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누굴 만날 것인가
대기업에 다니는 여자 A가 있다. 연봉은 칠천만 원이 넘고, 현재 30살이다. 한 살 많은 남자친구는 있지만, 사업을 준비 중이라 불안정한 상황이다. 남친은 모은 돈도 별로 없어 이제 모으기 시작한단다. A는 이 남자가 좋고, 본인의 이상형과 부합해 진지하게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어 하지만 한 가지가 걸린다. 바로 재정적 상황이다. 결혼을 하려면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최소한 먹고 살 집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언제 갖추어질지 가늠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만나 확신을 달라고 진지하게 말해볼 생각이다.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남녀가 뒤바뀐 경우라던가, 혹은 꼭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한쪽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나도 20대 후반 자리를 못 잡았을 때 현재 아내와 헤어진적이 있어 충분히 공감 간다. 이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타이밍의 영역이다. 어쨌든 결혼이란 건 둘 다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심지어 요즘은 이 조건이 채워졌다 하더라도 살기 참 팍팍하다. 물가는 나날이 오르고, 취업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경제난 속에서 과연 사랑으로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느냐 우리는 늘 고심한다.
남자입장을 보자. 남자도 물론 돈을 많이 벌고 빨리 자리 잡고 싶다. 근데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하고자 하는 사업은 큰 진전이 없고, 재취업을 하자니 경쟁이 치열하고 예상했던 기간 내 인풋대비 아웃풋이 없다면 스스로 조급해진다. 자존감은 나날이 낮아져, 확신을 바라는 여자친구에게 진짜 확신을 주기 어려워진다.
여자입장에서는 30살은 꽃다운 나이다. 이 남자에게 2~3년 꽃다운 시간을 보내다 끝내 남자 쪽이 자리를 못 잡고 결혼적령기가 지나면 본인도 투자한 시간을 날리는 꼴이다. 돈보다 더 아까운 건 시간이다. 돈이야 벌면 되지만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둘은 그럼 헤어져야 맞는 걸까.
정답은 없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결혼정보회사가 왜 흥하고 있는지다. 이 둘이 헤어졌다고 해보자. 나중에 이 남자는 그렇게 내가 힘들 때 사랑했던 여자를 떠나보내고 자리를 잡을 것이다. 아니, 꼭 남들이 우러러보는 전문직이나 대기업을 가지 않더라도 일단 돈을 벌어먹고는 살 수 있는 제 앞가림을 할 것이다. 근데 그때만큼 사랑했던 여자는 없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쳐, 결혼정보회사로 찾아가 스펙을 평가받은 뒤 그에 맞는 여자를 고른다. 결혼을 해야 하는 현타이밍에 본인 옆에 있는 여자를 찾기 위해서.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와 끝내 헤어지고 여럿 소개팅을 해보지만 이 전남친만큼의 열정이 없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남자는 재력과 직업은 훌륭하나 순수함을 이미 잃어버린 후라, 조건이 채워져도 말할 수 없는 공허감에 허덕인다. 그러다 또 적절한 시기에 옆에 있는 적당한 남자를 만나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을 한다.
너무 극단적인 예시를 든 것 아니냐고? 현재 내 옆에 앉아있는 친구 얘기다. 이런 청년들을 불러 세우면 한 트럭은 될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일상적인 예시라 지겨울 정도. 어쨌거나 20대에 경제적인 이유나, 당장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헤어진 이 둘은 꼭 결혼정보회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서로의 조건에 맞는 이성을 소개받고 적당히 좋아하면서 결혼을 한다. 그렇게 이혼한 커플은 이미 내 주위에만 세 커플이 넘는다. 물론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보면 결국은 내게 온 소중한 인연은 함부로 떠나보내지 말아야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인연은 이렇게나 값지고 소중하다.
누구나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마음먹으면 하루 막노동을 해서라도 벌 수 있는 게 돈이다.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세상이라는 톱니바퀴에 맞물려 각자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지금 당장은 돈이 없더라도, 적당한 소비습관과 자기 계발을 통해 꾸준함만 지속된다면 언젠가 의미 있는 자산형성을 할 수도 있다. 근데 인연은 그렇지 않다.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오지도 않고, 심지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예 오지도 않는다.
집-직장-헬스-집만 반복하는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더 대박인 건 대부분이 피곤해서 헬스도 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사람을 만날 건가? 갈수록 인생은 팍팍해지고 현대인은 관계에서의 연대를 잃어간다. 증오와 혐오만 즐비한 사회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싹틀 수 있는 확률은 점점 옅어져 간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돈과 조건으로 포장해 결정사에서는 사랑을 상품화한다. 더 무서운 건 우리가 지금 거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내가 몇 등급인지 찾아보고 평가받고 있다는 거다.
주로 삶을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이들은 유독 이 부분에 취약하다. 연민이나 사랑, 위로, 감정적인 부분에 무디고 여기서마저 늘 본인의 손익을 따지는 데 급급하다. 그 이성적 관념이라는 것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그럴싸하게 둘러대기엔 한없이 옹졸하고 형편없다. 결국 인간이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그런 것. 결국 사람과 사람이 유대관계를 맺으며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내 모든 걸 줄 수 있는 이성을 만난다는 그 축복은 책을 읽는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똑똑하고 잘나기만 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 알기 힘든 영역이다.
내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본인이 그 기회를 만들든 우연히 오든 어떻게든 앞으로 몇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질 것이다. 그때 본인의 가치관, 사고관과 맞다고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해서 잡아야 한다. 만약 결혼 적령기라면 더더욱. 몸값을 높여서 내 연봉을 높이는 것보다, 미국주식에 대박이 나 몇백 배의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사업에 성공하는 것보다, 강남아파트에 사는 것, 혹은 그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재력과 직업을 갖춘 것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결혼하고 누굴 만나느냐다. 그게 내 삶의 99%를 결정한다. 그게 내 삶의 행복의 척도가 된다.
우리가 돈을 왜 버는가? 왜 맨날 쳐다보기도 싫은 출근길에 오르는가? 미래에 행복하려고 하는 거다. 그 행복의 90% 이상은 바로 가족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반려자를 잘 만나는 것에서 온다. 그래서 현재 미혼남녀에겐 결혼이라는 건 인생에 가장 큰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