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는 자폐인이다.
반려인 한 명, 반려견 한 마리, 그리고 나 이렇게 조그마한 가족을 꾸렸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나에 대해서 다시 배워가고 있다.
진단을 받고 어느새 4개월이 지났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지금, 아마도 자폐라는 진단명은 결국 핑계이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었다. 장녀, 딸, 누나, 여자, 한국인, 직장인, 외국어 잘하는 여자, 야망 있는 사람, 자신감 넘치는 사람, 가짜, 임포스터, 정신병자, 자폐인 등등... 나열하자면 나를 소개하는 타이틀은 많은데, 모두가 다 내가 아니다.
지금 그래서 다시 돌아가 나는 뭔지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심난하고, 힘겨운 여정이다.
트라우마(Trauma)는 굳이 앞에 '복잡'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복잡하다.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 어떤 시기고 상관없이, 나에게 트라우마란 뇌에 각인된 주홍글씨처럼, 나를 압박한다.
긴 스토리를 짧게 간략히 정리하자면, 나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었고, 물리적으로나마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바다까지 건너 건너 6000마일 이상이나 떨어진 이곳에 왔다. 그리고, 헛수고라는 느낌이 들정도로 그렇게 내 삶은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어두웠다.
트라우마란 결국은 과거의 어떤 사건 사고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과거의 피해자로서, 피의자가 분명 한대도, 나는 그 피의자를 처벌할 수없었고, ‘중요‘피의자는 나에게 아직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보상으로 받아내려 하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트라우마는 나에게 아직도 낙인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이걸 '극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보다.
20대부터 현재 30대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직도 아버지(중요 피의자)라는 사람에게서 사과는커녕 쌍욕을 받고 있으니, 트라우마 ‘극복’은 불가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결국, 상대방이 하는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 부분은 쉬이 포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피의자 피해자 롤플레이는 패스.. 그렇다면 뭐가 남아있을까?
나의 시선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라는 듯, 나는 나를 못살게 굴었다.
그렇게 누구라도 붙잡고 잘잘못을 따지고픈 마음은, 법정에서 피의자에게 형벌을 내리고 싶은 판사의 마음이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이 깔끔히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원고에서, 피고로 만들었다.
땅땅...
자폐로 진단받기 전, 상당히 다양한 정신과 진단명이 있었다. 처음은 외적으로 쉬이 보이는 것이 우울증, 불안장애였고 나중에는 Social Anxiety (범사회적 불안장애)라 하면서 의사도 약도 바뀌었다.
약 2년 즈음 후, 다시금 NHS의 심리상담사에게서 ADHD가 의심되니, 한번 진단 프로세스를 밟아보라는 권유에, 나중엔 ADHD도 진단명 리스트 중에 포함되었다.
그때당시, 진단하던 의사는 나에게
ADHD를 처리(?) 하기 전에, 아무래도… 콤플렉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C- PTSD)를 좀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콤플렉스 뭐를 정리하기 전에는 아마 어떤 진단명도, 컨디션도 통제가 힘들 것이라며, 나에게 이 장애명을 또 기어이 들여다보게 했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의사 선생님께 또 다른 진단명을 들었을 때, 나에게 반자동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어느 때나 다름없이 나는 나에게 가혹하게 굴었다. 자학했다.
안타깝게도 이 말은 내가 과거 자라면서, 주변의 나를 불편해하는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가지가지하는 건 맞는데...
설사 그럴 다해도, 이제는 그냥 내배를 째라.. 나도 모르겠다.
콤플렉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결국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비슷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군인들에게나 재해 생존자 등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 단기간 충격이 아닌 ’ 장기간의 반복적인 ‘ 경험의 노출이 원인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가정 내, 유아기 및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통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으니,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 자학, 자기 비난, 자기 연민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러 번의 극단적 시도 (실패… ) 그리도 물리적 정신적 자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보려고 했고, 최근에서야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자기 비난이 기본,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내부시스템이 붕괴된 상태로, 사회에서의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 C-PTSD의 ‘핵심특징’이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간략히 글자로 정리된 특징을 읽어 내려가니, 내가 이제껏 행동해 왔던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질감이 확 느껴진다.
