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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IS OVER

한국은 진짜 끝일까

by 홍그리

아주 가끔은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상적으로 먹던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당길 때가 그렇다. 좋아하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내가 지불해야 할 금액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패드가 낡았을 때가 그렇다. 멋진 옷을 보다 말고 옷 안에 손을 짚어넣어 가격 태그를 먼저 뽑아볼 때가 그렇다. 역 앞에서 엄마와 헤어질 때 엄마 손에 한 움큼 용돈을 쥐어줄 때 그렇다.

대개 이런 일련의 순간들은 아주 찰나에 스치는 상념이기에 무시해도 상관없지만, 이런 안타까운 온상에 내가 더 자주 노출될 때에는 종종 관심을 아예 끊고 살았던 주식이나, 재테크를 검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동시에 발견한다. 마치, 바닷속에 미끼를 여럿 던지고 하나만 걸려라라는 심보 같은 것. 물컵에 있는 물을 쏟았는데 그 물을 주어 담으려는 노력 같은 것. 그냥 한마디로 의미없는 발악하는 거다.


한국인 아니, 적어도 내가 속한 집단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런 가치관이 아예 머릿속에 없는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기에 한국인이라고 싸잡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엔 다소 위험할지도. 이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나 더 이 돈과 관련된 생각들을 빈번하게 하느냐의 차이다. 맨날 더 많이 벌어야 한단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고, 주식을 하고, 사업 궁리를 세우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하루 24시간을 자본주의화된 생각들로 꽉꽉 채운다. 근데 이 모두는 이렇게 사는 와중에 공통적인 전제가 하나 있다.


전혀 삶에 부족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확히는 현재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돈을 벌지 않고 있다는 강박과 불안이 현대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소위 '놀고 있는' 청년들은 불안해하며 정신과를 다니고 밖을 못 나간다. 직업이 없는 백수는 소개팅이나 동창회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다. 대기업에 못 가면 시간이 아까우니 중소기업에서 경력이라도 쌓으라 한다. 상처로 가득한개개인의 트라우마는 일절 배제된 채. 이처럼 사회로부터 잠시 나와 쉬고 있는 청년들이나,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나 속에서 썩어 곪은 스트레스와 몸에서 오는 부작용, 의미심장한 입질들을 무시하고 꾹꾹 눌러 담다 마침내 그들은 번아웃이 온다. 이 번아웃의 파고에서 서핑을 즐기듯 마음껏 인생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적어도 내 주위엔 없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 않으려는 강박, 질이 아닌 양(돈이든 명예든, 권위든) 이 삶을 변화시켜 줄 것이라는 착각, 좀 더 쉽고 효율적이게 살아가고자 하는 생활습성과 사고는 21세기 한국에서의 삶을 더 각박하고 적적하게 한다. 이게 뭘까? 이게 전부 뭘까?

바로 '보편적 합리'다. 이게 바로 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이게 바로 인생의 정답이라는 보편적인 합리. 이는 그 어떤 타의 추종을 불허할 공포의 대상이다. 마치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같은 주입식 교육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예를 들어보자.

저출산, 서울집중화, 빈부격차, 청년실업, 학벌주의, 남녀차별 등 화려한 선진국의 이름 뒤 숨은 약점은 모두 앞서 설명한 보편적 합리성이 낳은 결과물이다. 자녀를 낳지 않아야만 지금 내 삶이 가장 효율적이고 넉넉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합리. 서울에 살지 않으면 인생이 불편하고, 기회는 없을 것이며, 삶의 질이 낮고, 외롭고, 심심하고, 모두에게 잊힐 것이라는 합리. 어떻게든 남을 앞질러 더 돈을 많이 모아서 강한 철옹성을 쌓아 내 영역에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합리가 부른 빈부격차. 이름 있는 대학교만이 내 삶을 보장해 줄 거라는 합리. 남자로 태어나면 여러모로 인생에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는 합리. 다수가 생각하는 이런 합리가 현재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닌 사실상 우리의 책임이다.


사람마다 모두 본인만의 합리가 있다. 거창하게는 본인의 인생관이 될 수도 있고, 사소하게는 가령 방청소를 하는데 청소기만 하는 것이 청소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청소기와 물걸레질까지 다 마무리를 해야 제대로 된 방청소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정도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합리.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합리가 하나로 점철되는 순간이 올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사회적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가 비판할 이 모든 사회문제도 다 우리의 합리가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하면 과연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그래서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은 과거 이를 미리 알아채고 당당하고 확신 있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청년들은 하루빨리 한국을 떠나라. 너의 똑똑함과 열정으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아프리카나 최소한 동남아에 가라. 이 나라는 20년 안에 무너진다.

사교육 시장의 일류기업의 회장이 한 말이다. 사교육 시장은 최대 10년 본다고 한다. 본인의 사업이 망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발언은 그 어떤 증거보다도 강한 확신을 준다.

그럼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염려하냐고? 대부분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 절대 이 사회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단지 '돈'으로 사는 여유가 아니라 좀 더 더 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그러니까, 현실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이 합리적이라고 다수의사람이 느끼는 순간이 올 때 사회가 마침내 변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 전제가 있다.

먼저 진짜 천재가 나타나야 한다. 미국의 일론머스크 같은 창의적인 천재가 나타나 새로운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군중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왜 판검사, 법조인같은 문과들이 해 먹는 나라는 퇴보할 수밖에 없냐에 대한 답변이다. 이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근데 이런 천재는 백 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 AI나 과학기술에 집중투자한들, 급박한 현실을 구해줄 현실성 있는 해결책은 아니다.

다음은 관계에서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 내 감정을 다해 상대를 돕는 것.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이타적으로 사는 것. 그러면서 돈을 벌면 된다.

그러려면 매일 공부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고3 대학생들이 더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을 꿈으로 사는 나라가 아니라, 어떤 창의적인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유튜버로 ‘오늘은 어떤 광고 쓰지’라며 광고 붙여가면서 떼돈 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이로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 된다. 주식차트를 기가 막히게 분석하는 주식쟁이가 아니라, 지금 세계경제와 우리나라가 어떤 위기에 처해있고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된다. 획일화된 물질적 풍요보다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본인의 성취를 넘어 물질적 풍요는 저절로 따라온다. 이건 좇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들이다. 집착할수록 멀어지는 게 사실 돈이거든.


희망으로 가득 차야만 하는 이 푸르른 봄에 푸념이 길었다. 잘 살고 싶다는 말은 어쨌든 생명유지 그 이상의 것에 목적을 둔다. 그건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고자 하는 거대한 결심이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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