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글을 쓴 결과
올해 5월부터 시작한 것 같다.
5개월이 지난 9월, 지난주 일요일 4차 퇴고까지 마무리했다.
이번주는 나의 첫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 300곳을 골라 목록을 만들고 다음주 3일에 걸쳐 원고 청탁 메일을 보낼 예정이다. 과연 받아줄 곳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무조건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목적론자다.
목적이 없는 행동은 재미가 없고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한다. 책을 집필한 목적도 당연히 있다. 책 한권에 내 이름을 새겨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 내가 누구라고 일일이 말하는 것 대신 책으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한평생 삶의 기록이 남겨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여하튼 의미보다는 실용을 앞세우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인간인 나의 목표는 올해, 늦어도 내년 초 출간이다.
한주에 세편씩 썼다.
쓰는 동안 늘 책을 끼고 살았고 정기간행물과 인터넷 콘텐츠를 정기 구독했다.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신문과 칼럼을 읽고 자주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분량의 반쯤 채우고 나니 쓸 내용이 고갈되었다. 남은 물기까지 쥐어 짜내어 어느덧 250페이지에 달하는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내용이 형편없다. 부끄러워 내 놓을 수가 없다. 온갖 욕을 다 먹겠구나 싶다. 유능한 작가도 아니고 처음 책을 쓰면서 몇 달 안에 끝내려니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뻔하다. 과거 책을 읽으며 저자들의 글 실력을 자유자재로 논했던 것에 깊은 죄송함을 느낀다.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부족하지만 이대로 출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또한 내 모습이다. 유려한 글 솜씨를 갖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내 한계를 인정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마저 보여주기로 했다. 책을 쓰며 줄기차게 말했던 최고보다 최선을, 성공보다 성장이 더 중요한 가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어색하고 턱턱 막히는 부분을 없애려고 매일 읽고 고치고 다시 썼다. 자랑하려는 모습, 꾸며진 모습, 솔직하지 못한 모습은 정확하고 솔직한 언어로 바꾸고, 멋있게 보이려는 모습, 부풀어진 자아의 거품을 꺼뜨리려 노력했다. 실력은 부족할 지언 정 적어도 요행은 부리지 않았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실히 썼다.
직장에서 나왔더니 당장 거래은행의 대출금 한도액이 줄었다. 서비스를 선택했던 갑의 입장에서 팔아야 하는 을의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 삶에 만족하며 당당하게 살고 있다. 단지 마음 속 짐이 하나 있는데, 퇴직 후 3년이 지나도록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다. 든든한 직장에 다니는 자식이 큰 자랑거리 중 하나였는데 실망을 드리는 것이 죄스러웠다. 다행히 연금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기간을 참아냈고 휴직교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기간제 자리가 넉넉하게 있으니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무엇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즐겁게 웃으면서 일할 수 있음에 함께 기뻐해 주셨으면 한다. 이제는 나이 50을 바라보는 자식보다 80을 눈앞에 둔 당신들의 삶을 우선하시기를 바란다.
“저는 매일이 새로운 날이며 오늘이 최고로 행복한 날입니다. 모두 당신들 덕분입니다.”
채인선의 동화 『산다는 건 뭘까?』 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산다는 건 너의 시간을 즐기는 거야
너의 시간을 네가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거야
그걸로 너의 일평생,
너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거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인생의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뜻대로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부질없다는 생각 앞에 만사 귀찮을 때도 있지만 ‘느린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염려하라’ 는 김밥 파는 CEO 김승호 회장의 말처럼 멈추지 않고 나의 속도로 거침없이 물들어가려 한다. 나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희망에 가까이 갈 수 있고 오래 버티는 힘도 생긴다. 어느 날 기분이 좋아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예전에 없던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그런 활기찬 감정이 지속적이라면 나다움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업장 오픈과 원고 쓰는 것까지 겹쳐 정말 힘들었는데 성과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역시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기다린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참아낼 수 있다.
출판사 리스트 작성을 위해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과연 내 원고를 받아 줄 곳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