자폐인이기 이전, 나는 트라우마에 하루하루 짓눌려 사는 아이로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 이후로도 줄곧 과거에 상처껍데기를 파고 또 떼어내면서 그렇게 성년기를 맞았다.
내가 상담했던 정신과 전문의에 의하면, 보통 뉴로다이버시티에 해당하는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약 2만 번 이상의 비판과 처벌을 받으며 자라난다고 했다. 그리고 여성 같은 경우는 그때당시에는 알기 어렵지만, 성에 관련된 폭력이나 추행 같은 경우도 일반여성들보다 2배는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내가 남들보다 2만 번이나 더 욕을 먹고 자랐다니, 수명은 길겠구나 하며 쉬이 물리쳐야 하는 건가... 아니면, 연민의 감정으로 빠져야 하는 것인가.
일단, 운동이 좋다 하니, 운동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를 했지만, 가장 간편하게, 싸게 먹히는 것이 요가였다.
요가를 시작하면서, 서면의 활자로, 표면적으로, 다가왔던 나의 이 복잡스러운 트라우마가 하루하루 꿈으로 나에게 재현되었다.
가수 이효리 님이 과거 예능에서,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지난 연애 파트너들이 (ex들…)이 하나씩 꿈에 나왔다며, 하루하루 한 명씩 그들과 화해를 하며 끔에서 깨어났다는 내용을 어쩐지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에는 우스개로 농담처럼 넘겼지만, 나도 오랫동안 요가를 했던 입장이라 (지금도 매일 한다), 내가 악몽과 꿈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 모든 ‘피의자’ 들과 대면하고 평화적으로(?) 화해를 했다. 그리고, 애매모호 한 느낌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매일 눈을 뜨며, 현실로 돌아온다.
오묘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저런 꿈을 꾸고난뒤의 나는 더 이상 과거에서의 일이 문득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효리 님의 노하우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것이 저렇게 긍정적으로 먹힐 때에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생을 힘들게 하는 것이 본래의 c-PTSD의 특징 중 하나이다.
사춘기의 발현이 되기도 힘들었던 가정환경 속, 나는 남자라는 성(性)에 눌려 살아야 하는 여자였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항상 내가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래도… 수고했다.”라며 엄마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그리도 대수로운지 몰랐지만, 주변에 다른 가족들이 대수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동생대신에 장녀이자 맞이 그리도 여자라는 이유로 시골에 내려가서도, 도움은 되지 않아도 엄마 옆에 앉아 전 부치고 수저 놓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나보다 잠이 적어 아침부타 싸돌아(?) 다니는 나의 남동생은 다른 사촌 동생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 죽기 살기로 일어나야 했는데, 왜 나는 쿨쿨 잠자는 동생을 두고 일어나야 했는지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다.
남자 사촌에게서 낮잠을 청할 때, 상체 옷이 벗겨지는 이상한 일을 당했는데도,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큰아버지 집이었고, 그들에겐 이 사건이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로, 그 사촌 집에 가기 싫어 보이지도 않는 귀신을 본다 했고, 스트레스성 헛구역질을 해 엄마에게 가지 않을 핑계를 드렸다.
엄마도 좋고 나도 좋고, 일석이조였다.
그 이후로 중학교 남녀 공학, 나는 톰보이로, 장군, 서방이라는 닉네임이 붙여졌고, 절대 남자애들에게 지려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느끼는 남자 동급생에 주먹질이 내 오른눈에 닿아, 소위 눈퉁이 밤탱이가 되어도, 나의 우악스러움은 한낱 남자의 주먹에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또한 나의 친남동생에게는 자주 폭력적이었고, 그가 다른 어른들에게 잘생겼다, 잘 먹는다 라는 칭찬 만들어도 눈을 흘겼다. 남자어른에게서 항상 인정받으려 평소에는 그냥 넘길일도, “잘한다”라는 별 이익도 안 되는 말 한마디 듣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다.
이 이상한 인정욕구는 회사를 들어가서도 지속되었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의 머리는 몸의 불안과 부정적인 시그널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공황으로 약을 먹으며 견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