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緣의 주체성
지난해 초부터 마음이 어지러워지면서, 나는 왜 인간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종교를 찾는지 몸소 체험했다. 원래도 내가 불자라는 자각이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불자佛者가 되었다. 얼마나 부처님이 간절하던지,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절을 엄청 많이 다녔다. 코엑스에서 약속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봉은사에 들러 초도 켜고 기도를 했다. 엄마가 없이도 보구정사에 혼자 가서 예불에 참석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독일에 와서까지 절을 찾기도 했다. 도무지 그냥은 명상이 안 돼서 시작한 사경을 지금까지 하고 있고, 요가를 하면서도 평정에 대해서 골몰했다. 지금은 법화경의 다섯 번째 사경이 거의 끝나가는 중이다. 나는 정말로 절박하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고 명상하다 보니 깨달은 게 있다.
간절함을 잊지 않되, 부처님이 나를 위해 당신의 힘을 쓰실 것이라고 맹신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결국 어떤 위기에서 나를 구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도대체 그게 무슨 종교냐고 할 수 있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부처와 절에 다니며 부처를 믿는다면서 결국 자기 일은 스스로 해 내야만 하는 불자라고? 그러나 나는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불교의 종교성이라고 생각한다. 인연因緣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인연이라 하면 '사람 사이 맺어지는 관계, 운명' 같은 것을 더욱 먼저 떠올리지만, 내가 깨달은 인연의 의미는 '사건이 발화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어떤 결과의 조건과 원인이다. 이것은 내적으로 갖춘 조건이고 외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원인이다. 붓다는 늘 이것을 지적한다. 인생은 어차피 고통(苦)이며 심지어는 그 고통이 한두 개가 아니다.(集)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데(滅), 그 방법이 바로 불도(道)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불도가 참 신기하다. 매우 어렵다고 하면서도, 놀랍게도 우리 중생은 모두 불도를 구할 수 있다. 즉, 성불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성불하여 부처가 된다. 우리 존재의 결과가 바로 붓다이고 그 과정이 불도다.
다시 말해서 구원과 천국, 해탈과 극락은 모두 자신의 업보와 상관없는 궁극의 결과다. 내가 그 종교를 믿어서 가 닿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게 포인트다. 왜냐면 모두가 마음속에 자신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갈 힘이 있고, 이 힘이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즉, 인연이 있고 그 인연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느끼는 감격과 환희가 바로 목샤(요가 용어입니다. 유일신 식으로는 구원, 불교식으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그래서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은 차이를 분별할 수 있지만 차별하지는 않는다고 쓰여 있다. 놀라운 일이다. 판단은 기본적으로 시비是非와 우열優劣, 가부可否를 따지게 되는 일인데, 그 결과에 따라 상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더 놀라운 일은, 그런 대단한 일을 내가, 아니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고?
이러니 불교가 종교가 아닐 리 없다.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모두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 길이 쉽다고는 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사실, 산술적으로 신이 직접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신은 지구의 모든 인류를 아가페와 자비로 구원하고자 하는데, 그 속에서 그 인간들끼리의 이익 관계 중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줄 것이란 말인가. 신은 나와 더 친하다고 그 사람의 편을 들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내버릴 수도 없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끊임없이 설명한다.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하여 절벽 끝에서 나를 구원해 줄 신을 찾을 수밖에 없으나, 결국 그 벼랑 끝에서 구원해 줄 것은 나의 의지와 행함이라는 것.
그 힘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놀랍게도,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가 선하고자 노력하는 동안에, 나는 그 선함에 의해 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포기하고 외면하고 돌아서지 않는 이상, 나는 다만 하루에 1mg 씩 이라도 더 나은 영혼이 되어 가리라.
인연은 정해져 있지만, 모두 나의 손에 달려있다.
오늘도 내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착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