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보다 자랑이 두려워
침묵과 정적이 두렵다. 서로가 이 식사자리를 불편해하는 순간 눈치게임은 시작된다.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담은 덜해진다. 왜냐. 내가 아니고서도 이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근데 대부분 ‘남이 해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본인은 하지 않고 침묵은 길어질 뿐이다. 항마력이 손발이 오그라들정도로 어찌할 줄 모르는 감정이라면 이건 손발이 오그라들정도로 불편한 기분이다. 이 기분의 역치가 더 낮은 누군가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시작한다.
"주말에 뭐 하셨나요?"
"아, 요즘 이 영화가 재밌더라고요"
바로 직장에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의 식사자리다.대개 이 자리는 직급이 같거나, 동일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서는 불편하지 않으나 한 명이라도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혹은 직원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있을 때 발생한다. 그냥 매일 직장인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상급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늘 상급자의 관심사에 관련된 스몰톡을 준비하고, 상급자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랴, 업무명령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유지해야 하기에 불편한 건 마찬가지. 서로 붕 뜨는 대화를 그렇게 이어간다.
또 다른 상황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있다. 대개 오랜만에 만나면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그 관심사에 대한 얘기를 이어간다. 그 관심사를 찾기 위해서 초반에 우리는 탐색전을 벌인다고 이런 말, 저런 말들이 자주 오가는데, 대개 이를 적극적으로 찾는 이들이 보통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E성향을 가진 이들이다. 그렇게 하나라도 걸리면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주로 이어가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명절에는 친척뿐 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도 예전 같지 않다. 1인가구의 증가로 늘 같이 사는 것이 아니기에, 가족끼리 모이면 할 얘기가 정해져 있다. 직장얘기, 자녀계획 얘기, 휴가, 여행, 예능 등등. 우리가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제는 여기서 다 결정 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하나 잡아서 최대한 서로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얘기를 이어간다.
직장이나, 친구나, 가족이나 이처럼 누군가를 만나 얘기를 이어갈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본인의 무언가의 선택에 있어 이득을 봤다는 얘기는 절대 금물 해야 한다는 것. 사람에겐 인정욕구라는 것이 있다. 메슬로우 5단계 이론에서도 드러나듯, 생존의 욕구를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드는 욕망이다.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하고 부대끼면서 살아가기에 보이지 않는 계층구조에서 늘 우위를 차지하려 애쓴다. 아닌 것 같다고? 친구 둘이 아닌 셋이 만난 적을 떠올려보자. 3명 이상의 집단이 있으면 늘 이 중에 한 명은 은연 중 제일 낮은 위치에 있다. 그게 보이지 않는다면 본인이 그 위치인 것이다. 낮은 위치라 해도 뭐 별거 아니다. 가장 대하기 쉽고, 만만한 존재. 그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관계에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우열을 가리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늘 본인의 자랑이 선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외향적인 성격이거나, 주변에 지인이 많은 사람이면 더 이런 실수를 할 확률이 높다.
"내가 산 주식이 올랐어"
"작년에 집을 샀는데 집값이 올라서~"
"최근에 회사에서 승진을 해서~"
자산, 재테크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성적이나 직업, 건강, 부모, 자녀, 본인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부터 본인 얘기를 시작할 때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사실. 앞선 예시처럼 내가 주식이 올랐다고, 부동산이 올랐다고, 자녀 성적이 좋다고, 승진을 했다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위해 떠들어봤자 진심으로 본인을 축하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현대사회에 없다고 보면 된다. 한국사회에서는 자랑을 하려면 자랑값을 내야한다. 밥을 내든, 술을 사든 그 얘기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면 자랑값을 내고 하면 욕이라도 안 먹는다. 그게 아니면 뒤에서 더 많은 질투와 시기, 욕만 얻어먹는다. 가족 중에서도 무조건적인 축하와 사랑은 부모뿐이다. 이 부모마저 돈 때문에 연을 끊고, 잠적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현대사회에서 본인 자랑은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한다.
가령, 극단적으로 부모한테 내가 돈이 많고, 잘 나간다는 걸 자랑했다고 하자. 그럼 당연히 용돈을 올려달라고 하고, 본인한테 더 헌신해 주길 바란다. 그게 사람마음이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도 당장 본인한테는 크게 이득 되는 게 없다는 거다. (물론 부모에게는 아까워하지 않아야겠지만). 부모사이도 이런데 친구, 직장은 오죽할까.
