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하루는 어떤 점일까

행복과 불행의 갈래

by 홍그리

온 세상이 까맣다. 눈을 감으나 뜨나 그가 보는 색은 변함이 없다. 그 까만 화면 중간에 아주 작은 흰색 점이 하나 찍혀있다. 자세히 봐야만 보일 것 같은 아주 작은 크기의 흰색 점. 작은 크기만큼이나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잘 눈치채지도 못한다.

자, 그 사소한 점이 누군가에겐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돈이 될 수도, 식사가 될 수도, 잠깐동안 쉴 수 있는 쉼일 수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일 수 있다. 100%검은 어둠 속에서 좌절하더라도, 그 작고 작은 미세한 점 하나, 1%도 안 되는 달콤한 무언가에 내 전부를 걸고 버텨나가는 것이다. 하나뿐인 희망같은 것.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사람에겐 힘없는 풀 한 포기조차 본인을 지탱해 줄거라 믿고 손을 뻗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지도 못하는 그 점은 그에겐 세상의 전부였던 것. 검정에만 익숙했던 그 모든 불행을 잠깐이나마 상쇄할 만큼 그 흰 점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면? 그럼 된 거다. 근데 그 작은 흰색 점은 그에게 뭐였을까. 그건 본인만 안다. 그것이 설령, 누구나 선망할 직업이든, 비싼 외제차가 됐든, 몇백억의 돈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에겐 그런 건 하나도 중요치 않거니와, 몇천만 원의 돈도 가져본 적이 없기에 몇백억이 있다한들 어차피 어떻게 쓸 줄도 모른다. 그에게 그 흰점은 잠깐의 휴식으로 본인을 편안하게 해 준 게 다다. 그것만으로 다이니 그 미세한 존재는 그에게 최상의 만족을 이끌어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걸로도 행복했으니까. 그가 보는 세상에서 그 흰색 점은 그런 값진 존재인 것이다.


또 다른 이에겐 온 세상이 하얗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그 어떤 결함도, 문제도 없다. 직장, 연애, 경제적 여유, 젊음, 가족, 인간관계 모두 완벽하다. 아니, 설령 아닐지라도 완벽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가 보는 세상은 하얗고, 늘 긍정적인 생각만 따라다닌다.

자, 그런데 이 영원할 것 같던 행복에 작은 금이 간다. 아주 미세한 검은 점이 생겼다. 그것이 연인과의 다툼이라고 하자.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고, 일을 하는 데에도, 씻는데도,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자꾸 생각난다. 누군가에겐 오해를 풀고 얼른 화해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라도 그에겐 그 작은 점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아픔을 준다. 그녀가 헤어지자고 하진 않을까, 혹시 말을 잘못한 게 있나 자기검열하면서 뭐라고 말을 다시 걸어볼까, 하루 종일 그녀에게 보낼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슬프고 불행하다.

자, 모든 걸 가진 이 친구는 이 작은 감정문제 검은 점 하나가 온 흰색 도화지를 더럽히고 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듯. 위 사례와는 반대로 모든 행복을 상쇄할 만큼 지금 이 순간이 불행하다. 왜? 현재 그에게 마주한 세상, 그가 세상 자체를 불행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모든 것은 결국 나 스스로가 보고 싶은 대로 바뀌어간다. 매일 출근길 보는 나무도, 편의점 아저씨도, 버스기사님도, 퇴근길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흰색점이라 여기면오늘 하루 자체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반대로 검은 점이라 생각하면 더 이상 반복하기 싫은 질리고, 버텨야만 하는 악순환 중에서의 하루일 뿐이다. 과연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볼까. 흰점이라고 생각할까, 검은 점이라고 생각할까. 제자리를 찾지 않은 많은 것이 머릿속을 떠돈다.


지인과 지난 10년간의 삶에 대해 대화를 하다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의 10년을 돌아보니, 흰 도화지에 검은 점들이 무수하게 많았는데도 행복했다고. 흰 점이 너무 내게 좋고 황홀한 것들이라, 몇몇 있는 검은 점은 당연히 흰 점을 누리기 위해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대가처럼 여겼다고. 그러니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당시는 좀 버거웠고 괴로웠지만 행복했다고. 소중한 순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그 검은 점이 더 컸어도 이겨냈을 거라고.

이처럼 건강하고 진취적인 생각은 결국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에 더 큰 힘을 실어야만 올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실제로는 검은색이라도 내가 그 도화지를 하얗게 만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니, 이 무한경쟁 속에서 조금은 편안하게 나만의 흰점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런 것이다. '운명론자' 마인드셋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가정을 붙여보는 것. 그리고 그게 운명이라 믿는 것.만약이라는 가정법을 도취시켜 보는 것이다. 이 '만약'이라는 몽환적이고, 다시 돌아간들 이루어질 리 없거니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함만 가득한 단어를 내가 현재 가진 것에 써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삶이 충만할 수 없다.


Q: ‘내가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으로 전화해보지 않았더라면,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포기했더라면, 그때 널 다시 한번 설득해보지 않았더라면, 그때 ‘아니오’라고 대답했더라면, 그날 거기를 갈 계획을안 했더라면...’


A: 널 만났을까? 이 직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내 사랑스러운 자녀가 태어났을까? 너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이 소중한 우정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었을까?


백만장자도 자살을 하고, 역 앞의 거지도 오늘 날씨가 좋아 행복하다. 모든 걸 갖췄다 해도 하나 이상의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흑과 백 양 극단에 치우쳐 서로를 혐오하고 물고 뜯는 이 현대사회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볼까. 어떻게 나만의 흰색 점으로 하나 둘 더채워갈까를 고민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