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기회겠지
지하철을 타면 누구는 웃고 있다. 누구는 짜증을 내며 통화를 하고 있다. 아침에 친구가 기분이 안 좋다며 위로를 해달라고 카톡이 온다. SNS에 접속하니 누구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 꽃다발 사진을 올린다. 또 다른 지인은 결혼준비로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유튜브의누군가는 40대에 회사에서 잘려 앞으로의 삶을 걱정한다.
드라마의 누군가는 잘못된 상가투자로 퇴직금 전재산을 잃고, 친구는 주식으로 몇억을 벌어 캡처해서 자랑을 한다. 이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각기 다른 것에 감정의 변화를 겪고, 삶의 굴곡을 경험한다. 누군가는 각자 삶의 격한 파고 속에서 가장 위층에서 해맑게 웃고 이 파고를 마치 서핑을 타면서 즐기고 있을 테고, 반대는 가장 밑에서 높은 파도에 짓눌려 숨조차 못 쉬면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길을 스치는 모르는 사람조차 이런 생각이 드는데,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더 애착이 갈 테다. 혹은 같은 공간에 있는 같은 목표를 위해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같은 직장 안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나 제각기 다른 생각으로 하루를 채워간다. 본인이 맡은 업무들 이외, 같은 직급에 같은 회사에 같은 옆자리에 있다 해도 말할 수 없는 각자의 고충은 역시 상존하는 법. 그 고충은 대개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결핍에서 기인한다. 누군가는 고연봉에, 안정적인 삶에, 키도 크고, 성격도 모난데 없는데 여자친구가 없어 고심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똑같은 월급을 받아도 투자한 자산이 급락해 시도 때도 없이 신경 쓰여 주식창, 코인창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쉴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건강이슈로 병원을 다니고, 가족이 아파 케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각자 주어진 이런 환경들은 대개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한 예상치 못한 결과일 수도, 아니면 본인 탓으로 생기지 않은 갑자기 발생한 일일 수 있다.
그러면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갑자기 다쳤거나, 직장에서의 성과를 기대했던 것보다 이루지 못했거나, 고연봉을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이런모든 세상만사 일어나는 일들에 열등감을 가지면서 계속 어떻게든 안감힘을 쓰며 해결한다 하면 뭐가 달라질까? 한다고 했는데 이미 나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 어쨌거나 벌어진 일일 뿐이다. 최대한 뒷수습을 하되, 안 되면 그런 하나하나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하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통제가능한 영역에 집중해 보는 거다. 누군가는 소개팅을 지인에게 갈구하고, 내년에 일을 더 효율적으로 열심히 해본다거나, 고연봉을 받기 위해 이력서를 여러 개 더 뿌려본다거나, 쓰는 방식을 한번 바꿔본다거나, 돈이 부족해서 퇴근 후 부업을 알아본다거나. 어쨌거나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결과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거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발생한다. 누군가는 생각한다. 꾸준히 노력하면 다 해결되고, 이뤄질 수 있다고. 그런데 사실 하루의 일상을 채우는 대부분의 일들은 노력과는별개로 일어나는 일이 많고, 노력을 아무리 해도 이뤄지지 않는 일들도 부지기수다. 가령,
목표하던 대학교를 위해 수능 단 하루만을 위해 몇 년을 고생한 고3은 수능당일 긴장을 너무 한 나머지, 생전에 받아본 적이 없는 점수를 받은 친구도 있을 것이고, 재수를 한다고 해서 그때는 긴장을 하지 않아서 점수를 잘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한 번만 더 해보면 잘 나오겠지, 딱 한 번만 더해보자고 몇 년을 '수능' 단 하나만을 보며 달려왔던 재수생, 삼수생의 인생은 잔인하게 단 하루의 성적으로 타인에게 잔혹하게 평가받는다. 그리고 운 좋게 찍어서 많이 맞춘 학생은 과거에 조금 놀고 요령을 피워도 그저 잘하는 학생이 된 거고, 아주 많은 걸 포기하면서까지 몇 년을 미치도록 고생한 누군가가 수능 하루를 망쳐버리면 지난 교육과정의 12년 모든 삶을 부정당한다.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건 이 피 튀기는 경쟁 자본주의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전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얘기고,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디폴트로 가져가는 삶의 태도가 '항상 꾸준히 노력한다'라는 것뿐이다.
잔인하게도 실제 그렇다. 다 괜찮고 너 잘못은 없다는 무조건적인 위로는 술과 담배처럼 당장은 기분이 나아지고 평안해지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더 노력했어야지" 하는 인간성이 결여된 채찍은 당사자를실제로 피가 나도록 다치게 한다.
자, 그럼 돈이 아주 많지 않고, 내 이름이 유명하지 않고, 금수저가 아닌 데다 특출 난 재능을 나이를 먹었음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 같은 보통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시민은 어떻게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내 사람과 내 가족을 챙기면서 내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아하는 걸 하나 가지고, ‘흘러가는 대로’ 살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 안에서의 장점을 즐기고 단점을 안고 수용하면서 크게 동요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는 거다. 어쨌거나 오늘도 기적처럼 살아숨쉬는 소중한 하루지 않나. 그런 생각 속 하루를 보내면 좋았던 순간들도, 안 좋았던 순간들도 눈 깜빡했다 뜨면 어떻게든 다 흘러가고 지나가있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어떻게든 다 해결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세상의 아픔을 자의식과잉에 젖어 홀로 모든 걸 짊어지는 양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진인사대천명.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면 된다. 그리고 간절히 그 결과에 목숨걸 것도 없다.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흘러가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어떻게든 다 된다. 다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