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왜 나예요?

나 누구랑 말하니?....

by Amy Kang

현재, 나는 영국에서 반려인 한 명, 반려견 한 마리와 살고 있다.

어언 햇수로 6년 이제 곧, 하루만 더 지나면 7년, 나는 이 둘이 그래도 나의 곁에 있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또한,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짜증 나는 존재들이며, 감사하지만 또 멀리 있고 싶은 그런 감정으로 매일 금붕어처럼 기억했다, 잊었다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이전글에서 말했듯, 약 한 달 전, 나는 1년 하고도 4개월 정도 기다린 NHS (영국의 국민의료서비스)에서 지정한 전문의가 서문, 1:1 인터뷰, 가정인터뷰 등등을 통해 실행한 정식 자폐증 테스트를 거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굉장히 분명한 자폐가 맞다고 했다.




지금껏 나라는 인간으로 살면서, 그 어디에서건, 언제건, 누구와 무엇을 하건간에 (심지어 남자 친구들과도...) 무엇인가 내 차례가 되길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되는 건 (심지어 내 돈 내고..) 나의 것이 아니라는 투철한 모토로 살았다.

역시 세상은 넓고, 모르는 '나'의 모습은 참 많다.

공짜라서 어쩔 수 없나? NHS는 나를 울며 겨자 먹기로 (약 2,000파운드의 여윳돈이 있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 약 1년 반여 동안이나 기다리게 했고, 그렇게 나는 자폐라는 결과 및 이유들을 다 적어놓은 고작 10장도 안 되는 리포트를 받아놓았다.


NHS & NHS의 성인 자폐스펙트럼 검사 및 리포트 첫장.


마치, 결과지를 받아놓으면, 누군가 전문적인 사람이 너는 xx이에요,라는 답을 나에게 주면 내 인생의 희뿌연 이 무언가가 겉히고, 명확한 무엇인가가 내 앞으로 걸어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지를 받기 전만에도, 나는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나 내 뜻대로 안 된다. 매일,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던 그 느낌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실망으로, 또한 모호함으로 나에게 찝찝함만 남겼다.



그들이 리포트에 상세히도 적어놓은 이유들이 내가 결론적으로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리포트에는 긍정적인 부분도 부정적인 부분도 서술되어 있었지만, 역시 나라는 사람은 긍정적인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관점이 남다르고 등등.. 이런 건 솔직히 지금 이 팍팍한 사회를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장점'들이다.


차라리, 사회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부분이 잘되고 있다던가, 친구, 지인, 직장동료, 가족등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눈치 꽤나 있고, 세심하며, 새로운 환경에서도 언제나 잘 살아남는 그런 자폐인이다가 훨씬 나았다.

하긴, 저러면 왠간히는 자폐스펙트럼을 겪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교류, 비주얼 큐(visual cue) 읽어내기, 새로운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태어나 유치원이라는 첫 인간 조직에 들어갈 적부터 지금까지, 어지간히도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아. 사람이 싫다. 사람 많은 곳은 싫다.
차라리 말 못 하는 동물이 더 편하다. 동물의 눈은 사람의 눈보다 덜 무섭다.


이런 생각으로 점철된 사회생활을 했다.


자폐스펙트럼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배운 단어 '마스킹(masking)'... 나에게 유레카와 같은 순간을 안겨주었다. 내가 이제껏 회사에서 했던, 학교에서 사람들에게 했던, 심지어 내 가족에게 까지 했던 그 모든 순간, 그 모든 순간에 들었던 '지침 및 탈진상태'는 모두 내가 그들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면을 써가며 마스킹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사람들, 나의 pack에게까지 거짓된 가면을 써가며, 같이 관계를 이어왔느냐하니, <이상한 세상에서 나 자신으로 사는 법>이라는 책의 저자, 해나 루이즈는 우리가 위장과도 같은 마스킹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사회적 규범이라고 맞춰놓은 그 기준에서 벗어나 '이상한'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항상 좋은 의미로는 사 차원적, 유니크한, 나쁜 의미로는 이상하고, 불편한 나는, 지금껏 사회에서 잘 적응하려면, 나 자신을 없애고, 어울리기 위해서라면 나 자신도 바꾸라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3초 이상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진을 찍으면 웃는 표정이 내가 봐도 이상하니, 웬만하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찍으려, 혹은 요 작은 입을 미친 듯이 찢어 웃으려 노력했고, 여자애들끼리는 '그룹'이라는 게 있으니, 그 그룹에 들어가서 웬만하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당연히도, 여전히 나는 4차원의 8차원적인 이상한 여자아이였고, 남자아이들에게서는 톰보이, 강서방으로 통했으며, 항상 남자아이들과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왜냐,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나름 페미니..) 우와했던 나는 다른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걸리쉬하지 않아, 그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걸 다 맞추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가 없었고, 또한 없다.


어른이 되고서도 어쩜 그렇게 똑같이 힘들어하니

라고 엄마는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었지만, 엄마나 나나 딱히 별 답은 없던 것은 똑같아 대화주제를 돌렸다.


내가 그렇게 힘들고 힘들었던 이 모든 것이 내가 태어나면서 달고 태어난, 자폐스펙트럼 때문이었다니, 유레카스러운 순간의 느낌보다는 굉장히 억울했다.


억울하고, 무엇 때문인지 모를 느낌으로 인해 울컥해, 나는 그만 진단의 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울었다.

혼자 그렇게 약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울고, 갑자기 또 멈추었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항상 왜를 달고 사는 역시나, 이문제에 대해서도 똑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누구한테 해야 할지, 누구에게 답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그 질문들...


내가 뭐 때문에 자폐일까? 그리고 왜 나는 그로 인해서 외롭고 힘들어야 했나. 왜 나는 이해받지 못했고, 왜 내 부모는 나의 이런 특성을 일찍이 못 알아챈 것일까?


내가 혼나고 맞아야 했던 이유 중하나 가 자폐라는 사실이 억울하고, 짜증 나고, 화났다.

이후 심리 세러피 선생님은 이 또한 애도 (Grieving)의 한 단계라고 하셨다.


나는 뭘 애도하려 한 걸까? 나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

좀 너무 뻔한 클리셰 아닐까, 어차피 돌아오지 않는 시절이고 과거인데.


아직도 나와 같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울어도 보채도 뭘 해도 사랑받고, 이해받는 나의 조카, 댄의 조카를 보면, 욱함이 올라오는 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가 나는 부럽다.

어른이 아직도 되지 못한 나는 그런 게 아직도 부럽고, 내 인생이 치사하다.


그렇게 다시 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라고 불리는 컨디션을 가진 30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