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영상의 격차
바야흐로 유튜브에 열광하는 시대다. 누군가 폰을 들고 한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라 하면 아마 대부분이 최소 20분 이상은 유튜브를 보는 데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폰을 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튜브에 눈이 가있다. 그만큼 수요 자체가 많으니, 평범한 직장인마저 돈이 되겠다고 뛰어드는 게 유튜브시장이다. 5년 전부터 레드오션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새로운 공급자 즉, 크리에이터와 이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나면서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가는 모습이다.
자, 근데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우리 삶에 모두가 중독될 만큼 이게 이롭냐는 것. 30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쇼츠를 본다고 하자. 30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서 "30분동안 뭘 보셨어요?"라고 물으면 그땐 모두가 묵묵부답이다. 왜 이런 걸까? 너무 재미있는 30분을 보냈는데 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까. 직장인의 꿈, 생산자의 삶을 사는 크리에이터의 이 영상이 왜 기억에 안 남을 수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그냥 그럴싸한 정보만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1분, 아니 10초만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얘기들.
물론 첨예하고 심층적인 논제로 토론을 한다거나, 수준 높은 정보를 공유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일반인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는 하나, 업데이트되는 영상 2/3 은대체로 그럴싸한 정보만 품고 있는 그런 영상들이다. 대체 왜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터가 구독자가50만이고, 70만인지 이해가 안 가는 영상들이 허다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주택청약을 한 달에 얼마씩 들어야 한다느니, 결혼을 한 신혼들은 돈관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진다느니,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브이로그는 사실상 다 같은 인생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한 편의 위안과 동시에 본인의 삶에 그 어떤 긍정적인 선순환구조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 영상을 다 보고도 기억에 남지 않고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말을 그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미라클 모닝을 시도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명상을 하고 책을 읽으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청년도약계좌에 가입해 적금을 착실히 들고, 대기업에 입사하여 자산을 불리고, 지금 당장 비트코인에 돈을 넣어라고 말할 수 있다. 몰라서 안 하는 것과, 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각자 모두가 다른 상황과 환경에서는 삶을 꾸려내는 방식 자체가 원초적으로 다른데 유튜브는 본인의 생각을 불특정다수에게 관철시킴으로써 이것이 정답인 양 떠들기 바쁘다. 누구는 가령, 아픈 부모님을 케어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고, 돈을 모을 여유가 없다. 또 누구는 대기업에 가려 2년, 3년 노력해도 운과 타이밍이 맞지 않아 매일 떨어지기 바쁘다. 모두를 포괄하는 통용적 정보가 아닌 원론적인 한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그게 절대 정답이 될 수 없으나 청년세대들은 그걸 쉽게 보고 쉽게 본만큼 맹신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술 더 떠 영상에 상업적인 목적을 섞어 광고와 제품을 끼워 넣는다. 그렇게 수많은 구독자들은 출퇴근길 의미 없는 한 시간을 유튜브와 함께 보내고 이는 반복된다.
본인이 성공했다면 그 성공방법을 자세히 영상에 1부터 10까지 공짜로 알려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진짜 이 영상하나만 보면 원하는 자산을 만들 수 있는 치트키를 알려줄 유튜버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주식에 들어가면 100% 이익을 볼 수 있는 주식을 추천해주며리딩방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유튜버가 과연 몇이나 될까. 수많은 주식쟁이 유튜버들도 계좌를 실제로 까보면 손실인 경우가 허다하다. 정답은 없고 그들이 떠드는 그들만의 콘텐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대체로는. 그걸 뇌에서 알기 때문에 퇴근길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 것이다. 뇌가 필터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
사람들은 이제 더 진짜를 원한다. 진짜 인생에 도움 되는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크리에이터를 원한다. 레드오션이라는 이 유튜브 시장에서 그런 자만이 이제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 근데 아무런 콘텐츠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고, 남들이 다 하니까 그냥 막무가내식 도전해 보겠다고 쉽게 말하는 직장인은 사실 그렇게 평생 남을 뿐이다. 결국은 이 무분별한 정보 속에서 직장인들은 퇴근 후 정말 '내 것'을 만들어야 삶이 어느 정도 바뀔 수 있는데, 그건 단순히 침대에 누워 도움 되는 영상이랍시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자를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책이 됐든, 신문이 됐든, 공부가 됐든, 그래프가 됐든, 영상이 아닌 문자로 된 무언가를 읽고 내 머릿속에 능동적으로 인풋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퇴근길이 조금 더 빨라질 것이고, 조금 더 회사에 덜구애받을 것이고, 조금 더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면 그 시간에 또 읽으면서 나만의 독창적인 삶을 구상할 수 있겠지. 멋진 선순환.
특히나 책은 발췌독이 가능하다. 영상을 접할 때 반응하는 귀는 눈의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읽고 싶은 부분, 강조하고 싶은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듯이 보면서 나만의 공간에 능동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오랫동안 그 지식은 내 머릿속에 기억된다. 종이라는 형태로 내 곁에 남고 언제든 생각날 때 내 촉감과 시각으로 펼쳐볼 수 있다. 심지어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1차 검증이 됐다는 것이기에 영상보다 훨씬 더 깊고 첨예한 정보를 다룬다. 에세이도 마찬가지. 온전한 글쓴이의 진실된 삶을 엿볼 수 있다.
특히나 2030, MZ세대는 문자에 익숙해져 있다. 학교에서 발표를 하고 질문시간이 되면 모두가 입을 닫는다. 제발 손 한 명이라도 들어라고 그렇게 발표자는 바람을 하면서도 결국 Q&A 시간은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또 회사에서 회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이 떴다고 생각해 보자. 무언가 큰일이 하나 터졌다 생각해 보자. 회사는 늘 그렇듯 조용하다. 하지만 타자소리는 여기저기 더 빨라지고 커지고 있다. 모두가 사내메신저 즉, 텍스트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말 안 하고 메신저로는 거의 불나듯 키보드를 쳐댄다. 이런 여가시간 말고도 업무상 퍼포먼스도 마찬가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세대는 텍스트 기반의 공간에서는 훨씬 더 아이디어를 능동적으로 공유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전화포비아도 똑같다. 음성, 즉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는 건 꺼리면서 오히려 카톡으로는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문자가 훨씬 더 편하게 큰 반발 없이 받아들인다. 이 문자의 수준을 우리는 타인과 더 높여갈 때 다수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고, 본인만의 무기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통이랍시고 대면상 대화만으로 미화하는 건 세대 간 변해버린 이 표현방식을 역행하는 행위다.
힘든 월요일, 직장에 출근해 옆 동료가 혹은 상사가
"주말에 뭐 했어?"라는 질문을 했을 때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 주말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문자와 가까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지 말이다. 여행도 좋고, 쉼도 좋고, 리프레쉬도 좋고, 산책도 좋고 다 좋다. 근데 그건 내 행복을 찾음과 동시에 평생 소비자로 살겠다는 약속 밖에 안된다. 블로그에 글을 한편 올려도 내가 문자와 가까워져야 무엇을 쓸지가 생각나고, 사람들에게 어떤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꽤 역치 높은 쾌감이다.
수요가 폭발하는 유튜브시장에서 오히려 우리는 '어떻게 더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관전전환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