직장 : ‘아, 쟤는 돈이 많아서 일을 설렁설렁 대충 하나보다’
친구: “너 나 돈 없다고 지금 무시하는거지?”
어떻게든 본인한테 좋은 말 안나온다.
불편함이 있어도, 할 얘기가 없어도, 항마력이 있어도 그냥 본인은 끝까지 그런 제삼자의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게 얻는 것이다. 아무리 본인이 부자고, 주식으로 대박이 났고, 잘 나가고, 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남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게, 우월한게 다 다르거든.
무한경쟁사회로 가는 이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질 것이고 기회를 잡기 위해 본인의 능력을 어필하는 걸 제외하고 모든 걸 본인을 과하게 드러내는 순간 먹잇감에 잡혀 이를 다 잃을 확률이 높다. 그냥계속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럼 반이라도 간다. 답답하면 누구라도 말을 하게 돼있다. 본인이 그냥 나서지 말라는 것.
미팅에 나갔다고 하자. 미팅에 나가면 보통 3:3, 4:4 이렇게 만난다. 그중에는 보통 한두 명씩 재밌는 친구들이 있다.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그 친구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은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 그런데 결국 그 웃긴 사람에겐 남는 거라곤 없다. 나머지는 다 본인 짝을 찾아 연애하는데 본인만 혼자다. 그냥 혼자 광대역할만 해주고 온 것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나서는 자에게 이득보단 손해를 걱정해야 할 분위기가 왔다.
자, 그럼 '나'라는 존재는 남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치는게 맞을까. 극단적으로 남들이 본인을 무시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으로만 소개하면 된다. 하는 일이나 재산이나, 어디 하나 내세울 것 없이 그냥 그저 그런 사람. 누군가는 비웃으면서 "쟤 인생은 왜 저래?"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그런 상황. 자존심이 상한다 하면 그 정도의 평가는 가까스로 피하는 딱 그 상황까지만 드러내면 된다. 그리고 나서 해야할 일.
아주 조용히 혼자만 잘되면 된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똥 근처에만 똥파리들이 늘 득실댄다. 그럼 내 주변에 똥파리를 애초에 있지 않도록 방어하는 방법은 내가 애초에 똥이 되지 않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을 공통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가족을 포함한 그 어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런 것이다.
대체 인간은 왜 이런 걸까. 성선설은 잘못된 가설인 걸까? 다 모두가 태어나면서 이런 질투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걸까? 성악설이 맞든, 성선설이 맞든 확실한 것은절대적인 건 없다는 것. 선한 기준에서도 어떻게든 악한 감정은 상존하게 돼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해도 서로에 대한 근황얘기가 끝나면 주변 지인들 얘기가 주를 이룬다. 걔는 잘 사는지, 쟤는 결혼은 했는지, 자녀는 있는지,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한 연인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다해도 똑같이 서로의 얘기를 하다가도 서로 아는 지인 얘기를 한다. 직장에 가면 바로 앞에서는 웃으면서 대하다가도 퇴근을 하거나, 아니 퇴근할 것도 없다. 돌아서면 그 사람 욕을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 얘기 하는 걸 즐길까.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재밌거든.
그러면 결론은 아주 간단히 도출된다. 그 재미를 타인에게 안 주면 된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나 혼자만 조용히 잘되는 것이 그게 이 현대사회의 진정한 승리자다. 집을 샀어도 그냥 전세나 월세로 평생 사는 것처럼 말하고, 차를 사도 좋은 차는 보여주기 싫은 사람에게 겉으로 안 타고 다니면 된다. 남들에게 부러움을 만드는 말과 행동을 그냥 하지 마라. 그건 내 앞에서만 부러움이고 뒤에서는 어떻게든 칼을 꽂는다. 혹은 누군가 칼을 꽂길 간절히 바라는 가면을 쓴 가짜 감정일 뿐이다. 진정한 내 사람은 내가 슬플 때 함께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기쁠 때 진정으로 본인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게 진짜 미치도록 어려운 거다. 이건 직접 당하고 겪은 사람만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길 바란다.
"꿈도 희망도 없고, 지금 잘 안 풀리는 사람"
부러움이 연민으로, 질투가 무관심으로 자리할 때 우리는 그때 한 발 앞서나가면 된다. 아주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