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려진, 나의 이름 그리고 나
햇수로 7년 차, 나는 영국에서 반려인 한 명, 반려견 한 마리와 살고 있다.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다 집을 샀다는 이유로 영국에 나도 모르게 안착했다.
약 한 달 전, 꽤나 오랜 기다림 끝에, NHS (영국의 국민의료서비스)에서 공식적으로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리고 별다른 영향력이 없을 것 같던 이 진단명은, 나를 다시 세상밖에 울음을 터뜨리며 나오게 되는 아기로 만들었다.
다시 모든 것을 배우는 중이다.
뉴로다이버시티 (NeuroDiversity), 영국에서는 아스퍼거, 서번트, 어티즘 등등의 이름으로 자폐인들을 명명하기보다는, 뉴로다이버스로 모두를 포함시키고 있다. 굳이 모든 사람들의 자세한 병명(?) 혹은 컨디션 명칭을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했다. 나중에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림 릴스로 뉴로스파이시 (NeuroSpicy)라고 알려지기도 해, 신기하고 웃겼다.
그것도 잠시, 모든 좋은 점에는 단점도 같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ADHD가 가지고 있는 특징 3가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아스퍼거일 가능성이 99!"
이런 제목의 콘텐츠들을 보고 있자면, 목이 조이는 느낌과 함께 불편하다.
그야말로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 할많하않...이다.
내가 저 명칭으로 서술되는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행동들이 저들이 말한 특징들에 꼭 포함되어야 하는 것 인가?
만약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럼 나의 진단은 틀린 걸까?
내가 가까스로 찾은 원격 스승님이라고 할 수 있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
그는 거의 2-30년이 다되는 시간 동안 한 고대 학자, 레비나스를 연구하고 그에 대한 강의도 펼치고 있는 와중, 그는 절대적으로 자기가 그의 철학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태도를 항상 피한다.
현재까지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있는 모든 서적을 다 보아도, 그가 "나는 이방면에 전문학자이고, xxx에 대한 화제에는 그 누구에게서도 꿀리지 않을 자신 있다."라고 기세등등하게 내보이는 태도를 본 적이 없다. ‘레비나스 철학’하면 일본 내에서는 그만큼 방대한 이해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을 텐데......
저렇게 행동해야 강의도 서적도 잘 팔리고, 또한 그의 명성도 더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주변에서 충고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말이다.
약 7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살 적에, 나에게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며, 설사 10퍼센트를 알더라도 100프로 아는 사람처럼 굴어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한 스타트업의 대표 및 공동대표자들이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에 나는 속으로는 오줌을 지리고 덜덜 떠는 아이가 있을 망정, 호텔에서 혹은 집에서 나오기 전, 나는 항상 거울을 보고, "너는 뭐든지 안다, 그들은 나의 밑에 있다. 나는 다 안다! "라고 했던 볼썽사나운 짓거리를 어언 3년이나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로 인해, 당시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나의 현 남편 전 남자 친구인 댄은,
너 그때 나 정말 백 프로 속였어, 이 결혼 무효야!
라고 했다. 당시에는 하하 호호하면서 넘겼지만, 내가 그렇게 사람들을 잘 속였던 사람이고, 내가 그렇게 나와는 전혀 다른 페르소나에 가면을 잘도 쓰고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잘도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자괴감으로 밤낮 가릴 것 없이 나를 채찍질했다.
정직을 모토로 삶을 살고 있고, 내숭, 가식은 떨지도 못하고, 곧이곧대로 살아 사람들에게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는 평가을 받은 나는, 가식이라면 소름이지만, “Fake it till Make it”이라는 속어가 나온 이유가 있을 거라며, 거짓된 힘으로 일그러진 여러 페르소나를 앞세워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관계를 맺었다.
항상 나는 사기꾼이 아닐까 하며, 사기된 행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를 고민하던 나는, 애써 하루하루 머릿속 시끄러운 목소리를 잠재우기 바빴다.
이건 자폐라서일까? 아니면 나라서일까?
나는 뭘까.
Alter Ego, Persona.....
아마도, 메서드 연기로 칭송받는 예술인 및 아티스트 모두, 아마 저런 알터 에고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하지 않을까 싶다만, 나는 천재도 아니고, 예술인도 혹은 남들이 칭송하는 아티스트도 아니기에, 하루의 반나절이상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장착하고 다니는 것은 어지간한 에너지로는 감당할 수 없다.
항상 몸에 슈트지퍼가 있다면 지퍼를 쭈욱 내려 벗겨버리고 싶었다. 그마저도, 지퍼안쪽에는? 뭐가 있을까, 무언가가 존재하기는 할까라는 생각에, 상상도 쉽지 않다.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해야 할 것들,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긍지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는 행동에는 우리의 하루의 루틴 속에 들어가는 ; 밥 먹기, 청소하기, 말하기, 세탁하기, 수면취하기(?) 등등…이 있다.
타인에게는 ‘기본’이라 불리는 리스트들… 나는 이것도 매일 처리하기기 벅차다, 기본적으로 이런 기본적인 것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 사람이다.
