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있는지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Viva, 독일어로는 Mundliche Prüfung이라고 하는 구술시험도 봤다. 교수님들과 동료들, 선후배 연구원들이 들어왔는 앞에서 발표를 하고 약 2시간 정도 교수님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거였다. 그 발표와 토의(?)가 제법 괜찮았는지, 바라지도 않았는데 Cum Laude 졸업을 했다. 정말로 통과만 바랐는데 영예졸업이라니...!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있지도 않은 과정? 성적? 인 것 같지만, 기쁘다.
시험이 끝나고 뒤풀이 때 받은 꽃다발. 살면서 받은 꽃다발 중에는 제일 큰 꽃다발이었다. ㅎㅎ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독일의 박사 과정 마지막은, 구술시험 이후, 감독관과 시험관, 지도 교수님들이 전부 모여 시험자의 성적을 결정하는 논의를 한다. 그 논의가 끝나고 나를 불러서 들어가면 인제 결과를 알려주시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우리 지도교수님이 나한테, "Congrats, You passedthe exam, and you got the point 1.5."라고 하시는데 내가, "Thank you."라고 하면서 꾸벅 인사했던 거다. 그러자 일동 침묵... 약 5초 의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침묵 뒤, 부지도교수님이, "You can be happy."라고 하셔서 내가 정말로 "Ah? Ja, ich bin froh."라고 하는 바람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근데 나는 정말로 기뻐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러니까, 아아, 나, 한국인이었구나...! ㅋㅋㅋ
여하튼 그러고 나서는, 우리 교수님이 좀 욕심이 나셨는지, 출판 기간을 넉넉하게 갖고 제대로 책을 만들자고 하셨다. 이미 내가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지금 출판 과정에 있다는 써티피케이션이 나왔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걱정 말라고... ㅎㅎ
그래서 나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독문과 영문으로 된 서티피케이션을 들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지금은 논문 출판을 위해 작업 중이다. 오탈자를 수정하고 이미지도 몇 개 바꾸기로 했다.
학교에서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된 후, 나는 바로 우리 애기의 선물을 샀다. 다행이 너무 좋아한다. 신상 장난감...! :)
이렇게 일단 모든 일정과 생활을 마무리하였지만, 희한하게도 내가 독일을 종종 다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단은 영어 다음으로 편안한 외국어가 독일어가 된 것이 분명하고, 그곳에서의 인연이 내 인생의 1/6이나 차지하고 있으니까...
시험이 끝난 뒤 맞는 첫 주말. 세상이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서 조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난 6년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인생을 배웠고, 삶을 배웠다. 전에도 어딘가 썼지만, 석사 때엔 연구하는 과정을 배웠다면 박사 연구는 내 연구 주제가 아니라 나를 연구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만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있었고, 불안과 긴장, 우울과 막막함 만큼 기쁨과 안도, 환희와 기대가 함께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끝 " 이 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참 기쁘다.
전부 나 혼자 이른 것이 아님을 안다. 응원해 주던 가족들,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친구와 동료들, 마음 붙일 구석이 되어준 붓다와 요가, 새벽 달리기 시간 등이 모두 나를 도와준 것들이다.
귀국 후 2주가 흘렀지만, 여전히 허공에 붕 뜬 기분이다. 앞으로의 일을 도모해야 할 것이지만, 가끔은 어디로 숨어서 한 한 달만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책만 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동시에 딱 한 달만 진짜 아무 걱정 없이 사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책 다 사 보면서 공부만 하고 싶기도 하다. 아아. 15년을 이 일을 하고도 여전히 재밌다니, 아무래도 이 일을 하긴 해야겠다 싶기도 하다.
다만, 이 시리즈는 이제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무리 짓는 글을 적어본다.
이 지난한 시간이 끝이 나긴 하는 걸까. 하고 고민할 때, 내 가 믿었던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모든 불안은 끝이 있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순간은 영영 끝날 것 같지 않게 여겨지지만, 연속되는 삶 속에 새롭게 생겨나는 불안의 앞에 서게 된다면, 지금의 것은 이미 '지난 일'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