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디에 서야 하나요?
나는 현재 영국에서 반려인 1명 댄, 그리고 반려견 1마리 헨리와 살고 있다.
그리고 최근 나는 영국의료서비스 NHS에 의해 성인자폐를 진단받았다.
그렇게 나는 삼십이 훌쩍 넘는 나이에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명을 얻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원래 산 넘어 산, 강 넘어 강,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정말이지 재수가 더럽게 없게도,
바로 그 한 달 전, 나는 엄마와 영국에서 개인적으로 휴가를 보내던 중, 생각지도 않는 명예퇴직(?) 영국에서는 risk at redundant라고 불리는 것을 당했(?)고, 그렇게 백수로 무직으로, 풀타임 털아기 엄마로 살고 있다. 어째, 생각지도 못하게 얻어낸 이 장기 휴가로 인해, 나는 이런저런 방식의 프로세스를 거쳐가며 나름의 개인적인 회복을 위한 투쟁을 겪어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나는 NHS에 의해서 진행되는 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이 그룹 테라피는 딱히 자폐스펙트럼이나 Neurodiversity 그룹들을 위해서 진행되는 테라피는 아니다. 하지만, 저런 컨디션을 가지고 있어, 여러 가지 증상 ; 우울, 불안, 공황, 자학, 자해 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약 8명 정도 한데 모여 약 1시간 반 정도 원격미팅을 통해서 말하는 상담을 진행한다.
약 8명의 참가자들은 여러 가지 인생경험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인종들로 꾸려져 있다. 그리고 2명의 NHS에서 일하시는 심리전문상담가 및 전문의들도 함께 세션에 참여해, 참여자들 개개인의 여러 스토리 듣고, 바로바로 상담을 하거나 피드백을 주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 번에 약 10주간의 세션들이 진행되는데, 그것도 이번 주면 끝난다.
끝난다고 하니, 굉장히 불안하다.
아무래도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듯싶다.
지각변동과도 같은 나의 진단결과로 인해, 나는 상당히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지금도 솔직히 피폐하다 그저 그날그날 오늘은 뭘 할까 내일은 무슨 일이 있지, 오늘은 헨리가 잘 놀까 쉴까 등등의 일상적인 사건들로 피폐함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반, 똑같은 미팅 링크로 들어가 머리에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우고, 카메라와 마이크는 항시 오픈. 그리고 그날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사람들과 끝내는 미팅이지만 조금 달랐다. 10주간의 여정이 끝난다는 세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질문으로 시작된 '오늘의 체크인 단어는 무엇이 될까요?' (감정이던, 그냥 명사의 단어이든 간에 이것들 비슷한 단어로 오늘은 이거요.. 하고 말하면 된다)
항상 매일이 똑같은 나의 루틴화된 나날들에 지각변동과도 같은 정보가 불러들인 불안함일까 공포감일까, 나는 처음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랜선상이지만, 창피함과 우울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었다.
조그만 카메라 구멍으로 비치는 얼굴이 비디오를 통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는지에 대해서 조목조목 이야기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첫째로는 이게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뭐 한 것도 없이 끝난다는 게 슬프고, 둘째, 세션을 진행하며 중간에 자폐 진단을 받았고, 뭔가 결과를 알면서 시작한 프로세스임에도 진단결과를 막상 듣고 나니, 내가 과연 이 사회 어딘가에는 속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지,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어느 코너에 가서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O인가 X인가..
아니면 아는 정상인으로 살아야 하나, 자폐스펙트럼이라고 불리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나, 나는 사회의 의무와 권리르 보장받을 수 있는 어른인가, 아니면 권리만 주장하며 의무는 실행하지도 못하는, 무언가 '미달'인 사람으로 살아야 하나...?
일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가 사는 동네의 council이 주최하고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 서포트 중에는 취업관련한 서포트도 있는데, 뭘 도와준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고, 나는 마냥 네네 거렸다. 그걸 후회한다.
