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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04. 2024

아이가 이빨을 다쳤다

'만약에 손잡이를 좀 더 꽉 잡았더라면...'

'만약에 앞바퀴를 살짝 들고 내렸더라면...'

'만약에 뒷바퀴로 내렸더라면...'

'만약에 엘리베이터에서 걸어서 내렸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살면서 그 짧은 순간 그렇게 수많은 '만약'이 스쳐 지나갔던 적이 또 있을까. 바닥에 고꾸라진 아이의 입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모습을 보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파서 우는 아이 앞에서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써 당황한 기색으로 감추며 휴지로 지혈을 했지만 이미 나의 동공은 어쩔 줄 몰라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옆에서 아내는 순간 벌어진 일에 너무 놀란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


불과 지난주의 일이었다. 


아이와 아내랑 함께 속초에 놀러 갔다. 새로 산 아이의 캐리어는 여행 갈 때 이동이 편리하도록 아이가 캐리어 위에 탈 수 있는 구조였다. 새로운 가방, 새로운 아이템에 아이도 우리도 그저 신나게 떠난 여행이었는데 정말 한 순간에 모든 상황이 뒤바뀌었다.


여행의 둘째 날, 물놀이를 갈 채비를 하고 이동식 캐리어에 아이를 앉혀 이동 중이었다. 참고로 캐리어의 구조를 설명하자면, 뒷바퀴는 크고 앞바퀴는 작다. 앞바퀴가 작다는 건 벌어진 틈이나 조금 높이가 있는 턱에 걸릴 수 있다는 소리다. 아, 물론 이 캐리어의 용도는 공항이나 어디 실내에서 이동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문제의 그 이동식 캐리어. 가방은 탈착이 가능하다. 사진 속에는 가방은 떼어놓은 상태.


바퀴가 워낙 잘 구르다 보니 손을 그냥 걸치듯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이동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결국 화근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엘리베이터 문쪽의 틈에 바퀴가 툭 걸리고 말았다. 순간 나는 손잡이를 놓쳤고 '어?' 하며 뒤돌아 보는 순간 이미 아이는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져 버린 상태였다.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겨우 참아가며 일단 차에 타 주변 치과에 전화를 돌렸다. 하필 점심시간이라 진료를 받으려면 1시간 20분가량 기다려야만 한다더라. 아이는 울고불고 아랫입술은 터져서 피가 계속 흐르고, 앞니 두 개는 부러졌는지 어쨌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속은 타들어가는데 그저 점심시간이라고 이따 오라는 말이 진심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쩌겠나. 별 일 아니길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세상 가장 느린 1시간 20분을 보낸 뒤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다행히 큰 일은 아니라고 했다. 더 다행인 건 일단 영구치가 아닌 유치라는 사실이다. 근데 절망적이었던 건 앞니 두 개 중 하나는 부러졌으니 빼내야 아이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아, 대체 내가 뭔 짓을 한 걸까.' 


일단 그날 바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진료 후에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숙소로 돌아와 마음을 추슬렀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서 리조트 주변 산책도 하고 호수에서 도넛 보트도 탔다. 아! 물놀이 대신 사우나도 다녀왔다. 참고로 내 아이는 사우나를 좋아하는 4세 아이다.


여행 일정을 하루 남기고 밤늦게 서울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동네 치과에 가서 진료를 봤다. 혹여라도 이빨을 뽑아야 하는지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들어갔는데 다행인 건 부러진 게 아니란다. 그저 이빨을 둘러쌓고 있는 인대가 끊어진 거니 한 달가량 조심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다행히 아이는 아픔을 딛고 잘 지내고 있다. 각별히 음식이나 간식류 단단한 것들을 조심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작 이런 일로 이런 말을 하기엔 오버 같지만 오래전 세월호의 아픔을 겪은 분들, 이태원 사고의 아픔을 겪은 분들, 시청 앞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 모두 '순간'이었다. 아이가 다쳤을 때 정말 많이 생각했던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였다. 나도 이 정도인데, 그분들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아이는 정말 순간이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한 날이었다. 아니, 비단 아이뿐일까. 인생은 정말 한 순간에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경험이었다. 그러니 주어진 오늘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다시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무탈하게 보낸 그 하루가, 순간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해 아이에게 소리친 그 하루가, 울다가 웃다가 지지고 볶는 그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안전사고에는 항상 유의하자는 마음도. 


사고 이후 아이를 캐리어에 태우고 이동할 땐 손잡이를 아주 꽉 잡는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다. 수시로 뒤돌아 보면서. 


다시 해맑게 하루하루를 잘 지내는 아이에게 고맙다. 부디, 진심으로,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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