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침대를 좀 뒹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신다. 잠깐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요가를 시작한다. 30분. 온전히 내 몸에만 집중해서 체온을 올리고 일어나 샤워를 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바로 도시락을 싸는 일이다.
도시락을 싸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나이롱 채식주의자*로서 채식 식품을 많이 팔고 있는 독일에서 음식을 고르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뭐가 되었든 매번 점심을 사 먹는 것은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영 독일인들의 '간'이 나와 맞지 않는다. 대체로 짜거나 느끼하거나 짜고 느끼하다. 혹은 달거나 느끼하거나 달고 느끼하다. (?)
그래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있다.
주먹밥을 쌀 때에는 고심해서 속을 고른다. 보통은 소금과 깨로 간을 하고, 아니면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준 김가루를 넣기도 한다. 단무지와 방울토마토를 반찬으로 싸기도 한다. 밥을 넣은 도시락에는 계란말이가 빠지면 좀 섭섭해서 계란말이도 많이 말아 넣는다. 조금 달달하게 간을 하면 간간한 주먹밥과 단짠단짠 조합으로 먹을 수 있다.
파스타는 뭐를 싸든지 좀 식어서 콜드 파스타가 되어 버리긴 하지만, 워낙에 좋아해서 잘 싸 다닌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지만, 소스를 부어 먹는 파스타는 아예 잘 비벼 가는 편이 나았다. 여름에 냉파스타 샐러드로 싸 갈 때에는 식초와 올리브오일 간을 하여 새콤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토스트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내 최애는 고전적인 딸기잼+땅콩버터 조합. 20유로를 주고 산 샌드위치 메이커(무려 와플팬과 그릴팬도 되는 3 in 1 샌드위치 메이커다.)가 열심히 일을 해 준다. 양배추를 잔뜩 넣은 양배추 토스트를 쌀 때도 있고, 간단하게 오이와 토마토, 치즈를 넣어 싸기도 한다. 길거리 토스트처럼 달걀에 양배추와 당근을 채 썰어 넣어 부쳐서 케첩과 설탕 조합으로 싸기도 한다.
과일을 싸 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엔 과일나무 한 그루를 다 먹는다는 기분이 든다. 사과 하나, 바나나 하나, 오렌지 두 개. 혹은 집에 있는 과일을 모두 씻어 썰어서 요거트 보울을 싸기도 한다. 요거트의 종류에 따라 콩거트 보울, 그릭요거트 보울, 그냥 요거트 보울...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이때 내 요거트 보울의 포인트는 잔뜩 뿌려 가는 계핏가루에 있다. 계피는 독일어로 Zimt라고 한다.
매일 아침 이렇게 도시락을 싸다 보면, 유학을 와서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쓰고 공을 들이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살 때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보통의 일상'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살림'에 개입해야 하는지, 왜 살림이 살림인지를 알게 된다.
오늘 내 도시락 메뉴는 단무지를 곁들인 주먹밥이다. 김으로 야무지게 싸 와서 밥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적극적으로 나를 살리는 일에 나서고 있다.
* 나일롱 비거니스트는 내가 나를 부르는 말이다. 모종의 계기가 있어, 나도 한때는 꽤 오랫동안 엄격한 비건 식이를 했었다. 지금은 종종 달걀과 유제품을 먹고 있고, 아주아주 드물게 바다 생물도 먹는다. 그러나 이런 식이습관과 별개로, 나는 비건지향을 하는 비거니스트가 맞다. 언젠가 나의 나일롱 비거니즘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