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언제부턴가 ‘소유보다 내면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하는 말이 괜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소유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물질적 소유와 내면적 가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내면의 어쩌고를 택하겠지.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한 판 더 O, X 앞에서처럼 살 떨리게 장고하며 겨우 택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항상 갖고 싶은 건 즉시 다 가져야 했고, 혹시나 바로 못 가지더라도 곧 가져야 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갖고 싶다”라는 강력한 감정. 좋게 말해 내면의 소리, 속된 말로 욕망이 담긴 소유라는 세계.
유명한 작명가에게 100만원을 넘게 주고 받은 이름으로 개명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네가 직접 지었어?”였다. 다들 성격대로 지은 이름인 줄 알았다고 했고, “앞으로도 많이 소유해”라는 덕담인 듯 놀림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소유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풀소유의 아이콘이었다.
귀여운 건 못 참고 한정판은 더 못 참다 보니 집에 작고 (나한테만) 귀한 물건들이 한가득 이다.
물론 크고 세련된 기계들도 다 가져봐야 했다.
1년에 1번 나오는 아이폰 주기에 맞춰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았지만 빠짐 없이 기변 했다. 상위 버전의 애플이 쌓여가는데 그 사과들을 당근에 팔지도 않는다. 다 내꺼니까.
미니멀 열풍이 불었을 때 맥시멈한 나를 잠시 반성했지만 그건 그냥 잠시 분위기에 휩쓸렸을 뿐이다.
소유와 존재의 갈림길에서 많이 소유한 사람은 영락없이 ‘가진 것에 비해 마음의 여유는 없는 속물’로 인식 된다. 당장 포털에 “소유”를 검색하면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 소유보다 경험, 소유보다 향유, 트럼프의 ‘미국이 가자지구를 소유하겠다’는 발언의 기사까지 하나같이 소유에게선 아득바득한 늬앙스가 담겨있다.
하지만 명색이 소유의 입장에서 한마디 변호를 해본다.
많이 갖고 싶은 사람은 경험도 많이 갖고 싶다.
아까 O, X 부저 앞에서 고민했으나 결국 내면을 택하는 게 본심이므로. 이분법처럼 소유와 존재를 나누지 않는다면 물건만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라면 죄송) 내면의 존재와 소중한 가치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욕망 가득한 속물처럼 보일까.
계속 새로운 폰이 갖고 싶은 이유는 오늘의 시간을 새로운 기술로 찍어서 더 예쁘고 효율적으로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알라딘 굿즈를 책 값만큼 결제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굿즈보다 더 좋아한다.
책 속에서 나는 또 새로운 세상을 가지고, 다양한 감정도 가진다.
그 감정들은 어디에도 팔지 않고 내 마음에 새겨둔다. 그것 역시 다 내꺼니까.
나에게는 이번 주 까르띠에 전 품목 인상 이슈에 마음 앓이하고 셀러님을 닦달하며 어렵게 예약을 잡는 마음과 정원 마감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서 ‘혹시 대기도 가능하냐’, 대기 결제해두고 ‘곧 시작인데 참여 가능한거 맞냐’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마음이 똑같다.
반지도 글쓰기도 둘 다 갖고 싶다. 둘 다 하고 싶은 범주에 있고, 같은 농도로 원한다.
결국 소유냐 존재냐를 물으신다면 모든 존재를 소유하는 걸 택하겠다며 불치병의 욕심쟁이로 남겠다.
이번주 글 주제는 나라는 사람을 얘기하는 시간입니다.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넓고 너른 주제를 선정하고 있어요. 하루 보내시면서 어떤 글로 나를 설명해낼지 사유해주세요!
.. 2025년 4월 3일 글쓰기 모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