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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Jan 15. 2023

술이 익는 겨울밤

독일에서 막걸리 빚는 유학생

톡 쏘는 탄산의 생막걸리가 먹고 싶었다. 갑자기 왜 그게 먹고 싶었던지, 지금도 모르겠다. 독일의 아시안마트에서 파는 막걸리를 사왔다. 나름 기분을 낸다고, 무려 김치전까지 했는데 술이 너무 맛이 없었다. 무려 3유로나 주고 산 막걸리에 실패한 그 겨울날. 나는 문득 빵도 굽는데 술을 못 빚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검색해 술을 빚었고, 무려 한 번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술을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한 이과생의 발상이었다. 이당류를 단당류로 생분해(엿기름이 해 줌)하고, 그 단당류를 효모(이스트)가 먹고, 공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알코올 분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걸리 빚는 법을 검색해 보니까 고두밥을 짓고 좋은 누룩을 섞고 하는 과정 등이 있었다. 유럽에서 그런 재료를 찾고 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냥 간단하고 쉽게 과정을 축약(?)해 조건을 바꾸었다. 1. 누룩 없이 만든다. 2. 재료는 모두 유럽산 3. 맥주효모나 와인효모를 쓰면 더 좋다는데 나는 그런 걸 구할 수 없어서 호밀맥아를 이용했다.



이하의 방법은 독일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완전히 간단한 방법이다. 우선 내가 준비한 것들.



쌀 100ml, backmalz (호밀맥아) 3T, 이스트, 물.


만드는 방법도 매우 단순하다.



1. 밀히라이스(일반 쌀)를 엄청 엄청 깨끗이 씻고, 일반 밥 짓듯이 밥을 한다.

2. 깨끗하게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밥을 넣고, 밥이 모두 잠길 정도로 찬 물을 붓는다.

3. 호밀몰트를 3 큰술 넣어 나무 스푼으로 열심히 저어준다. (한국에선 엿기름을 3큰술 넣으면 될 것 같다.)

4. 밥과 몰트가 충분히 섞이고 밥알이 약간 풀어지면 이스트를 한 팩 (7g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렇게 넣는 이유는 지금 이곳 실내 온도가 약 15도이기 때문입니다....) 넣어 섞어준다.


그리고 뚜껑을 닫아 밀봉하고 수건 두 장으로 잘 덮어주면 삼일쯤 지났을 때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보글보글. 열심히 알코올 발효 중... :)




5. 실내에서 사흘 뒤 뭔가 형체가 뭉그러진 밥알이 다 떠오르고 중간에 노란 술이 보이며 바닥에 하얀 술지게미가 가라앉으면 면보에 거른다. (면보는 한국에서 가져왔었다.)

6. 거른 술을 다시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서 냉장고로 고고.


처음엔 저렇게 뽀얗게 다 섞인 술이 나오는데,



냉장고에 두면 왼쪽처럼 층이 분리된다. 여하튼 그렇게 냉장고에서 다시 3일이 지나면 부드럽고 탄산도 있는 맛있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사실, 내가 만든 수는 막걸리는 아니고 감주다. 왜냐면 누룩이 아니라 엿기름을 써서 만든 쌀 술이기 때문이다. 좀 더 달게 먹고 싶으면 설탕을 섞으라고 하는데, 그냥 먹어도 부드럽고 탄산이 있어서 맛있었다.



뭐랄까... 독일에서 혼자 술까지 빚어 먹다니.

어쩌면, 나는 이제 하산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Tip

1. 독일인 친구 왈, 알코올 발효와 다른 미생물 방지를 위해 유리병을 밀봉한 건 좋지만, 하루 한 번 정도 저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유리병을 열 때에 탄산이 터질 것 같다고 해서 하루 한 번씩 저어 주었다. 정말로 뚜껑을 열 때마다 술 냄새와 함께 탄산이 바르르르르 끓었다.


2. 먹기 전에 바닥에 가라앉은 것들이 위에 뜬 술과 다 섞이도록 살살 굴려서 뚜껑을 열어야 진짜 막걸리 맛이 난다. 원주는 매우 독하기 때문에 입맛 맞게 물을 타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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