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대한 소고
수능 시험을 보고 학교 정문을 나오는 그 기분엔 각자 희비가 교차한다. 누군가는 생각보다 아는 문제가 많이 나와 느낌이 좋고, 누군가는 망했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자리한다. 어쩌면 19년 살면서 가장 큰 이벤트고,본인의 지난 12년 교육과정을 평가받는 자리이기에 그부담감의 무게는 그 나이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일테다. 유독 서열화를 좋아하는 한국에서 어쩌면 첫 서열화할 수 있는 기준에 19살 고3 모두가 맞이한 날이다. 마치 20대 남성이 때가 되면 군대에 가는 것처럼.
대학이름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쳐지겠지. 그래, 맞다. 그때는 그게 인생의 전부처럼 보인다. 마치 누구나 아는 이름 있는 서울의 대학교에 가면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만 같고, 지방에 이름 없는 곳에 가면 인생이 험난하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는 55만 모든 수험생의 부모가 그렇게 윗세대로부터 답습받았고, 현 수험생들에게 그대로 답습한 결과물이다. 모두가 대학이름으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나라이기에 이를 구분짓는 매우 중요한 오늘 하루는 공무원이나 관공서는 출근시간을 조정하고, 영어듣기 평가시간엔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
가채점을 할 예정인 오늘, 시험을 잘 본 이들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고 싶다. 무언가를 노력해서 이룬 그 성취감은 대학을 졸업해서도, 취업을 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는 데 큰 발판이 된다. 그 성취감으로 더 나은 결과물들을 앞으로 더할 나위 없이 얻게 될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과정에서 문제 몇 개 더 맞춰서 100% 성공한다는 보장은 물론 없다. 하지만 상위 대학교에 진학할수록 노력해서 만족하는 결과물을 얻은 또 다른 이들을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은가. 함께 있는 그 만남에서 시너지를 얻고, 인생을 더 양질의 무언가로 채워가겠지. 건강한 관계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은 마치 누군가는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데 엘리베이터로 한 번에 오는 격이다. 서로 인사이트를 공유하면서 더 성장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정보를 얻어가면서 그렇게 계속 시간을 보내면 된다. 한마디로 더 큰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생각보다 잘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와 반대로 속상한 마음이 자리하겠지. 근데 그 속상한 마음은 이번 주말까지만 마음껏 슬퍼하고 며칠 가지 않았으면 한다. 십몇 년 전의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뭔가 억울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고 그렇게 성실하게 임해왔는데 컨디션난조라거나 과도한 긴장이라거나, 하필 내가 모르는 것이 나와 점수가 좋지 못했을 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고 말이다. 누구나 한 번밖에 없는 이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자조 섞인 말만 해대고, 타인을 괜히 깎아내렸다. 딱 한 가지, 수긍할 수 있었던 건 누구나 한 번밖에 없다는 공정함이었다.
근데 그때는 몰랐던 것이 있다.
그 공정한 순간이 있었고, 그때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고, 상황은 바꿀 수 없고, 그냥 그걸로 끝난 거다. 이미 지나간 시험이다. 앞으로 70년~80년을 더 살아야 하고, 또 무수한 공정한 기회가 찾아온다. 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서열화라는 것의 첫 시작을 누군가 수능이라 생각한다면 결국 마지막에 그 서열화의꼭대기에 올라가 있으면 되는 게임 아닌가? 그래서 출발선이 본인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자책하고 놓아버리기보다 그 시간을 조금 더 즐겼으면 한다. 개구리도 힘을 모아야 멀리 뛸 수 있고, 아무런 인내와 고통 없이무언가를 얻는다면 그 얻은 것마저 휘발성이 강해 쉽게 잃어버린다. 마치 쉽게 얻은 돈은 금방 소비하는 것처럼. 점수 맞춰 간 곳에서 또 다른 기회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펼쳐질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19살 11월의 한탄과 좌절로 지금 전혀 다른 것으로 삶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시작은 그냥 시작일뿐이다. 끝은 죽기 전에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이 절대만족을 하는 행복한 삶에 만약 경제적 능력, 명성 등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도 결국 목표는 그 서열화의 최고에 언젠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을 발판 삼아 교훈얻어 다시 더 크게 도약하면 그만이다. 학벌이 주는 가치를 높이 사는 와중에 시험을 잘 본사람은 그냥 그대로 그렇게 꿈을 펼치면 되는 거고. 그냥 둘 다 행복한 하나의 이벤트. 진짜 하루동안의 ‘이벤트’일 뿐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25년 대학등급표라고 한다. 서열화를 좋아하는 국가답게 역시나 세부적으로 잘 매겨놨다. 상위 5% 성균관대를 간들, 그 밑에 한양대를 간들, 상위 20% 전남대를 간들 누가 십 년 뒤, 이십 년 뒤 돈 많이 벌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세상에 건강만 하다면 어떻게든 다 먹고살고 가능성은 그야말로 넘쳐흐른다. 학벌을 보는 대기업 취업이나, 전문직 라인이라거나 고용자의 입장에서 불특정 다수에서 몇 명을선택해야 하는 입장 말고는. 결국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내가 뭘 하고 싶고, 무엇에 시간투자하는 게즐거운지를 알아내는 게임이다.
그래서 11월의 수능은 아무쪼록 좋다. 각자 노력한 결실을 맺는 날의 개념보다 하나의 ‘이벤트’로 아무것도 없던 각자 미래의 길에 작게나마 점이라도 하나 찍는 꼴이니까. 고작 대학이름정도가 그 길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 절대 기준을 내릴 수 없거든. 반에서 공부꼴찌라 무시받던 학생이 10년 뒤 백만장자가 되어 나타날 수도, 1등 했던 친구가 쫄딱 망해서 연락이 끊길 수도, 공부 중간정도 한 학생이 실제로 그저 그런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중간정도의 인생을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일이다. 흐르는 대로 내게 주어진 길안에서 최선만 다하면 그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옳다고 믿고 잘 살고 있다고 믿으면 승리하는 그런 자기합리화의 게임아닐까.왜냐고? 남들이 뭐라하든 적어도 그는 죽기 전에 행복할 테니. 아들이 고3이라 수능을 잘 쳤는지, 못 쳤는지 어제 잠도 한숨 못 자고 전전긍긍하며 회사를 연차 낸 지인에게 건넨 말은,
수능이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끝냈다는 것에만 기념하자고. 결과를 떠나 더 큰 무궁한 길이 열려있을 거라고,걱정 말라고. 하나의 길만 12년간 달려왔다면, 이젠 백개, 천 개의 길이 눈앞에 있을거라고.
수험생 여러분들, 수험생 부모님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맛있는 거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