블로그나, 독서모임, 책과 관련된 이 모든 활동은 사실 청자를 불특정다수를 전제로 한다. 독서모임도 정해져 있다지만 못해도 3명 이상일 테다. 무언가를 계속 여럿 사람과 소통하면서 그 책과 관련된 인사이트를 얻으려 한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맹수처럼.

그걸 찾지 못하면 이 책을 다 읽어도 읽지 않았다는 찝찝함과 동시에 내 지식의 총량이 늘어났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근데 난 주로 책을 읽을 때 무언가를 단 한 번도 얻으려고 읽지 않는다. 저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글을 썼는지를 생각하고 최대한 저자와 1:1 대화를 하려고 애쓴다. 어쨌든 청자가 한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내 앞에실제로 있지도 않은 사람과의 대화. 책을 쓴 작가라면 물론 (보편적으로) 지성을 겸비한 사람이겠지만, 설령 그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는 한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니 이 생각이 자연스레 전염될 수밖에 없다. 고로 생각은 점점 더 깊고 좁아져갈 수도.


이 댓글 하나가 준 파급력은 이처럼 실로 어마했다. 잠깐동안 많은 생각을 낳는다. 자, 그러면 여러 책을 읽으면 되지 않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능동적으로 하는 행위이기에 그 노력 자체가 가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마저도 '책을 좋아하는 본인'을 합리화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실제로 책만 집에서 주야장천 읽고, 한 번도 실행을 하지 않거나, 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똑같은 과제가 주어져도 그 맥락을 전자보다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게다가 남의 지식을 경험 없이 무상으로 얻은 것이기에 스스로의 행동에 확신이 부족하다. 이는 너무 당연한 얘기다. 캐비어를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더 자세하고 맛깔나게 표현 잘하겠나, 아니면 그 캐비어의 맛을 책으로 읽은 사람이 표현을 잘하겠나.

딱 하나 확실한 것. 책을 읽으면 나만의 지식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생겨 문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수능 언어영역 잘 볼 수 있고, 상대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원만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물론 다소 너드 하고, 논리를 따지고, 지루하고, 늘 망상에 젖어있는 걸 감내하는 대신 얻는 것들이다.


나만의 철학과 편협함의 모순 그리고 나만의 우주와 괴짜의 차이. 꽤나 어렵다. 그래도 충분히 선택가능한 종이 한 장차이의 양식 같은 것. 확실한 건 맨날 술 먹는 지금보다야 낫겠지. 하고 다시 오늘도 책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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