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것 보다, 생존하는 마음으로

티끌모아,모아,모아.....

by Amy Kang

영국에 도착하고 이후 covid-19으로 락다운이 실행되었다. 나는 당시 나의 약혼자와 부모님을 만나 뵙고, 이후 영국에서 settle down 할 수 있을지를 보러 온 건데, 영락없이 집에 갇혔다.


그리고 그 이후, 나와 현 남편은 상하이와는 훨씬 다른 영국의 시골생활을 견뎠고, 독립했고, 지금은 집까지 사고, 가족구성원을 늘려 생활 중이다.


꼼짝없이, 환경에 적응, 생존, 유지사이클을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초반만 해도,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어쩌면 더 나를 알릴 수가 있을까였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생존가능할까를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서 6년이 지났다.



행복한 삶일까를 궁리하기보다,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여기서 회사를 다니면서, 딱히 증거를 대라면 댈 수 없는 그런 은은하고 은근한 인종차별과, 성차별, 비영어권 국적의 설움 등을 겪으면서일 것 같다.


어떤 이는 (우리 가족멤버 중) 왈; "그건 좀 너무 슬프다, 생존하려는 삶이라니..."

글쎄, 나는 말 그대로 '생존'을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궁리하기 바빠, 이란의 삶의 방식을 크게 슬프다는 감정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연결하려 해도, 내가 거부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는 순간, 감정은 현실이 되고, 내 몸에서 안 그래도 약으로 근근이 눌러 노은 폭풍 같은 절망이 삐져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 구덩이에 떨어져, 조그마한 발로 구덩이 벽을 긁어내며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쥐처럼, 생존하려는 의지가 그 모든 것을 덮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황선우 / 밀리의 서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려는 마음보다는 '슬렁슬렁 오래'의 마음이라니. 나 포함 (지금은 아직.. 해탈하지 못했기에) 아마 대부분의 사회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이지 않을까 했다.


이렇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코스플레이로 우리를 흔들어놓는 인생에 '슬렁슬렁'은 웬 말이며, 그걸 '오래도록'이나 해야 한다니.

안타깝게도, 여기, 신체적 및 정신적 컨디션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기려는 마음을 접은 사람이 있다.


이기려는 마음은, 아마 내가 이기고 싶고, 상대방이 졌으면 좋겠는 그런 상황이겠다. 지금까지 삼십여 년을 살면서, 당연히 많이 졌지만, 이긴 적도 많다. 반에서 1등도 했고, 전교일등도 우겨서 해봤고, 1등한테 주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장학금이라는 것도 받고, 회사에서도 피티 1등도 해보고... 이긴 거 많다.


'그래! 너 잘난 거 많아! 그니까 자신감을 가지라니까?"


라고 말하는 나의 남동생은 이기려고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미련한 중생아, 우리는 어차피 잠시 이 세계를 거쳐가는 것뿐이란다라고 석가모니에 빙의해 말을 해줘도, 누나가 정신적으로 회까닥 한 사람이라는 것도 그게 그런 사회에서 점프트럭으로 치여 사는 삶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도 다 아는 동생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삶을 원한다.


아마 저 중생은, 내가 이김, 승리 후 오는 행복감을 맛볼 것, 이라고 상상해 저런 말을 하는 것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런 경쟁, 게임 안에서 나는 이겨서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기는 것이 나의 'to-do list'에 들어있었고, 체크표시가 되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체크표시가 끝난 것에 대해서는 성취감이라고 할 만한 여유의 시간도, 감정도 가질 필요가 없었다.


20대, 성인이 막되고 나서 더욱더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그에 대한 성취감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마땅할 그 시기, 나는 그렇게 체크리스트에 줄을 벅벅 그어가며 보냈다.

그 외에는 무(無) 였다..



영원히 이 리스트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내가 앞으로 살시간 (백년산 다는데...) 육십여 년, 짤게 생각해도 반백년이 남았는데, 그 세월을 앞으로도 이렇게 메모지에 끊임없이 적힌 체크리스트를 긋고 또 그으면서 살아야 한다니, 식은땀이 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다른 이와 연결되고, 연결된 마음에서 오는 선의를 받고 베푸는 삶에서 더 많은 의의와 긍정을 느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같이 사람 사귀는 건 물에 뜨는 맥주병보다 못하고, '나는 죽어도 못해'라는 마인드로 사는 사람은, 과연 저 정의가 모든 사람에 대한 정의인지 의심이 든다.