"뭐 했다고 벌써..."라고 하는 사람에 옆에, 나는 소심하게 얼굴을 붉힌다. 얼굴을 숙이며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안달한다. 어떻게든 내일과 내일모레의 에너지까지 끌어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평가되는 것,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어 애썼던 내가 고작 2년 전이다.
그리고 ADHD (ADD 가 나에게 있어서는 더 알맞은 말이다) , 현재 자폐스펙트럼까지 진단받은 현재의 나는 고작 저 진단명 하나, 둘에, 왜인지 모르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조금 더 얼굴을 들고 살아가게 되었다.
배터리가 완충이 되어도, 나는 약 55퍼센트 밖에는 차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목놓아 말하지 않아도,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매일을 살게 되었다. 나는 자폐여서, 자폐니까, 자폐이기 때문에 이렇고 그렇다 나는걸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게 진단 때문인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좋은’, ’훌륭한 ‘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일까.
저 몇 개의 명사, 명칭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일반화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덕’을 보고 있다.
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 되었다가, 멘털헬스( Mental health)가 가장 뜨거운 스폿라이트를 받을 때 다시금 뉴로다이버스 , 뉴로스파이시로 명명되었다.
명칭을 떠나서 이미 소셜네트워크 세계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뜻으로 해석되어 사람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 공감 아닌 공감을 받고 있다.
과거, 나의 부모 및 조부모의 시대… 헤테로섹슈얼이 아닌, 이성을 사랑하고,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 동성애자들은, 호모섹슈얼의 준말 및 비속어처럼 쓰인 호모로서 불렸고, 게이로 명명되어 이리저리 사람들에 접시 위에 음식처럼 난도질당했다.
그때만 해도 게이들은 항상 남자임에도 핑크옷망 입고 화려한 옷에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본인을 치장하는 드래그(Drag)처럼 서술되고 소비되었고, 현재까지도 여러 내 주변의 어르신들은 “나는 화장한 남자가 싫다, 계집아이 같다…”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꽤 된다.
LGBTQIA+ 의 인권과 행복할 권리가 주장되어 온지 어언 반세기기 지났음에도, 광고에 나오는 눈에 글리터박은 남자 승무원에게서는 서빙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비교적 개방적이라는 영국에 있는 50대 남성의 비꼬인 조크를 듣고 있자니, 아직도 세상에는 바뀔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소위 멘털헬스 및 마음 챙김 인플루언서들에게서 숏트클립 콘텐츠와 기업들 사이에서 Mental wellbeing 휴가를 사원복리 중 하나로 광고 때릴 때….. 이제껏 이것과는 반대되는 행태로 인해 상처 입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런 영상과 트렌드를 어떻게 바라볼까 위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나는 상당히 불편하다, 짜증 난다. 이제 것 나는 똑같은 고통을 받으며 꾸준히 힘들었지만, 이제 와서, 모른척했던 사람들이 ‘이해’라는 이름의, 관음보살의 얼굴로 나를 본다.
이미, 꼬일 대로 꼬인 이 어리석은 중생은 아직 내가 스승으로 모실 무도가 우치다 선생의 가르침을 살짝 떠올려본다. 그리고, 더더욱 힘내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신의학에 대한 정보가 점점 더 방대해지고, AI의 등장으로 더더욱 비대해지고 있는 현시점, 사람들은 조금의 온라인상 떠도는 지식과 타인의 ‘카더라’로 쉽게 모든 걸 통달하고 이해햤다고 넘기기 바쁘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가짜’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폐스펙트럼은 말자체에 스펙트럼( Spectrum ) 이 붙을 정도로 사람 개개인에게 나타나는 자폐증상의 정도나 빈도수, 행동특징 그 보든 것이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아직 자폐라도 하면, 사람들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장애인이나 혹은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나처럼 멀쩡히 걷고 명찰에 ‘자폐인입니다’ 하는 목걸이 걸지 않으면, 크게 놀란다.
단발인 남자에게, “어랏? 여성스러우실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한다면 나를 충혈된 큰 눈으로 보며 충격받았다는 태도를 취할 태지만… 왜인지, 저런 코멘트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사회의 관성이므로.
현재 이 글을 쓰면서도 가끔씩 문맥상 굉정히 자연스러워 쓰게 되는 ‘우리’. 배운다고 배웠으면서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폐인 여럿을 한 묶음으로 묶고 서술하려고 했다.
우치다 선생은 본인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본인 고유의 무지와 편견, 감정에 사로잡힌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연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태도가 일본 내 같은 학자들에게섣 ‘규칙위반’이라는 혹평을 들을지라도,
딱히 진리의 이름이 아닌, 개인의 의견을 말할 뿐이라고 구태여 말한다.
아마도 나는 학자나, 교수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나와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은 또 다를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 따뜻한 포용의 의미로 쓰이는 “우리”라는 명사로 모두를 나와 한데 엮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만 특별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와 같은 사람의 경험과 생각도, 뉴로다이버스에 한편에 포함시켜 주면 나름 유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야말로 다이버스(Diverse)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