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길…
현재, 나는 영국에서 반려인 한 명, 반려견 한 마리와 살고 있다.
어언 햇수로 7년. 이 둘이 나의 곁에 있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 또, 여전히 얼마나 짜증 나는 존재들이며, 감사하지만 또 멀리 있고 싶은지 왔다 갔다 하는 감정으로 매일 새로이 반복하며 살고 있다.
약 한 달 전, 나는 1년 하고도 4개월 정도 기다린 NHS (영국의 국민의료서비스)에서 공식적으로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렇다는데… 뭐, 다른 방도가 없어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제발 좀 어른이 되어봐, 왜 이렇게 매번 대응이 이렇게 유치해, 항상 그렇게 극과 극이어야 직성이 풀려?!
여느 부부와 다를 바 없이, 매일이 투닥거림이고 매일이 칼로 물을 베는 다툼이다.
그리고, 나를 가장 촉발하는 (Triggering) 가장 큰 매개체는 역시나 남편의 말 한마디이다. 이 미련한 중생은, 저 “어른이 돼라”라는 말 한마디에 여전히 화르르 불타 싸움을 저지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요가, 명상, 영양제, 보조제, 약, 상담, 음악, 등등 이 모든 것은 비로소 ‘화르륵’과 ‘타오름’을 중제 하려는 수단들인데, 정작 필요할 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어른이 되는 건 뭘까.
자폐인들이 겪어야 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은 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더럽고 치사하며, 힘든 걸까.
20 살 이래로부터 일찍이 엄마와 떨어져 해외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던 나는 혼자 나가서 사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란데, 이제 나이도 찼으니 어른이되라는 사회의 압박, 어른들과의 눈치싸움이 나를 혼란으로 몰았다.
늑대들이 밀어 넣어버린 절벽 끝에 메에에 거리며 울먹이는 이 어린양은 저절로 될 줄 알았던 어른의 길이 원래 이길었는지 (나만 몰랐나) 아니면 내가 또 재수가 없어서 이렇게 됐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마치, 밤사이 저절로 업그레이드되는 소프트웨어처럼 잘도 되는 어른, 왜 나는 버벅거리는 걸까.
학교에서도 내가 좋아 스스로 간 대학에서도, 친구에게서도, 엄마, 동생, 주위 알고 지낸 어른들에게 사도, 언제 어떻게 하는 게 어른이 되는 법이다라고 배운 적 없다.
나 빼고 다른 이들은 배운 적이 있는 것처럼 , 어떻게? ‘라는 질문을 달고 가는 시끄러운 나와달리, 다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어른이 되고들 있다.
자 이제, 30대. 앞에 2가 3이 되었는데도 나는 한숨만 고르고 있다.
한숨이 저절로 들이쉬고 내쉬어지는 것, 하고싶은 것을 참고 못하는 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하게 되면 행동일까?
책을 보고 또 보면, 나만 스스로 버벅거리던 ‘어른 됨됨이’라는 업그레이드 과정을 조금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
작가이자 학자인 우치다 타츠루의 글은 일본 특유의 겸손과 담백함으로, 나에게 어른이 되는 건 무엇인지를 글로 알렸다.
I'm a visual person, 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나는, 어떠한 비주얼 그래픽이나 영상도 없이, 오로지 글로 나는 어른됨이란 무엇인지 전수받았다.
그리고 , 이제껏 내가 무심코 해왔던 이 모든 것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그리 멀지많은 않았구나, 나만 구정물에서 고여있지만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났다.
법적 어른 연력을 넘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을 받아 들고, 어른이 되었으니, 일을 구하고, 세금을 내고, 집안일과, 사회생활도 고루 잘하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러한 나열된 기준에 한참이나 못 믿치는 사람이다.
어른연령이 됨과 동시에, 나는 찔찔 짜며 엄마와 떨어지기 싫고, 혼자 외롭게 왕따노릇을 하기 싫어, 원하던 대학에 붙었음에도, 대학교를 가기 싫다고 울었다.
대학교에 엄마의 돈으로 학비를 내고, 장학금 조금 받은 것을 매번 생색내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에게 부채가 없다 학기마다 생각했다. 대학교 3학년부터 인턴으로 들어가 4학년때는 이미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세금을 내고 있으니, 나는 남들보다 한참 앞선 사람이라고 생각한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그에 비해, 방하나 화장실하나 있는 집도 하나 정리 못해, 구석구석 여름마다 곰팡이는 물론이오, 냉장고에 넣은 음식마저 곰팡이로 썩히는 인간이었다.
항상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지겹게 되뇌면서도, 일이 끝나고 나면, 저녁같이 먹자, 술 먹자 하는 동료들의 소리가 듣기 싫어, 항상 화장실로 먼저 대피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하러 간다고 쏜살같이 나가는 인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준의 어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거리가 먼 나는 어른이 되기에는 애초에 그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우치다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고,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첫째, 타인으로부터 "당신의 가설은 틀렸습니다."라고 반증을 제시받기 전에, 자신이 먼저 가설을 고쳐 쓸 수 있도록 반증사례를 꾸준히 찾는 것.
둘째, 목표와 방향만 맞다면, 여정중 어디에 도착하더라도 상관없음.
셋째, 자기 쇄신 없이는 인간은 성숙할 수 없음.
넷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를 향한 존중의 뜻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 지나치게 방어적이지 않고, 상대적 우열, 강약을 신경 쓰지 않는, 일종의 무방비함 (innocence, 순수함) 이 필요함.
이중, 나는 얼마나 지키며 살고 있을까, 삼십 대에 발을 대고 있는 나는, 저 중, 3개 이상은 나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동의는 다 한다만, 지키기는 겁이 나게 어렵다고도 말한다.
자기 쇄신, 이것저것 배우고, 아는 것만 알지 않고 모르는 것에 자기를 노출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어른됨, 이모 든 것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어른, 그 어떠한 인물이 되고 싶다.
열심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나에게 기쁨 비슷한 걸 준다. 우치다 선생이 다른 학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점 중 하나인 "자기 전공밖의 일에 너무 많이 참견한다."는 내 특기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말이 많았다.
그렇게 많은 것에 참여하고 배우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어떻게 "일"이라는 것을 할 수 있지?라는 의문문과 울화로 시작했던 2025년.
자기 쇄신이라는 이름하에, 어른이 돼 보는 것이 여정이 되는, 정작 도착지점이 "어른됨!"이라는 종점이 아니어도, 목표와 방향은 그쪽이니, 나는 잘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202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