내 현재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은 정말 말 그대로 '거지'같은데, 회사 일찍 나가 눈도장 찍어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부터, 화장실 제때 가고 제때 먹어서 몸관리도 하고, 인간과의 최소한의 교류만 하면서도, 낄낄(낄 때는 끼는...)은 무조건이오, 가식, 가면은 무조건인 이 사회에서의 경쟁은 나에게 너무 절망스러웠다.


어떻게 서든, 잡히기 전에 칼퇴하고 도망쳐, 만원인 전철 (그것도 상하이 중국.. 전철.. 런던도 뭐 만만하지 않다) 안에서 내 삶이 앞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사람 땀내와, 끈적함까지 다 참고 집에 도착하면... 끝이 아니다.

다시 빨래, 설거지, 요리, 샤워, 등등이 나를 기다린다. 그 와중에, K-장녀 코스프레로, 한국에 있는 엄마 안부 묻고, 동생도 잘 살고 있는지 안녕안녕하고... 그렇게 잠들고 싶지 않은 그 복잡스러운 머릿속에도 '내일 6시 반에 깨려면...'이라는 혼잣말과 함께, 일찍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다가올 피로의 공포를 느끼고 싶지 않아, 잠도 죽기 살기로 잔다.


이모 든 것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자 했던 나의 머릿속 24시간의 여정이다.




Burning bridges...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다리를 태우는 수법. 다리를 잇는 것보다 태우는 것이 훨씬 편한 나는 '앞으로 이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어떤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하지? 지금이 이대로가 맞는 걸까?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 즈음엔 어떻....' 보다, 그냥 태우는 것이 나의 과도하게 열내고 있는 뇌를 위함이었다.

뭐... 그런 핑계를 한번 대본다.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기 전에 큰 덩어리를 툭툭 베고 쪼개나 가 형체를 잡는 일이 먼저다. -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

나는 덩치도 큰 모난 돌이었으면서도 덩어리를 베기 전에 이미 매끈하게 갈기를 시도했다. 그 큰 면적을 모두 갈려고 하니 항상 벅찼다. 나처럼 징검다리 건너기를 제자리 뛰기 하듯 하는 사람이 있을까. 상하이에서 일하며 지낼 시절, 매일같이 가슴이 너무 뛰어 차라리 러닝머신에서 미친 듯이 뜀박질해 심박수를 맞추어보면 오늘 하루 잠잘 잘 수 있다는 생각으로 헬스만 주야장천 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가 정신적으로 가장 낮은 곳을 찍고, 신체적으로는 가장 높은 정점을 찍었을 때였다.


"너는 너무 크다, 뾰족하다, 울퉁불퉁하다는 타박에 웅크리거나 위축되는 대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품지 못하는 이 나라가 너무 좁다는 것"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중...)이라며 나를 자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별로여 하는 나의 나라 한국에서도, 웅크리거나 위축대기이전 자신의 다른 방면을 발굴해, 큰 인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나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임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는, 해외의 드문 인재로 거듭나는 사람도, 의외의 생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자신을 드높이는, '금의환향'을 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이토록, 나는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한 채, 나를 형용할 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사용할 수가 없다.

안타까워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인생의 승자가 되지 못한 것을, '미니멀리스트'가 된 것이라며 위안이나, 이해(?)를 해야 하는 건지 상당히 헷갈린다.




이 시리즈의 에세이... 에세이가 아닌, 픽션 소설이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여하튼, 이 시리즈의 글을 처음 쓸 때 즈음엔, 마지막 편을 쓸 땐 "아마도 답을 찾겠지"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안타깝게도 그 당시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도, 답은 없다. 답에 가까운 것도 없다.

아마 알고도 그냥 쓴 것일 수도.


현재, 나의 목표는, 매일같이 틈을 내어서, 나를 형용할 수 있는 글자가 뭐가 있는지, 나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것 (하늘을 나는 장화를 신고 어딘가로 떠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이 뭐가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명사, 동사, 형용사, 심지어 부사여도 상관없다.


일단은, 없는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짓을 그만하기로 했다.

힘들면, 울어버리고, 울힘도 없다면 그냥 잘 거다.

물론 내 반려견도 먹이고 배변활동도 돕고(?), 금세 돼지우리로 변신한 집구석도 슬슬 치우다 보면, 모을 에너지도 하나 없이 그냥 지나가는 나날이 대부분이지만.

돈은 티끌모아도 티끌이더만, 나의 에너지는 티끌 모으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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