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2. 코펜하겐 ( Copenhagen),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6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했을 때 한번 와 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8순 생신 기념으로 동생들과 힘을 보태 부모님을 유럽으로 여행 보내드리기로 했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단체여행을 보내드리기가 망설여졌다. 남편에게 상의를 했더니 어차피 우리가 봄에 가기로 했으니 모시고 가자고 한다.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슴 한편에 담아두고 우리는 함께 23일간 유럽을 여행했다. 유럽이 처음이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바람에 로마. 파리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동을 했다. 그 마지막 행선지로 온 곳이 덴마크였다. 그때도 올레와 도르테가 우리 모두를 티타임에 초대해 주어서 맛난 디저트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잘 몰랐던 올레와 도르테를 이번 여행에서 많이 알게 되어 참 감사하고 기쁘다.
오늘 코펜하겐 시내 구경을 하는 날이라고 했더니 아침에 앤 마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도 코펜하겐을 갈 테니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한다. 어차피 안드레는 출근하느라 코펜하겐에 있을 터이니 잘 됐다. 올레와 도르테가 없는 동안 스티븐이 도르테의 미니 쿠퍼를 운전하곤 했는데, 집에서 코펜하겐까지 차로는 20분가량 걸리는 거리이지만,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역에서 안드레와 앤 마리를 만나 시내 구경을 하고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역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커다란 광장이 나오는데 바로 그곳 코너에 스티븐이 앤 마리의 형부인 카알을 처음 만난 피자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음식점으로 바뀌어서 그때의 모습과 정취는 온 데 간데 없어졌다. 번화가인 이곳은 이제 모두 화려하거나 특색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득하다. 스티븐에게 그때 만났던 여자 친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칼스튼이 소식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약 8년 전쯤 암으로 죽었다고 칼스튼이 알려주었다고 한다. 오, 저런! 아직 너무 젊은 나이였을 텐데.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안드레는 6년 전에도 우리 모두를 데리고 코펜하겐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었다. 대학교 건물이 따로 캠퍼스가 없이 코펜하겐 시내 중심가 곳곳에 있는 오래된 빌딩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마치 뉴욕의 뉴욕대학교처럼 말이다. 건축가인 안드레는 이 건물 저 건물을 가리키며 역사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 주며 안내를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 듣는 걸 아주 좋아한다. 들어도 거의 다 잊어버리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잘 이해하고 리액션도 잘해준다. 대학이 있어서 그런지 코펜하겐은 젊었다. 미국은 대학생들은 주로 대학이 있는 타운에서만 살기 때문에 방학이 아니면 이렇게 대학생들을 동네에서 만나기가 어렵다.
덴마크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타민족이 많이 들어와 산다는 것이라고 한다. 스티븐이 처음 덴마크에 왔을 때는 금발에 파란 눈이 거의 100%였다고 한다. 앤 마리가 20대 초반에 뉴욕에 갔을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깜짝 놀란 이유가 머리색 때문이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미국에 내리니 머리색이 짙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코펜하겐도 이제는 동양, 블랙, 중동 등 세계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 덕에 머리색이 아주 다양하다. 그래도 역시 북구 유럽인답게 키 큰 금발의 늘씬한 모델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다니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만 해도 안드레는 185, 스티븐은 183, 앤 마리는 172, 나는 162. 나만 쏙 꺼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유전자가 많이 원망스럽다.
가는 길에 공원이 보이길래 그리로 가자고 했다.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본 공원들은 드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 위로 나무들이 어찌나 많던지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치기엔 많이 아쉬웠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들러보았는데 나무가 많지 않아 그런지 평범해 보였다. 푸른 잔디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쉬고 있는 대학생이 많은 흡사 대학 캠퍼스 같기도 했다.
코펜하겐에서는 니하운(Nyhavn)이라는 곳이 가장 예쁜 것 같다. 운하를 따라 줄지어 있는 건물들이 그 각각의 컬러와 매력을 발산하는 곳. 건물 앞의 노천카페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사람들. 바쁘면서도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그리고 인어공주상이 있는 바닷가도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배들이 정박하고 있어서 아주 아름답다. 덴마크의 바닷가 하늘이 유난히도 파란 것 같은 건 나만의 느낌일까? 계절 탓일까? 하늘은 아주 파랗고 구름은 아주 하얗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보다 싶다. 물이 많은 나라. 어디에 가도 호수가 있고 바다도 가까운 나라. 이번 여행에서 벨기에부터 네덜란드를 거쳐 덴마크에 오기까지 모두 물이 많아서 놀랐다. 운하와 강, 호수가 지천으로 보이는 나라들이다. 거기에 푸른 식물들과 나무가 무성한 나라들. 코펜하겐도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조금 근교로 나가면 호수와 나무들, 숲들이 뜬금없이 나타난다. 참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 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유럽에 가면 조상을 원망한다는. 미국은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고 유럽은 문화유산이 찬란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틀렸음을 이미 20년 전 영국을 여행했을 때 깨달았다. 그때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최북단 네스호까지 버스여행을 했는데 가는 길의 자연이 얼마나 숨 막히게 아름답던지 거기서 유럽은 하나님과 조상을 함께 원망해야 하는 나라임을 알았다. 덴마크도 마찬가지였다. 어딜 가도 감탄해 마지않는 아름다운 자연의 나라다.
안드레와 앤 마리가 데려간 뷔페식당은 어느 영화관 건물에 위치한 Sult라는 식당이었다. 뷔페지만 쓸데없는 음식수만 늘어놓은 곳이 아니라 음식 수는 많지 않아도 고급지고 퀄리티 넘치는 뷔페식당이었다. 이곳은 접시를 작은 것으로만 준다. 3 접시를 먹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안드레와 앤 마리의 집으로 갔다. 한국 드라마를 소개해 주겠다고 갔는데 올레의 집 넷플릭스에는 있는 별에서 온 그대가 안드레의 넷플릭스에는 뜨지 않는다. 도깨비도 태양의 후예도 없다. 마지못해 미스터 선샤인을 틀었는데 아무래도 주제도 무겁고 역사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듯하다. 2회 중간까지 보다가 우리는 그만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이후로 계속 보았는지는, 글쎄... 한국 드라마 전도사인 스티븐이 오늘도 침을 튀겨가며 한국 드라마 예찬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이 두 사람의 반응은 그다지이었다. 답답해하는 스티븐! 다행히 집에 돌아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휩쓸기 시작했고 결국 스티븐의 주장은 옳았다는 증명이 되었다. 12시가 넘어 돌아오는 기차엔 불금이라 그런지 술 취한 20대 남녀가 무척이나 많았다. 우리가 앉아 있던 의자 옆에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9명이 포개 앉아 손뼉 치며 떼창도 하고 웃고 떠든다. 6시면 집으로 돌아가는 조용한 미국생활에 익숙한 우린 이런 모습도 젊고 활기차서 보기 좋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장면이 이 젊은 도시에서 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