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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생산직 VS 행정고시

직업에 대하여

by 홍그리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시끄러운 와중에 최근 자주 느끼는 생각이 있다. 현대사회는 편 가르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흑백논리에 젖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헐뜯어야만 내가 살아남는 그런 적자생존사회다. 오죽했으면 후보자들도 대선토론에서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를 비난하는 데에만 혈안이 됐겠나. 이 모든 원인은 각자의 삶이 여유롭지 않은 이유가 클 것이다. 모두가 풍족하면 이념대립이 필요가 없다.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본인에게 유리한 이념이 채택되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 인생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더라도 상대를 묵살시키는 것이다.



최근 뉴스까지 나왔던 이 현기차 생산직과 행시논란도마찬가지다. 돈이 아무리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지만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많다고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특정 직업과 단적으로 비교하며 어떤 것이 우위고, 열위인지 매겨지는 것은 마치 돈만이 맹목적으로 이 삶을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로 들린다.

물론 현기차 생산직 좋다. 야간근무도 안 해도 되고, 초성과급, 특별수당까지 더하면 신입인데도 6-7천 가까이 받는다. 2년 차, 3년 차부터 성과가 터진 해에는 연봉을 8천까지도 받는다.

복지는 또 어떤가. 임직원이면 현기차를 할인받아 구입할 수 있으며 연차가 쌓일수록 이 할인율은 올라간다.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건 생산직은 내 일만 하면 되기 때문에 퇴근 후 연락이라던가, 일반 사무직 직원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는 거다. 완전한 워라밸을 갖춰 일과 가정의 삶을 분리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사무직대비 업무강도도 낮다. 근데 네임벨류까지. 노조가 힘이 세기 때문에 가만히만 있어도 정년이 보장되고, 아무 걱정 없이 집도 사고, 자녀도 키우며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중간에 자산을 형성하는 데 있어 코인 혹은 주식에 꼬라박는다거나, 도박으로 전재산을 잃는다거나 하는 헛짓만 안 한다면.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로 두고 있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생산직이라는 대중들의 인식자체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이 위와 같은 비교가 나온 배경이 아닐까 한다. 이곳에 다니는 지인 왈 직원들도 대체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


자, 다음 5급 공무원. 5급 공무원은 사실 1차만 붙어도 장학금을 주는 학교도 있다. 사무관으로, 공무원의 별 중의 별이다. 하지만 연봉은 이 생산직 직원의 영끌기준 절반에서 조금 더 받는 정도다. 행시는 전교에서 1등을 하는 사람도 떨어지는 시험이다. 그만큼 붙으면 집안의 경사를 넘어 학교, 그 지역의 경사이기 때문에 명예는 자동으로 따라온다. 비록 돈은 생산직처럼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이들에게는 가장 큰 장점, 명예와 더불어 주변의 인프라가 있다. 나중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도 주요 기업의 고문으로 가거나, 요직을 맡을 수 있다. 최소 일자리를 걱정하진 않는다. 초엘리트집단이기 때문에 주변의 인맥도 생산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차이가 난다. 엘리트집단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기회는 사람한테서 오거든. 심지어 대개 요즘은 5급 공무원을 합격하는 비중 중, 집안이 (어느 정도 계속 공부를 시킬수 있도록) 여유가 있는 중산층 집안이 많기 때문에 사실 돈을 보고 이 공직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의 여생은 한없이 불행할 것이다. 본인이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헌신과 자부심이 결국 선택한 5급공무원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성취에서의 가장 큰 소명이 된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 갈라치고 있다. 이 세상은 흑 아니면 백이다. 그 와중에 돈에 매몰돼 돈이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은 본인이 경험한 것이 전부인 줄 안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묻어난 잣대에서 이 모든 세상을 바라본다. 현기차 생산직을 경험한 누군가는 그 경험이 만족스러워 여유로운 연봉으로 가족을 일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반면, 열심히 노력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누군가는 국가에 대한 헌신에 따은 성취감과 보람으로 또 다른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설문조사에서 의외로 생산직을 선택한 이가 50%가 넘었는데, 이는 돈으로 행복을 느낀 경험이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 반대는 돈으로 매몰된 이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그 어떤 가치를 좀 더 우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돈을 싫어하거나, 배척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기준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냥 이 둘은 애초부터 우열할 것 없이 너무 다른 직업이다.


나보다 못한 누군가가 있으면 연민과 측은지심을 느끼며, 나보다 잘난 누군가에게는 진심 어린 존경과 칭찬, 격려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곁에 많아질수록 더 살고 싶은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런 사람들은 특히나 시대에 변화에 크게 상관없이 본인 소신껏 직업을 선택한다. 그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내 할 일 열심히 하면서 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면 되는 부분이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잘 산다. 이런 누가 더 좋니 안 좋니 단순한 비교엔 큰 감정을 쏟을 필요가 없다.


기아차생산직에서 오늘도 열심히 근무한 사람들에게는 그 직업이 본인이 살아온 몇십 년 인생 평생 최선의 선택이다. 그렇기에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회사도 그들을 리스펙 하기에 그들을 채용했을 것이고, 연봉까지 높으니 본인, 그리고 회사, 주변의 모든 사람에 선순환구조를 만든다. 반대로 5급 공무원도 최소 몇 년을 고생해 가며 노력한 산물에 본인을 포함한 모두가 자랑스러워한다. 연봉이 낮더라도 한낱 돈의 액수와 바꿀 수 없는 주변 인프라, 초엘리트집단의 긍정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의 삶은 국가에 이바지하면서 보람과 성취로 평생 남을 것이다.


이 둘 중 어떤 직업이 더 우월하고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명 생기면, 그 비교군에 맞물려 불행한 한 사람이 새로 생기는 꼴이다. 어차피 현직에 있는 둘을 바꾼다 쳐도 서로가 적응을 못해 퇴사한다. 그냥 본인의 삶이 제일 좋은 것. 인간은 그 본인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초극대화하기 위해서 '비교'라는 실수를 저지른다. 성인이라 함은 진짜 이를 지양하고,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데서 완성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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