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당가능한 고행인가
나는 현재 영국에서 반려인 1명, 그리고 반려견 1마리와 살고 있다.
작년말, 나는 영국의 NHS의 도움으로 성인자폐를 진단받았다.
뭘해야 할지 계획할시간도 없이, 매일매일이 쉴세없이 쏟아지는 숙제였고, 시험이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답을 내던 안내던, 나의 짐은 끊임없이 쌓이고 또쌓인다.
오랜만에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 런던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름 전신을 잘 다듬고 맞이하고자 소화 잘되는 음식만 먹고, 운동도 꾸준히하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깔끔이 하기 위해 큰돈 들여 예약을 했다.
New year, new me 어구는 백수인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믿었나보다. 어리석긴.
런던행으로 가는 기차 안,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이스콜이 왔다.
순간 긴장, 원래 급한 일이 아니라면 먼저 전화는 물론이고, 텍스트로도 안녕하는 법 없는 엄마가 전화라니, 몸이 굳는다.
엄마는 굉장히 일반적인 목소리로 ‘너희 동생이 더이상 누나에게 숨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해 이제야 연락하게 되었다’고 전하며,
자궁경부암 판정을 최종적으로 받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3기이다.
구글로 찾아보니, 영국에서 정의로 3기는 이미 자궁외 다른 기관으로 퍼졌으며, 림프절로도 퍼져있을수 있는 상황이라고 되어있다.
‘더 이상 너에게는 숨길 수 없다는 동생에 부추김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당히 빈정상하는 말보다도, 엄마가 암이라는 중대한 질병에 걸렸다는 말이 나의 새 심장을 쿵 하고 떨어뜨렸다.
자폐진단을 받고 나는 누구인가, 뭐 하는 인간이 되려도 이 세상에 왔다 하는 멘붕이었던 나날이 바로 어제와도 같았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산 넘어 산 강 넘어 강 바다 넘어 바다… 나에게는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별 대단한 사건들은 없는데 인생에 대한 날 선 시니컬함만 가득했던 나는, “산은 원래 항상 거기 있었고, 인간이 넘으려고 해서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왜 넘어 그냥 살지”라며, 뭐 하러 저런 속어가 나온 거냐며 비아냥 거렸다.
역시 어리석은 인간은 한 치 앞을 보지 못한다.
이미 줄을 또아리틀고 있는 질문들을 해결하기도 전에, 내 하나뿐인 부모에게 암이 왔다. 다른 것도 아닌 자궁암 3기다.
엄마가 살고 있는 한국 서울에서로부터 약 6000마일 이상 떨어져 있는 영국의 이곳에서, 카톡이라는 메신저로 습득한 내 하나뿐인 부모의 암이라는 소식은, 나에게 식은땀과 함께, ‘나는 여기서 자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대공황을 불러왔다.
역시나 눈앞의 현실이 걱정을 이긴다.
기차는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받는다 쳐도, 미용실예약은 이미 환불 가능한 기간이 지나버려 생돈을 날릴 판이었다. 집에 있어봤자 내가 내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을…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냥 가버렸다.
바로 후회했다.
내 어머니는 자궁에 근종도 모자라, 암에 걸렸는데, 나는 미용실 거울 앞에서 앉아 염색하며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나의 미용사는 커스터머 서비스의 일종으로 나에게 이런저런 영국의 생활과, 한국에 언제 가냐는 등의 여러것을 물었다.
얼굴에 비즈니스용 웃음 가면을 쓰고 나는
“그러게나 말이에요, 하하, 한번 나가야 하는데…”
라고 했다.
부모의 임종을 보지 못하고 혹은 임종 후 바로 다음날 까지도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다하기 위해 대중매체에 나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퍼포먼스를 하고 팬서비스를 해주었다는 셀럽들의 웃픈 상황들.
와 나 같으면 절대 저렇게 못해.
나 같으면 무조건 누가 뭐래도 쉬고, 가족에게 가겠어.
