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11시다. '아무렴, 우리 아들이 11시 전에 잠들 리가 없지.' 가끔 진심으로 궁금하다. 4세 아이는 그 작은 몸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넘쳐나는데 왜 40대 아빠는 그 커다란 몸뚱이를 가지고 체력은 바닥일까. 이 아이가 9시에만 잠들어 준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가진 수를 다 써서라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아이의 술책에 점점 인내심의 그릇은 바닥을 드러내다 결국 외마디 외침소리와 함께 일단락 지어졌다. '얼른 자!'
방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농도 짙은 감성의 음악을 틀었다. 조용-히. 잠시만 이대로 가만히 있자.
요즘 아이는 부쩍 자기주장이 세졌다. 이제는 뭐 거의 반항아 수준이다. 내 아이라 사랑스러운 건 맞지만 반항아 모드가 켜지면 '우리 아들~'에서 '이 Shake it'이 된다. 정말이지 세상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어쩜 딱 이 시기의 아이이지 않을까? 철저하게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린 채 소리 빽빽 지르며 제 할 말만 하는 이 아이들.
아이가 자기주장이 세진 뒤로 나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나의 멘털을 지킬 수 있을까'이다. 그래서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육아 선배님들의 첨언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는 바람도 남겨본다.
1. 아이의 체력관리가 필요하다.
아이는 체력이 넘쳐나기에 적절하게 소진시켜 줄 필요가 있다. 아, '체력관리'라고 써서 혹시 체력이 좋아지는 방향으로의 관리라고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웬만하면 낮잠을 안 잔다. 강철체력인지 지독한 정신력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깨어 있으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1일 1 놀이터는 필수다. 안 그래도 어린이집 하원길에 어린이집 친구하고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오늘도 바로 집에 가긴 틀렸구나'싶다.
물론 1일 1 놀이터의 끝은 눈물의 이별이다. 두 녀석 모두 '집에 안 갈 거야! 엉엉~' 상태로 헤어질 때가 많다.
2. 비록 아이가 감정을 긁더라도...
육아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내 아이를 이웃집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 아이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이모, 삼촌이에요. 그러면 아이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어요."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정신건강에 이롭다.
4세 아이는 말도 꽤 잘한다. 이제는 말대꾸도 능수능란하다.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어느 순간 훅 치고 들어오는 아이의 언행에 '욱!' 하는 순간이 높은 빈도로 찾아온다.
비록 아이가 감정을 긁더라도 이웃집 아이에게 화를 내어서는 되겠나. 심호흡을 깊-고 크-게 한 뒤 미소 잃지 말고 아이에게 말해보자. "쓰-읍!"
3. 적절한 타이밍에 먹잇감을, 아니 먹을 것을 제시한다.
우리는 저녁을 먹을 때 TV를 틀어놓는다. 아이는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아내와 나는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본다. 아무래도 아이가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치는 만큼 아이가 좋아하는 채널을 적절하게 플레이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나마 아이의 시선 돌리기를 성공하고 나면 잠시동안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잠시동안'이라는 점.
이제 좀 컸다고 아이는 혼자 TV를 보고 있다는 것과 아빠 엄마는 둘이 뭔가 딴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인지한다. 그때부터는 수시로 식탁으로 와서, "아빠, 밥 다 먹었어?" "엄마, 밥 다 먹었어?"라고 눈칫밥을 얹혀준다. 정말 후한 인심이다. 덕분에 배가 더 부르다.
역시 이럴 땐 달달구리나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뭐, 아이에게 TV를 보여주는 게 좋지 않다는 말도 이해가 가지만 우리에게도 잠시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먹을 것을 제시하는 건 나름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4. 발연기라도 좋으니...
다행인 건 아이는 TV를 보다가도 책을 읽어주겠다고 하면 바로 TV를 끄거나 지금 보는 것까지만 보고 끄겠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나름의 시간 기준이 있는 것 같다. '혹시?'라는 생각에 9시 즈음 딜을 해봤다.
"아들, 아빠가 책 (두 손을 쫙 펴고) 많이 읽어줄 테니까 우리 이제 TV 끌까?"
"아니, 싫어, 지금은 TV (손가락 3개를 펴고) 세 개 더 볼 거야."
깔끔하게 반려당했다.
이럴 땐 발연기라도 좋으니 아이의 눈길을 끌만한 뭔가를 해야 한다.
먼저 잠시 한 발 물러섰다가 아이가 보던 것이 끝날 즈음 아내와 합심하여 큰 소리로 "자, 이제 끝났습니다~ 정리할 시간이에요"라고 말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면 아이도 따라서 움직이긴 한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 타이밍에 얼른 독서로 유도한다. 이번엔 한쪽 손만 쫙 편다. 넘어오면 다행이다. 아니면 뭐.
5. 곧 끝날 것을 미리 고지한다.
아이의 머리에 깔린 기본 프로그램은 '잠자기 싫어'다. 그래서 계속 뭔가 구실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그래도 나름 대화가 통하는 때다. 이럴 땐 미리 '앞으로 3권만 더 보면 자는 거야?'라고 말해주면 아이도 곧 잘 수긍한다. 실제로 3권을 다 보고 나면 책을 덮으며 "이제 우리 잘 시간, 누우세요"라고 말한 뒤 불을 끈다.
물론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3권이 끝날 무렵 다시 처음 것을 읽어달라거나 갑자기 와다다 거실로 나가 장난감 친구들을 데려온다. 그러고는 "아빠 이거 변신시켜 줘" 라든가, "아빠 잠깐만, 얘네(변신 로봇 자동차) 합체 좀 하고"라는 말로 시간 끌기에 들어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개구쟁이 피도 고스란히 물려받은 거고, 밤에 잠자기 싫어하는 것도 역시 그대로 물려받은 거라 뭐라 할 말은 없다. 해가 저물수록 점점 긴장감이 높아지지만 그럼에도 너무 사랑스러운 내 아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마지막 지침은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해 주라는 것이다. 하원 후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하원 전까지 중요한 일은 모두 마무리한다. 평일 낮시간도 모자라 요즘은 아침 시간도 최선을 다해 활용하는 중이다. 우리 가족 모두의 굿-모닝과 굿-이브닝을 위해.
아이는 언제나 아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내가 그걸 다 감당하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 결국 아빠의 멘털 케어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지 않을까? 순순히 잠드는 것을 받아들일 만큼의 만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