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돌아왔습니다. 소유이즈백.
생각해서 하는 말인 건 너무 잘 알겠다. 허나 작은 틈도 없이 밀도가 채워진 스펀지처럼 수심 가득한 마음엔 어떤 따뜻한 한 방울도 흡수될 수 없을 만큼 용량 과부하 되어있었다.
눈물 같은 수분이 꽉 차 있는데 차갑게 냉동까지 된 스펀지라 모든 것들을 튕겨내고 어떤 것이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거울처럼 얼었다.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다른 결이어도 그 속에는 일정 패턴이 있다. 놀람, 질문, 위로 3단계. 안타까운 눈빛을 기본값으로 그렁거리는 눈물은 필수 덤이다. 외려 내 이야기에 나보다 더 오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과잉 감정에서 진심으로 내가 보인 건 (안타깝지만) 잘 없었다. 나를 통해 자신들을 비추었고, 지금 현실의 나보다 먼 미래의 자신과 이야기하는 이상한 대화가 이어졌다. 몇몇 유독 티가 나는 값싼 동정에 슬슬 불쾌해질 즈음, 누군가의 ‘책을 좀 읽어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은 참으로 신박했다. 건조하고 짧은 위로 뒤에 이어지는 3.5단계 제안이어서 더 신선했다.
마치 너무 안 움직여서 탈인 우리 집 사람에게 아래 층 여자가 집에서 너무 많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항의했을 때처럼 아이러니하며 살짝은 억울했다.
책을 너무 읽어서 탈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책이랑 담을 쌓아 보였나 싶을 정도였나. 듣자 마자는 “아 네^^;” 바로 튕겨낸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새벽 이불은 조금 따듯했던가, 얼음 스펀지의 가장자리라도 조금 녹아 틈이 있었는지 “어쩌면 그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며 다시 그 충고를 되새겼다. 이불 안에서는 뭐든 안전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문학 문제집을 한 권도 안 풀어도 수능 언어 영역에서 1문제 틀린 1등급이었다는 자부심의 탈을 쓴 잘난 척이 스친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 골똘히 형광펜과 연필이 사각대는 시간에 야자 감독이라도 되는 양 고고한 학처럼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있던 고3에 온 중2병의 기억도 역시 함께 떠올랐다.
언젠가 아이를 잘 키우려면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대주제로 강의하는 진짜 애 잘 키운 책 육아 강사를 만났다. “책 많이 읽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 전 진짜 책 많이 읽어요.”라 했더니 “이런 데서 (?) 자기 스스로 책 많이 읽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많이 읽는 거다.”라고 엄지 척 인정해 준 기억도 따라온다.
다만 그 말이 무색하게 그다음 달부터 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의 활자는 한자도 읽지 않았으니 엄지를 다시 곱게 접어야 한다.
이 모든 기억들의 결괏값으로 평소 같으면 ‘네가 뭔데 날 판단해’하고 흘려버릴 그 ‘책을 좀 읽어보면 어떻겠냐’는 말이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조언’이라는 결론으로 도출됐다.
지나고 보니 결국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소중한 인연이라며 아껴왔던 독서 모임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가만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다는 핑계는 책과 멀어지기에 적절했다. 최태일과 두 딸들에게 절규에 가까웠던 잔소리 ‘제발 책 좀 읽어’는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근데 말이 쉽지, 막상 내 오랜 옛 취미는 ‘해야지’ 하고 바로 해낼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다시 도끼 같은 책으로 돌아왔지만 10초 컷으로 넘어가는 1장의 속도전은 전생이다.
한 문장을 한 번에 채 읽어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고 넘어졌다. 도끼에 찍혀버린 멘털에는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래도 수백 번 넘어져서 겨우 한 걸음 내딛는 아이 같은 속도를 명심한다. 다시 읽어보자고, 독서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고 마음먹었으니 실천을 해야겠지.
다시 읽고, 다시 돌아가자고 마음먹고 나불거렸으니, 정말 다시 돌아가 있어야 한다. 이제 뒤는 없다는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아이빕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조용히 불 꺼짐)”의 숙연한 무대에서 박은혜 씨가 머쓱하나마 도망치지 아니하고 어둠과 정적 속에 꼿꼿이 서 있는 심정으로. 불특정 소수에게 내가 컴백했다고 알려야 한다.
진로이즈백처럼 이.효.리.is back처럼. 광범위한 다수는 아닐지라도 어디에든 다시 왔음을 알리자.
안녕하세요 김소윱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 (숙연..)
이러고 바로 며칠 뒤 독서, 글쓰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이름은 soyouisback !
2025년 10월 15일
글쓰기 모임에서 다정한 멤버가 제안한 미니 글쓰기 주제
주제는 ‘나에게 독서란’입니다 :)
다른 사람의 독서의 의미에 대해 듣고 싶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