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어떻게 살던 뭔 상관?

‘나랑 무슨 상관인지’ 마인드셋

by 홍그리

“ 지인 아파트가 5억이 올랐는데, 나는 왜 하는 것마다 죽 쑤는 걸까?”


“친구는 결혼할 때 부모님이 1억 5천만 원씩 해주신다는데 난 뭐야. 왜 무일푼으로 시작해야 돼. 아니야. 내가 그래도 걔보다 연봉은 높으니까“


“ 어떻게 매년 몇 번씩 저렇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지? 나도 너무 가고 싶다. 일 년에 한 번도 지금 겨우 가는데 말이야”


“내 고향친구들은 다 이미 취업해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 사는 거 같은데 난 아직 취업준비 중이네. 아 현타 온다"


실제로 내 지인들에게 최근 들었던 말이다. 비교란 끝이 없고, 조금이라도 비교하는 순간 어느 순간 본인이 작아지는 순간은 어떻게든 오기마련. 아무리 현재 잘 나가고, 좋은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아주 높은 확률상 그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 오르고 내리는 그 파고는 어떻게든 존재하고, 다만 내가 그 파고에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에는 비교할 때에 본인이 유리한 위치에 서 있어 좌절을 하거나 열등감, 열패감을 느끼는 날의 빈도가 좀 더 낮아질 뿐. 반대는 그 빈도가 좀 더 높아지고. 딱 그 차이다. 좋은 순간은 언제든 한 번은 오고, 어쩌면 우리는 그 순간을 더 빨리 부르기 위해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살아내는 건지도 모른다.


비교를 줄여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냐면 다 각자 살아가는 환경이나 가치관, 겪은 경험의 양과 질이 다르니까. 누구에겐 1억은 전재산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1억은 돈도 아니다. 1억? 그냥 뭐 하루에 쓰고 없어지는 그런 재화의 가치정도로 생각하겠지. 심지어 실제로 진짜들은 1억을 썼는지, 2억을 썼는지 아마 세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비교를 줄여야 한다지만, 사실 현대사회에서 비교를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한 게 결국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살아야 한다. 똑같은 직장, 똑같은 집, 똑같은 자산, 개인재산사유 금지의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비교라는 걸 할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비교하는 본인을 자기합리화하고자 본인이 가진 다른 걸 어필함으로써 그 행위자체를 정당화하는 것에 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본인이 현재 잘 살고 있다고 사실은 꽤 행복한 삶이라고 믿기 위한 긍정적인 태도일 수 있지만, 사실 그 행위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0이다 0. 본인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를 숫자로 따지자면. 왜냐?

남이 잘 산다고 나한테 10원 떨어지는 거 없고, 다른 쪽에 잘난 부분이 있다고 상대는 1도 신경 쓰지 않으며심지어 내가 남보다 모든 것이 낫다해서 사실상 본인에게 얻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 어떤 합리적인 비교에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더 편하게 앞선 예시를 보자.


1) “누구 아파트가 5억이 올랐는데, 나는 왜 하는 것마다 죽 쑤는 걸까?”

> 지인의 아파트가 5억이 오른 건 그냥 그 지인이 과거에 샀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용기 있게 그 아파트를 구입했고 다행히 5억이 올랐다. 근데 그 5억이 본인이랑 무슨 상관인가? 본인은 그 지인과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은 딱 하나다. 그아파트를 안 산 것뿐. 여기에 다른 모든 것이 죽 쑨다고열패감을 가지는 건 부정적인 감정을 본인의 인생에 지배하게 그냥 통째로 내버려 두는 꼴이다. 그때 본인은 그 투자한 5억대신 다른 가치있다고 생각한 것에 투자했겠지. 아니면 그 돈이 없었거나. 시간을 돌려도 그렇게 했을걸?


