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뭐 별거더냐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by 홍그리

A는 육아휴직 중이다. 신생아 육아에 여념이 없다. 밖에 돌아다니지도, 예전의 자유를 만끽하지도 못한다. 하루 종일 독박육아를 하며 집 안에만 박혀있다. 2시간마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며, 본인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남편에 화만 가득하다. 스트레스를 풀 방도를 찾으려 애써도 아기가 잠에서 깨거나, 또 울면 스트레스를 풀 시간조차 없다. 집 안에만 박혀서 햇빛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건지 우울증이 도지는 것만 같다. 맛있는 걸 시켜 먹어도 크게 나아지질 않는다. 또 그냥 오늘 하루도 악순환의 반복이다.


B는 32세 취업준비생이다. 정부에서 대기업 고용을 장려하지만 막상 취업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보면 전혀 체감이 되지 않는다. 이 체감을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취업공고의 절대적인 양의 부족인지, 아니면 본인의 역량부족이라 면접조차 못 가는 상황에 대한 합리환지. 하.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왜냐.

주변의 친구들은 좋은 곳에 다 취업하고 돈을 벌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본인만 몇년째 제자리인 느낌이다. 취업이 한 달 한 달 늦을수록 '뭐 조금 늦으면 어때'라는 낙관적인 마인드를 가지려 애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것이 이 시간 전체가 기회비용에서 매몰비용으로 치환된다는 사실. 내가 한 달 동안 돈 못벌동안 한 달 월급이 날아가는 셈이고 의미 있는 자산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지금 까먹기나 하고 있으니 미칠 판국이다.


C는 여의도 금융맨이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도 받았고, 취업도 무난히 쉽게 했다. 근데 흙수저다. 부모님이 설상가상 암에 걸려서 모든 치료비를 다 부담해야 한다. 물려받은 재산은커녕, 월급을 부모님 암치료비에 다 부담하고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들 돈이 안 모여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아프신데 모르쇠 하거나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는 건 부모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좌절한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개인적인 고민도, 본인이 처한 이 환경 앞에선 사치라 생각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결혼은커녕 나 혼자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럴 거면 나는 왜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새 빠지게 달려왔는가. 대체 무엇을 위해 달려왔을까?


D는 30대 중반.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주말만 되면 본인만의 취미(자전거)도 즐긴다. 혼자 먹고살 수 있는 충분한 자금과 본인만의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알기에 삶이 충만하다. 크게 모난 것도 없다. 직업, 나이, 자산, 키, 얼굴, 건강 모든 게 그냥 평범하다. 근데 마음 한구석에서 늘 2%의 아쉬움이 자리한다. 아니, 정확히는 10% 정도. 나도 주변 친구들처럼 화목한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갈망.

거창한 꿈도 아니다. 이 정도는 혼자 바랄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근데 늘 소개팅만 가면 까인다. 이유는 모른다. 주선자한테 물어보니 누군가는 얼굴, 누군가는 본인 성격, 또 다른 누군가는 조건이 안 맞는단다. 결정사에 등록도 해놨는데 등급은 D에다가, 소개팅을 시켜준다 해도 계속 까이니 이젠 돈만 버리는 기분이다. 이젠 소개팅 횟수도 얼마 안 남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이렇게 나이만 먹으면서 고독사로 죽는 건 아닌지 평안한 일상 속에서도 걱정이 앞선다.


모두가 고충이 있다. 이 고충은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명성, 국적, 인종, 종교, 성별을 막론하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나는 돈이 있는데 애인이 없다. 상대는 애인은 있는데 돈이 없다. 누구는 둘 다 있는데 건강이 안 좋고, 또 다른 누구는 백만장자여도 불안이 온 삶을 지배한다. 이 돈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사기당하는 건 아닌지, 잃으면 어쩌지, 불안장애가 있어 정신과 상담을 다닌다. 아무리 좋은 직장에 다닌 들 업무강도가 힘들거나 직장동료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로 그만두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본인은 그 어떤 부조리도 감당가능하니, 아니 그냥 노예처럼 시키는 거 뭐라도 할 테니 제발 뽑아만 달라고 하소연하는 취업준비생도 있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병이 걸릴 것 같은 누군가가 있는 반면, 아기를 가지고 싶은데 임신이 안돼 난임병원을 다니는 누군가도 있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오히려 갖고 싶은 이들이다. 아기가 다 그렇지 뭐. 제발 아기천사가 이번 달에는 내게 오길! 하며 그들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도 고사하며 이번달도 간절히 임신을 바라고 또 바란다.


이 고충이라는 게 생기는 이유는 결국 원인은 하나다. 본인이 간절하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는 직장생활을 애초에 바랬으니 거기에 맞지 않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고, 마음에 잘 맞는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싶다고 바랬으니 아무리 본인이 돈이 많든, 다 가졌다 해도 연애에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것이다. 결국은 '정도'의 차이지, 누구나 크고 작은 고충은 있을 수밖에 없고 계속 그들은 각자의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이 고충을 더 키워가기도, 치유하기도 한다. 근데 문제는 뭐냐. 이 고통 속의 긴 터널을 못 견디는데서 발생한다. 극단적인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정신병이 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방구석백수 은둔청년이 될 수도 있고, 아예 자취를 감추고 사라질 수도 있고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결과는 대체로 좋지 않다.


자, 그런데 생각해 보자. 아무런 고통 없이, 아무런 인고의 시간도 없이 원하는 것을 이룬 누군가가 있다. 그 행복한 정도가 전자와 비교했을 때 어떨까? 느끼는 행복한 정도도 1/2, 아니 몇 배는 더 줄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내가 원했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없이 그냥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고통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침내 얻게 된 그 결과가 값진 것이다. 허벅지도 당기고 숨도 차고 땀도 많이 나고 도저히 산을 오를 수 없는 순간에 다 달았을 때 정상에 도착해 그 기쁨이 몇 배가 되는 것처럼. 그때 마시는 물이 지상에서 마셨던 물보다 훨씬 더 달콤하지 않나.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상대가 매일 보자기를 내진 않는다. 매일 바위를 내지 않고 가위를 내지도 않는다. 자꾸 바뀐다. 거기에 우리는 천천히 대응하면서 내 패도 조금씩 변화시킨다. 주사위를 던질 때도 마찬가지. 던졌을 때 어떤 날은 1, 어떤 날은 6이 나와 기분이 오르락 내린다. 로또를 사도 단 한 번도 번호가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근데 어떤 날은 딱 한 숫자 차이로 삐끗해 4등이 된 적도 있다. 안 좋은 일도, 좋은 일도 결국 영원한 건 없다.


고통스럽더라도 모든 경험엔 다 의미가 있고, 그 사이에서 여러 갈래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원해서 온 길이 아닐지라도 또다시 어떻게 삶이 풀릴지 모른다. 실패도, 고통도, 방황도 다 자산이고 의미 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좋은 날은 분명히 온다. 계속 안 좋았으니까 이제 올 때 됐지 뭐.


삶이 뭐 별거냐.


화,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