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자궁내막증? 저는 이제... 생각하기가 싫어요. 편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보통 초진을 보고 나면 2주 후에 팔로업 예약을 잡는다.
검사 결과들이 보통 그때쯤이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초진보다 더 중요한 날이 바로 이 날이다.
초진은 증상을 병력과 증상을 위주로 몸의 맥락을 파악하는거라면,
두번째 진료는 검사 결과와 증상을 연결시켜 몸의 퍼즐을 맞춰가는,
앞으로 계획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진료일이다.
많은 분들은 이 날을 고대하다 오신다.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내 몸에 문제를 일으키는 음식들을 뭐가 있는지,
내 장은 건강한건지, 대사는 잘 돌고 있는지 궁금해하시면서.
내 건강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시면서.
그런데 이분은... 오시질 않는거였다.
한번 미루는 건, 그럴 수 있다 넘겼고,
그 다음달에 예약이 되어있을때는 오시겠지 하며 진료 준비를 열심히 했었다.
이 진료를 위해서는 진료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1주일 이상 전에 다음 주 환자를 확인해서 차트 리뷰를 한다.
차트 리뷰를 하다보면, 환자분들의 증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데,
이분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대사가 안되는데, 안피곤한게 이상하지."
"염증을 유발하는 음식들을 이렇게 매일 드시니... 염증이 계속 되지."
이 분의 차트 리뷰를 마쳤을때는
"아. 얼른 오셔야겠다. 할 일이 많으시네!"
하는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해두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예약 현황을 확인해보니, 예약이 사라진게 아닌가!
나는 이 진료의 하루 진료 가능 인원이 4명 밖에 되지 않아, 기다리시는 분도 많고,
진료 준비에도 워낙 많은 시간을 쓰다보니, 예약 현황을 상당히 예의주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취소되면 오늘 일이 줄어 살짜기 좋아할때도... 물론 있다...ㅎㅎㅎ)
하지만 이분은 어째 뭔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예 예약을 안한 상태라면, 내가 리뷰를 하지 않으니 그 환자분의 검사 사정도 모를테고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넘어가지만... 이분은 이미 리뷰는 다 한 상태, 즉 내가 그 분의 상태를 다 아는 상태에서 안오시니...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내 바쁜 일상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다음주 예약에 그분의 이름이 다시 보였다.
오.. 이제 다시 오시는건가. 하고 날짜를 살펴봤더니, 초진을 보고 무려 두 달이나 지난 날이었다.
차트 리뷰를 다시 하면서, 잠깐 그 분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하기가 싫어요.
생각하기가 싫어요.
생각하기가 싫어요.
뭔가 그 한마디가 반복재생 되는 것처럼.
분명 꽤나 번거로운 내 진료의 예약을 할 정도의 마음이었다면,
건강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상당히 큰 액수의 검사비를 지불하고, 검사를 할 정도의 마음이었다면,
나를 돌보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일텐데.
왜 그녀는 2주가 아니라 두 달 동안 다시 오질 않을까.
잠깐 생각했다.
이내 나는 진료 예약 시스템을 켜서, 그분께 문자를 보냈다.
그분의 예약일.
과연 오셨을까.
오셨다!
또 그 특유의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너무 오랜만에 오시는거 아니냐고.
검사 결과 궁금하지 않으셨냐고 ㅎㅎ 반갑게 그분을 맞았다.
그런데 그분이 그러셨다.
"(인스타에서 보니)
다른 환자분들은 열심히 하셔서
너무 좋아지시는데,
저는 그러질 못하니까...
선생님을 보러 올 자신이 없더라구요.
너무 죄송해가지구요.
????
이분의 언어는 참 어렵다.
저한테 미안할게 뭐가 있어요.
하며 그 분의 얼굴을 바라봤더니 이런 말을 건네셨다.
사실 오늘도 미루려고 했어요.
보내주신 문자, 그 문자 때문에 오늘 온 거예요.
그러셨다.
참 여러가지 마음이 들었다.
세상엔 내 몸, 내 마음, 내 건강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이것이 가장 본능적인 욕구인만큼, 대다수가, 그리고 나 또한 그중의 일부일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분은 '나'의 순위가 뒤로 밀려난 사고와 언어를 쓰고 있는 느낌이었다.
소위 '자존감'이 낮다는 개념과는 달랐다.
사람의 생각이 '자존감이 낮음'에 집중되어 있으면 아주 부정적이고 고약한 에너지가 나오는데, 이 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타자 우선'에 집중되어 '내'가 설자리를 잃은 느낌에 가까웠다.
찰나에 이런 생각들을 하고 나니, 나는 검사 설명의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이분에게는 설 자리가 필요하다.
내가 해야할 것은 '건강'에서까지 그 분을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젊은 시절 난소암, 현재는 자궁내막증까지 있으실 정도로 일부분은 취약하지만,
지금 OO님 몸은 힘든 주인을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고 있답니다.
솔직히 장벽은 이정도 버텨낸거 보면 저보다 튼튼하신 거 같아요.
그러면 이렇게 물으신다.
그럼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요?
몸이 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면, 이렇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궁금증이 생긴다.
그제서야 못오시는 두달 동안 꼭 전해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대사가 돌지 않아요.
이상태로는 안피곤한게 이상하신거예요.
대사를 개선하시면 훨씬 좋아지실거예요.
검사들을 쭉 보면서 이제 이렇게 해봐요. 말씀드리니 그분이 그러셨다.
해볼게요. 이번엔.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께 말씀드렸다.
너무 잘하려하지 마시고,
완벽하게 하실 필요도 없어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 더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거.
그거면 충분하니, 다음번에 꼭 뵈어요.
그렇게 그분을 보내드리고 진료실에 남겨진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사실 며칠 전 문자를 보내면서도 참 많이 망설이기도 했다.
괜한 '개입'이 아닐까.
솔직히 나는 이런 '개입'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것이 꼭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그 분께는.
'타자'에 밀려 돌보지 못했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핑계가 되었고,
멍석이 되었고,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 분을 여기에 오게 만든 건 '문자 하나'였다는 것.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활력을 줄 수 있으려면,
몸을 공부하는만큼이나 마음을 돌봐야한다는 걸 이렇게 깨달아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마음공부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문자 내역을 찾아보았는데,
그분께 보내드린 문자는 길지도 않았다.
OO님 이번에는 꼭 오세요.
검사해두고 몇번을 못오셔서
마음이 쓰이더라구요.
스스로를 꼭 돌보며 지내세요.
수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