갑자기 나를 담당하는 취업어드바이저가 바뀌었다며, 이메일로 나에게 30분간 통화가능하겠냐는 대답에도, 나는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고, 그 여성분이 악의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나에게 약 장장 30분간 전달한 내용 중에는 나에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폐진단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서 너의 취업여부의 희비가 달라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했던 90퍼센트의 케이스는 서류과정이나, 면접과정에서 절대 그 정보를 오픈하지 않기를 권했고, 결과는 반반이라는... 말해도 한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아마 내가 들었던 저 이야기들 중에 전부 혹은 대부분은, 네가 자폐라고 이야기하는 즉시 대부분의 회사가 무조건 너를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돌리고 돌려 우회적으로 잘 이야기한다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것일 뿐,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니기에 다 알아들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나에게 '다음 주에 내가 다시 전화를 해야 할까?'라는 나에게 답을 구하는 것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지고는 사라졌다. 당연히 못 알아듣지 않은(?) 나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라고 했다. 그렇게 지나친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영향력이 컸나 보다.
자폐진단을 받아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히 다 큰 성인이고, 공부도 학사과정까지 해외에서 받아, 해외에서 취업을 하고 인생의 절반이상을 이곳에서 살정도로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그렇다고 또 서번트 증후군처럼 한방면에서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좋은 것도 아닌데…...
나는 ‘휠체어에서 항상 생활해야 하는 ‘ 신체 영구적 장애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들과는 달리, 몸 모두, 팔다리 사지 또한 너무 멀쩡하다. 항상 생각해 오던 것이지만, 나는 참 애매하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게 나그네처럼 산다.
내가 목이 터지게 보이는 게 다가 아닌걸 내가 소리쳐 봐야, "이해는 한다만..."이라는 답답한 대답만 돌아오는 걸 모르지도 않는다. 내가 태어난 현 사회에선 어쩔 수 없다..라고 하는 사람 속에서 내 목소리는 방음 잘되는 방에서 짖어대는 개 소음이나 다를 바 없다.
결국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에, 어느 집합 교집합에도 속해있을 수 없는 주변인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명사적' 진단명을 하사(?) 받아 나라는 아이덴티티의 사회적 정신적 상태가 훨씬 더 명확해지고 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많이 달리, 이렇게 또다시, 아무 곳에서도 소속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학창 시절 이래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는 이 상황 자체가 참 서글프다.
이 모든 나의 진단에 대한 태도와 받아들임, 그리고 외부적인 상황 모두가 내가 흘린 닭똥만큼이나 굵고 큰 눈물의 이유일 수 있다.
유튜브에서 보게 된, 빅데이터 장인 ‘송길영’님의 미래예언적(?)인 영상에선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만), 결국 우리는 회사, 조직, 팀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것보다, 개개인이 스스로의 브랜드가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언급하신걸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무 곳에서도. 소속되지 않아도, 나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으로 맺어진 인연을 제외하고, 나는 내가 내소속을 만들어나가면 되니 주변인이라 느낄 필요가 없을까?
나는 나, 자폐스펙트럼을 진단받기 훨씬 전부터 너무나 삶을 살아가기 싫을 정도로 매일이 힘들진만, 또한, 너무 멀쩡하게 이곳저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한 인간, 그리고 누군과와도 같이 살 수 없을 조건의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반려인 반려동물과도 잘 살아가는 이상한 인간. 또 나는 어떤 주체적인 '소속명칭'을 지어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소속감이라는 누군가에게서 인정 및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느낌, 한마디로 설명되는 누구도 알아듣기 쉬운 브랜드로서의 사람, 아이덴티티여도, 나는 사회에서 손가락질당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자해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내명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도 질문만 가득한 생이다.
언제 한 번에 모든 질문의 답이다! 하고 계시를 받는 그런 기적이 오면 너무나 좋겠다.
그나저나,
옆에서 '언제밖에 나가서 오줌 쌀 수 있어?' 하며, 똥글똥글한 무해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의 반려견, 헨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어떠한 편견도 주장도 내놓지 않는 까만 눈이 나를 다리 비춘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위안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