저렇게 위의 예시와 같은 극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세상에 절대란 없다는 걸 다시 몸소 깨닫는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나는 미용사얼굴을 보며 웃으며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웃으며 인사도 하고, 거울을 보며 이쁘게 잘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혼자 기차역까지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당장 할 일이 없는데도, 뭔가 해야 하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인터넷에서 항암 치료를 찾았다. 한국에 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바로 다음날 비행기표가 얼만지 스카이스캐너에서 시간표를 검색했다.
당장 내가 나가게 되면 남편의 회사 시간표와 얼마나 겹쳐 남편의 통근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내가 헨리를 못 돌보는 날동안의 데이케어 비용이 총 얼마나 될는지 계산했다.
그러다가도, 백수인너가 뭘 할 수 있겠냐며, 돈은 있냐며 나 자신에게 회초리를 가했다.
너는 지금 아무 쓸모도 없어
라며, 돈도 없으니 치료지원도 못할 거고, 백수라 시간은 남아돌아도 내가 한국에 나가면 오히려 데이케어 비용만 늘 텐데 나가도 나가지 않아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치는 제로 혹은 마이너스에 가깝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산사람은 살아야지 헨리와 대니라도 잘 돌봐야 하지 않겠냐는 나라는 인간의 잔인함을 보였다가,
백수니까 더더욱 나가야지, 회사 다녔으면 네가 나갈 수나 있었겠냐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나 자신을 달래기도 했다.
왔다 갔다 몇백 번을 하는 동안, 머리가 멍해지고, 식은땀이 났다가, 심호흡을 해도 멎지 않은 입까지 튀어나오는 심장박동소리에 먹을 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막상 암이라는 중대한 질병을 지니고 있는 엄마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항암으로 머리가 빠지면 어쩌냐는 철없는 질문을 했다.
이 철없음에 넋이 나감도 잠시, 나는 이제껏 쌓아왔던 감정을 내뿜듯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 이게 지난번 자살소동과 뭐가 어떻게 다르냐!
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졸고 있던 헨리도, 티브이를 보고 있던 댄도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고, 둘 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휴대폰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던 나는, 쳐다보든 말든 속사포로 엄마에게 잔소리를 시전 했다.
엄마도 이리저리 생각 후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쓱 던져본 말이었을 텐데, 그게 나에게는 트리거였다.
한창 엄마가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가, 조용했던 일이 있었다. 뭔가 싸함을 느낀 나는 매일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귀찮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은 그런 충동이 들지 않아서 이제야 말한다고, 나에게 자살충동 및 실행에 대한 고백을 했다. 어차피 앞으로도 안 할 거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모두 나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을 했던 니체에 너무나도 동의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니체가 말하는 ‘우리’라는 대상에 엄마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결국 같은 인간인데도.
그렇게 뒤통수를 맞은 나는 나도 모르는 ‘나와 동생을 이리도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도 죽을 결심을 남몰래할 수 있다’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 문제를 좀 덮어내나 싶었건만, 이젠 나의 하나뿐인 부모가 암세포로 인한 타의로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의 자폐진단으로 인한 혼돈 및 고행은 계속될 테지만, 그로 인한 고행이 얼마나 크던지 간에 다른 문제는 그건 내알바 아니라며 계속 나를 덮친다.
한국 도착 후, 공항 컨베이어벨트 위에 돌아가는 여행객들의 여러 수하물을 쳐다본다. 이 똑똑한 수하물 벨트는 짐이 이미 앞에 있으면 새로운 짐을 더 넣기 전, 잠시 멈추고 공간이 댕기면고 난 후, 다시 벨트를 재생한다. 모든 일이 이렇게 스마트하게 자동으로 돌아가면 정말 좋으련만, 나의 사건사고들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앞에 이미 짐이 있건 멀건, 초과 무게로 벨트 자체가 돌아갈까 말까 하는 그 사태에도, 그저 새로운 문제, 심각한 문제를 더 꾸겨넣기 바쁘다.
여러 개의 문제를 휙 한 번에 던져주고는,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하던, 그건 너의 책임이라고 차갑게 돌아선다.
이렇게 구겨 넣는 그 ‘누군가’는 내가 이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으리란 믿음에 나에게 이 모든 걸맞기는 걸까?
그에 대한 답도 돌아올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역시 내 인생이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만큼에 시련만 주시겠지 라는 종교색이 짙은 문장을 되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