2) “내 친구는 결혼할 때 부모님이 1억 5천만 원씩 해주신다는데 난 뭐야. 왜 무일푼으로 시작해야 돼. 아니야. 내가 그래도 걔보다 연봉은 높으니까“

> 본인 친구가 부모님께 결혼할 때 1억 5천을 달라고 떼를 쓰고 조른 게 아니다. 그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는 여유로우시고, 그 정도 자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니 알아서 결정을 내리신 거다. 어쨌거나 나는 0원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를 수도 없다. 상황을 바꿀 수 없고 내가 졌다는 모멸감에 어떻게든 자기 위안을 삼고자 한다는 게 본인의 강점을 이용해 상대를 억누르는 것. 바로 '연봉이 더 높다는 것'이다. 너무 본인이 치졸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내가 친구보다 연봉이 높든 낮든 상대는 아무런 신경도 안 쓴다. 본인은 결혼할 때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바뀌지 않는다. 친구는 그냥 지원받아 풍족하게 결혼하는 거다. 나랑 아무 상관 자체가 없는데 왜 그걸 숨기려고 본인의 비교우위를 강조하나. 나는 그냥 아무 지원 없이 없이 결혼해서 그냥 앞으로 나 스스로 잘 살면 된다. 내 인생과 그 어떤 관련도 없다.


3) “ 어떻게 매년 몇 번씩 저렇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지? 나도 너무 가고 싶다. 일 년에 한 번도 지금 겨우 가는데 말이야”

> 부럽다. 일 년에 몇 번씩 여행 가는 사람들을 SNS를 통해 볼 때면 나조차 너무 부럽다. 근데 그 SNS에 그 글을 올린 본인은 해외여행을 본인보다 더 자주 가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아니, 해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주재원이나, 해외출장이나, 일로써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다.

일 년에 본인이 한 번이라도 가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그 자체가 부러운 사람도 많은데.

‘겨우’ 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건 본인이 어떻게든 해외여행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최소 가려고 노력하는 의지가 느껴지고, 그러면 그 한번 가는 해외여행을 100% 충만하게 즐기고 오면 될 것. 지금은 한번 가지만, 나중에 많이 갈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그 한번 갔을 때처럼 재밌지도 않고, 충만하지도 않고, 지루하다면 그땐 또 어떤 생각이 들까.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엔 양면적인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4) “내 고향친구들은 다 이미 취업해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 사는 거 같은데 난 아직 취업준비 중이네. 아 현타 온다"

> 취업준비는 빡세게 해 본 사람만이 이 대답을 진정성 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힘듦은 그 어떤 위로의 말이나, 책이나, 성경이나 소용이 없다. 아니,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지금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없다. 취업이 되어야만 끝나는 문제다. 출소가 취업이고, 본인의 삶은 철창 속에 하루 종일 갇힌 감옥소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때에는 다른 친구들이 애를 낳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것 자체를 본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동해 보면 된다. 그들이 나는 안정적인 삶이니까, 불쌍해서 너한테 돈을 줄게. 하면서 돈을 주나? 자리 잡을 때까지 널 지원해 줄게. 넌 언젠가 잘 될 거야.라고 하는 미친놈은 주변에 없을 거다. 즉, 그 말은 뭐냐. 그냥 상관이 없다는 거다. 대기업에 취업을 하든 중소기업에서 빌빌대든, 퇴사를 하고 다시 취업을 하든,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그냥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 왜? 난 지금 당장 취업을 해야 하니까. 그게 1순위니까. 그러면 뭐에 집중해야 할지가 보인다.


비교를 끊기 위한 억지 자기 합리화는 오히려 삶을 더 망가트린다. 나의 불완전한 자존감을 업고 방패로 내세운 비교우위는 상대는 신경조차 안 쓰고 있으며,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 혼자 그냥 소설쓰고 있는거다. 비교를 끊으려면 ‘아예’ 확 끊어버려야 한다. 답은 하나다. 주체를 본인으로 잡고 본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뇌리에 박으면 된다. 누칼협, 알빠노는 그냥 나온 신조어가 아니다. 입에서 잘 안 떨어지면 그냥 외우자.


아니,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keyword
화,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