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나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해, 나의 착한 남편이 꽃과 마트에서 파는 귀여운 나무늘보인형(나를 닮았다며... 무슨 뜻이니..?)을 사가지고 왔다. 이렇게 살다, 다시 1달만 더 지나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
벌써, 영국에서 남편과 같이 산지 6년, 나의 강아지와 같이 산지도 이제 곧 있으면 1년이 된다.
한 10년 정도 되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수월할까? 아니면 다른 문제가 더 튀어나와 우리를 고행길로 밀어 넣을까? 아직까지 죽지 않고 잘 살아있는 것에 나는 감사해야 하겠만, 나는 어제도 울었다.
그리고 날씨가 어제보다는 훨씬 좋은, 모처럼 해가 나온 날임에도, 내 얼굴은 먹구름 가득, 표정도 가늠하기 어렵다.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느껴왔던, 나의 '뱃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긴장되는 증상. 나는 그저 집중해야 할 때 책 앞에서 내가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런 걸로 이해해 왔다.
아.. 나는 엉덩이에 힘이 없구나.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뇌에서 생떼를 피운다 쯤으로 이해했다. 물론, 거짓말할 수 없는 나의 엄마에게는 좀 글이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는 걸 언뜻 흘리듯이 말했다.
누구도 우리 집에서 난독증이라는 걸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것도 '강ㅇㅇ'의 딸이 난독증이라니 택도 없는 소리였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나 혼자 가지고 있어야 할 문제였다. 새어나가는 순간, 강ㅇㅇ 이란 이름의 아버지는 엄마에게 어떤 처벌을 가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릎을 다쳐도, 남자아이에게 주먹질을 당해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어도, 성적표가 나왔는데 100이 아니라 90일 때도, 무조건 우리 엄마와 나는 스스로 조용히 처리해야 했다.
새어나가면 죽음이었다.
그런 일을 처리하지 않을 수 있게 나 스스로 잘하는 것, 조용히, 어른스럽게, 똑똑하게.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난독증, 우울, 칠칠맞음 등,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안 되었다.
지금 혼자 쉬쉬하지 않아도 되는 이 순간, 나는 별에 별 증상들을 보였고, 별에 별 진단을 받고, 수십 종의 약을 복용 중이다.
이게 긍정적인 일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일인지는 내가 스스로 판명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나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이 귀찮다.
왜 지금 이 나이가 돼서야, 한꺼번에 박터지듯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내 몸도 더 이상은 견디기가 힘들다고 애원하는 걸까.
나의 심리상담사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주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현재 사는 이 삶이 '안전하다'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내가 원했던 진짜 나의 모습(?)이 나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와주어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이모 든 것이 약으로 처리가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약으로도 어떻게 될 수 없는, 치료방법도 아직까지 없는 그런 신경학, 정신적인 증상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핸드폰이던, 종 이 책이든 간에, 1페이지 이상 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이런저런 폰트설정과, 줄간격, 글자크기 등을 설정하고 보아도, 내가 해당 페이지에 글자들을 그냥 글자로만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는 외국 웹사이트와, 구글 등 모든 페이지들은 'open dyslexic'이라는 무료 난독증 폰트를 지원하고 있어, 상당 편하게 읽고 쓰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네이버나 기타 웹사이트는, 밀리의 서재 포함, 난독증에 필요한 폰트를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내가 못 찾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못 찾는 거면, 해당 웹사이트의 디자이너들이 a11y(Accessibility)를 고려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도 든다. 해외의 웬만한 대기업 아니고서야, 웬만하면 이 기능들을 아예 고려조차하지 않는 것이 수두룩 빽빽이다.
한국에서는 난독증에 관한 기능이 거의 전무하다.
밀리의 서재에서의 폰트 사용조차, 일단 네이버에서 '한국어 난독증'이라는 검색어로 스스로 리서치를 좀 하고 난 뒤, 어떤 특정 폰트가 난독증 환자들에게 잘 쓰인다는 AI 검색 결과를 받고 나서야, 내가 스스로 해당 폰트를 핸드폰으로 다운로드한 뒤, 밀리의 서재에서 폰트를 가지고 와 설정해야 하는 식이었다.
굉장히 귀찮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것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결국 내가 난독증만 없었어도, 이런 귀찮은 일 따위......
라며, 스스로 난독증이라는 짜증 나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이제껏, 많은 상담과, 교육, 독서 등을 통해서, 나의 대한 존중, 용서, 사랑, 감사 등을 하라고 그렇게 귀에 박히게 배웠음에도,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이었다.
명상을 하는 이유도, 매일 20분 이상 무슨 운동이던 하는 이유도, 음식을 조절하는 이유도, 몇십 개의 약과 함께 보충제 및 영양제를 먹는 이유도 다... 모두가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습관을 드높이기 위함이었는데, 저 난독증이라는 증상하나로, 아니 이외에도 여러 증상 하나로, 애써 쌓은 탑을 무너뜨렸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 중.
나의 정체성은 뭘까.
무거운 책임과 의무만이 기다리는 나의 그림자가 두텁게 드리우는 곳이 여기다. (이것도 김영하 작가님의 말, 연금술에 가깝다 이런 문장)
책에 따르면, 의무, 책임과 같은 이런 무거운 것 말고도, 나를 나로 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도 나의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여하튼 그렇게 이해했다)
나는 난독증으로 설명되나? 아니면 자폐? 아니면... 그냥 성격 괴팍한 전형적인 아시안 장녀 콤플렉스 가득한 여성?
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뭐지 싶다.
나 스스로 확인하는 것은커녕, 타인의 인정도 없는 상황이 현 상황이어 보인다.
나의 남편은, 나를 자신의 가족, 아내로 보고 있다.
나의 강아지는, 나를 자신의 엄마 혹은, 주인장(?) 즈음으로 기억하겠지.
나의 엄마는, 나를 가여운 장녀, 한국에 없을 때는 보고 싶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투머치한 딸일 것이고, 나의 동생은, 안타까운 누나, 자신감을 가져도 될 조건에 있음에도 자신감은커녕, 야망도 없는 그런 누나일 것이다.
나에게 나는......?
나에게 나라는 존재는,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도 버리고, 모국어도 버리고, 익숙한 환경에서 나와,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외국인, 외노자였다가, 서서히 무엇인가가 빙하처럼 드러나는데, 드러나는 그 무엇인가들이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 화만 많은 사람이다.
화가 나를 집어삼킬 때까지, 나는 나를 그대로 두었고, 그 화는 결국 나에게 공황과 우울을 주었음에도, 화라도 없으면, 내가 내가 아닐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그런 상태로 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어디론가 이동할 필요가 없는, 지금 살고 있는'이 영국의 어느 곳이 일시적인 상대처럼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