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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기세야 그냥 가는 거야

‘우연이 행운으로’ 마인드셋

by 홍그리

어떻게 새해목표를 짜야하냐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스타벅스 프리퀀시를 다 모아 누군가는 다이어리를 받았는데도 크게 쓸 얘기가 없어 고민한다. 목표가 늘 거창해야만 좋은 건 아닐지라도, 사소한 목표자체를 쓰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올해의 본인과 내년의본인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불안과 의구심이 당연히 들겠지.

어쨌거나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세운다는 건 꽤 고무적인 일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생각자체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게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의 근본원인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에 당해연도의 성적표는 어쨌거나 과거보다 높을 수밖에.

어느 자기 계발서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라'라고 하고, '괜찮아, 고생했어' 같은 무조건적인 위로로 독자를 자기합리화하려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2030은 어떻게든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재테크든, 직장의 승진이든, 투자하고 불려 경제적 자유를 가지라고 한다. 각기 다른 이 단어들 속에 조금 더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 개개인은 목표를 설정할 테고, 거기에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하겠지.


근데 목표는 내 경험상 힘들게 세워도 스트레스, 느슨하게 세워도 스트레스다. 힘든 목표는 힘들게 내 몸을 굴리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심신이 힘들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게다가 만약 그 목표에 실패했을 때 큰 자책과 좌절이 동반된다. 반대로 느슨한 목표는 성취감이 강한 누군가에겐 삶의 불만족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늘 내 지인들에게 새해에 어떻게 살자라고 얘기하는 건 일관되게도 하나다. 10년, 20년의 장기적인 플랜만 가져간 채, 그냥 물 흐르듯 살아가보는 거다.

이 전략은 통제의 영역에서 볼 때 그대로 성립한다. 내일 비가 오는 것, 눈이 오는 것, 건강의 악화나 실연, 주식의 하락, 시험, 갑작스러운 비보, 취업이슈, 회사의 승진 삶에서 고민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본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결과를 내 힘으로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라는 게 생기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으로 불안해하고 상담을 하고 하는 것.

근데 오늘 누구와 저녁을 뭘 먹을지, 내일은 무슨 옷을 입고 출근할지, 친구 누구와 약속을 잡을지, 영어공부를 할지, 올해는 어디를 여행할지, 어느 기회가 왔을 때무엇을 선택할지라고 하는 것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아주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 따라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것.

가령, 실제로 강남에서 저녁에 누군가와 저녁을 먹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글을 한번 써볼까 고민을 하기도 했고, 타인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에 대한 걸 독서로 표출하기도 했다. 그냥 다 ‘어떻게 시작하냐’ 그 차이일 뿐. 이 시작은 다이어리에 적어서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라는 문장보다 훨씬 더 힘이 있다.

결국 내게 이로운 우연을 어떻게 더 많이 만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결국 양질의 경험이다. 꼭 깊은 고민을 한다 해서 결코 좋은 일이 생겼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1) 2개월 전 화분을 깼다. 마우스를 옮기다 팔꿈치로 세게 치는 바람에 책상에 놓인 화분이 깨졌다. 작지 않은 사이즈의 꽃이었는데(이름은 잘 모른다) 완전히 뒤집히는 바람에 줄기가 휘어 그냥 죽었다 생각했다.

근데 혹시 몰라 그릇을 바꿔, 다시 흙을 채워 이젠 그래도 볕이 조금이라도 드는 곳에 놔두자라는 생각이 들어 베란다로 옮겼다. 간간히 물을 주고 나서 최근에 보니 기존 내가 기억하기론 3~5cm밖에 안 되어 보였던 그 꽃이 10cm가 다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만약 화분을 깨트리는 우연적 사고가 없었다면, 이 꽃이 이렇게 햇빛을 잘 받으면서 빠르게 클 수 있었을까?

가만히 그냥 내 방에 놔뒀다면 분명 물을 주는 것도 까먹었을 테고, 관리가 소홀해져 햇빛도 잘 보지 못했을 테고 비극적 결말을 맞았겠지. 화분을 실수로 깨트렸을 뿐인데 그게 긍정적인 결말을 불러온 계기였다. 신기할 따름이다.


2) 친구와 쇼핑을 하러 더현대에 갔다. 정확히는 더 현대백화점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지하에 연결된00 호텔에 숙박을 하기 위해서다.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우연히 한 번만 보자 하는 그곳에서 친구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화장실을 찾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 안경점이 있다. 그곳을 힐끔거리다 친구는 충동구매로 하금테 안경을 산다. 그리고 그다음 날 있었던 소개팅에서 상대편 여성분에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안경을 끼셨네요"

라며 극찬을 듣는다. 너무 좋아한다. 그 호텔을 가지 않아서 더현대에 우연히 들릴 일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를 떠올려보면 한없이 똑같은 일상에다 그 여성분과 잘 될수 없었을지 모른다.


3) 자주 가는 친구 미용실에서 어떤 손님이 온다. 피부과에 다니시는 간호사분이다. 레이저제모를 강력추천한다. 오픈이벤트를 하고 있어 전국에서 제일 싸다고 한다. 친구와 나는 당장 방문하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신세계를 경험 중이다. 이걸 결혼 전에 알았다면 어땠을까, 미용실을 방문한 시간대 그 간호사 손님이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일상 속에 소소하거나, 큰 일로 이어질 수 있는 이 모든우연을 우리는 그냥 계속 기다릴 건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현명한 어떤 답을 얻을 때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그 깨달음이 정답이라 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다. 화분을 깨트린 것, 화장실을 본 것, 하필 그날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그 자체가 귀한 우연이다.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이뤄야 하는 강박 없이 마음도 편하고, 일도 더 잘되고. 어쨌거나 무언가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데에서 큰 행운이 그렇게 시작되는 거다. 뭘 생각할 이유가 있나. 그냥 계속 마음 편하게 겪어보고 도전하는 거다. 집 안에만 박혀있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걱정, 근심거리들은 사실 다 지나가고 어떻게든 잘 풀리게 돼있다. 어떤 기준 이상의 노력이나 개인의 재능이 필요하다거나, 시간을투입해야 한다거나, 운이 꼭 작용해야만 가능한 일들 제외하고는. 지금 본인이 생각하는 것 다 된다 무조건. 그 과정이 다를 뿐. 어떻게든 다 된다.


인생은 기세고, 그냥 그렇게 가는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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