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에 대하여
글쓰기가 삶의 한 부분인 사람으로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게 된다. 이는 글을 쓰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딱히 특별한 취미가 있어서도 아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근사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에 사실 더 가깝다. 근데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도 자기 계발서에는 크게 눈이 가지 않는다. 서점에서 보더라도 잠깐 넘기다 다음 책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게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정 얘기가 궁금하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나온다. 자기 계발서의 특징이 문체가 길지 않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다. 결론은 절대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물론 20대는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지향해 왔다면 지금은 전혀 생각하는 게 다르다. 그 이유는 뭘까.
일단 자기 계발서는 이 숨 막히는 경쟁 속 살아남은 유명인이 저자인 경우가 대다수다. 출판사도 돈을 벌어야 하는 영리 업체이기에, 팔릴 것 같은 책만 당연히 찍는다. 즉, 저자가 유명해야만 그 책이 팔린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안유명한 데다가 어디서 한 번이라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저자가 책을 써 원고를 투고했는데 과연 그 투고가 책으로 만들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1%도 안 된다고 장담할 수 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그 어떤 독자가 그 저자 말을 믿고 인생교훈으로 삼겠나. 이 유명인들은 대개 각자의 영역에서 본인만의 방법으로 정상을 찍은 사람들이다. 결국 그 정상을 찍은 본인만의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자, 근데 문제가 뭐냐. 그 방법론 자체가 원론적이면서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원론적이지 않다면 내 삶에 변화를 주면서까지 따라 할 텐데 그럴 필요성이 낮아진다. 바꾸려 노력한다 해도 각자 처한 위치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 그걸 책 한 권으로 바뀌기는 꽤나 힘들다. 누군가는 돈이 인생에 전부일 수 있고, 누구는 명예, 누구는 사랑하는 가족 간의 행복, 연애, 학벌, 건강 등 제각각이다. 그가 아무리 그 분야에서 최정상을 찍었다 한들, 100% 공감하는 독자는 그의 팬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정답이라 할 수도 없다. 알고 보면 별게 아닌데 시기를 잘 타거나 운이 좋아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고, 책만 안 냈을 뿐이지 그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이 세상엔 널렸거든.
그래서 이 자기 계발서란, 다양한 환경에 놓인 독자 모두의 삶을 대변하지 못하기에 최근엔 눈이 아예 안 가게 된다. '자기 계발서'라는 이름보다 '경험서' 혹은 본인의 인생을 다룬 '자서전', '에세이'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 더 맞겠다. 자기 계발서는 타인의 경험을 내 인생에 빗대 위로를 삼거나, 삶의 고통이나 힘듦의 정도가 본인만 겪는 게 아닌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밖에 안 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그들이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애초에 찾아낼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도 각자만의 고충과 슬픔을 안고 산다. 다만, 돈에 미쳐있다면 본인이 대단한냥 그 성공을 두 배,세배씩 부풀려 타인으로 하여금 부를 창출하려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사실 책을 쓴 이유 자체가 본인의 경험을 알림으로써 본인의 명성과 인정을 갈망하는바람이 있다는 방증이다. 솔직히 생각해 봐라. 누구나 인생을 잘 살고 싶다. 우린 그 와중에 남들과 비슷한 평범함 자체가 평가절하된 사회에 살고 있다. 월 300만 원이 작지 않은 돈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직장인이 아닌 본인만의 길을 가라라던가,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해라라는 뜬구름 잡는 말들로 언론과 미디어, 각종 SNS는 평범한 직장인의 퇴사를 종용한다. 근데 정작 그런 선택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월 300보다 더 많이 안정적으로 벌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주변에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 그렇게 못 벌고 있기 때문에 다 잠적했거든 쪽팔리니까.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이 좋아하는 일 즉, 본인 같은 일을 하라며 부추김으로써 본인의 용역을 팔거나, 제품을 팔거나 그걸로 오히려 본인의 부를 창출해 경제적 안정을 취하려는 사람들이다. 그게 어떻게 성공이라 할 수 있나. 사기꾼이지.
너무 잘 살고 있는 SNS의 가깝지 않은 친구, 취업에 성공한 가까운 친구, 원하던 결혼이나 출산을 한 가족 중 구성원들. 다 너무 인생에 행복만 가득해 보일지라도 각자의 고충과 어려움은 필연적이다. 그걸 알 때에 우리는 자기 계발서보다 더 값진 걸 얻는다.
자기 계발서를 보지 않아도 인생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은 이렇다.
늘 우리는 선택이라는 걸 한다. 한 사람이 하루를 맞이하며 보통 200번에 가까운 선택을 한다. 작게는 아침식사를 뭘로 때울지, 나아가 일터에서 오늘 피피티는 어떤 구성으로 만들지, 어떤 주식에 내 돈을 투자할까 같은 것들. 결국엔 나에게 지금 닥친 무언가를 매번 해내면서 그 매 순간 맞이하는 선택만 잘하면 된다. 그 선택을 잘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 그게 자기 계발이다.
결국 진짜 삶이란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인생의 선택을 잘하는 것에 있다. 그게 진짜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보기 중에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매번 혼자 고심하거나, 그 경험을 가져봤던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불특정다수가 보는 SNS에 공유하기도 하고, 인생의 스승을 찾기도 한다. 근데 그거 다 필요 없이 내가 인생에 어떤선택을 할 때 나 스스로가 진짜로 좋아서 하는 선택인지, 타인의 권유나, 인정을 위해서 혹은 경제적 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자본주의의 가면인지 길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본다.
하늘에 한점 부끄럼 없이 나만의 생각이라는 게 오롯이 내 선택에 흡수되어 있는가. 내 생각은 1도 없는 후자인가 아니면 경제적 안정을 방패 삼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채 내 생각과 후자의 중간을 애매하게 걸쳐있는 건 아닌가. 이건 아주 눈치가 빠른 고민을 받는 상대방(스승이나 친구 등)이라면 파악할 수 있겠지만 보통은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그냥 본인만 아는 것이다.
인생엔 정답이 없거든. 우리 인생은 너무 광범위하고 삶엔 무수한 선택이 자리하고, 한 사람은 우주 속의 작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만의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간다.
재테크를 하든, 취업을 하든, 결혼을 하든, 누구나 말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 속에서 이런 고민을 섞어본다면 서점에 깔린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 앞으로 출간될 자기 계발서를 아예 읽지 않아도 훨씬 밝은 미래를 그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선택을 스스로 온전히 인식하고 교정해 가는 것, 그게 자기 계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