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아와 레팀노 (Chania & Reythmno)
크레태 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Chania를 챠니아 또는 카니아라고 했는데 진짜 발음은 ‘하니아‘더군요, 하니아의 'ㅎ'은 우리가 어떤 특정 외국어를 발음할 때, 특히 독일어의 ch와 비슷한, 목에서 꽤나 거칠게 나오는 ㅋ+ㅎ 의 'ㅎ'입니다. 뭔지 아시죠?
레팀노(Reythmno)는 하니아와 헤라클리온 사이에 있는 타운지만 하니아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레팀노를 잘 모르는 이름이라고 그냥 지나치시면 안 됩니다. 크레테의 가장 큰 도시이자 잘 발달된 세 도시는 1) 헤라클리온 2) 하니아 3) 레팀노인데 이중 가장 예쁘고 아기자기한 곳입니다. 먼저 하니아를 설명드리고 다음 레팀노, 그리고 헤라클리온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크레타 섬의 하니아는 한때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여러 문명이 교차한 항구 도시입니다. 항구에 가면 아주 이국적인 광경이 펼쳐집니다. 베네치아풍 등대와 요새가 우뚝 서 있고, 골목을 돌면 오스만식 모스크와 그리스 전통 가옥이 자연스럽게 어울려져 있는 곳이죠. 그뿐 아니라 방파제를 따라 걷노라면 출렁이는 바다와 항구 모습, 그리고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함께 어우러져 여유로운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광경에 흠뻑 젖어들게 된답니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시장과 작은 카페가 이어져 있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옛 시대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하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여행지일 뿐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박물관’ 같은 매력이 하니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하니아는 크레타 여행의 중심지로 꼽힐 만큼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도시입니다. 올드 타운은 하루 종일 관광객과 주변 상점들로 활기가 넘치고, 골목 곳곳의 부티크 호텔이나 전통 숙소는 머무는 것 자체가 부러울 정도로 멋진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신선한 해산물과 크레테의 전통 술인 라키 (Raki)를 즐길 수 있고, 저녁 무렵 항구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순간은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합니다. 또한 근교에는 지난번 제가 쓴 발로스 라군, 엘라포니시 비치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들이 있어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에도 좋습니다.
레팀노는 하니아보다 규모는 작습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이 패스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레팀노가 더 좋았습니다. 오히려 더 느긋하고 매우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지닌 도시입니다. 베네치아 요새가 도시를 지키고 있고, 골목에는 르네상스풍 저택과 오스만식 분수가 남아 있어 작은 산책만 해도 행복이 밀려오는 아기자기함이 가득하거든요. 여기저기서 유럽과 동양 문화가 만난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타베르나(전통 선술집)와 작은 술집들이 골목마다 늘어서 있어 마치 현지인이 된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요. 하니아가 역동적인 역사와 분주함과 활기참을 보여준다면, 레팀노는 전통과 휴식을 품은 소도시로, 두 도시를 함께 경험하면 크레타의 다채로운 얼굴을 한눈에 만날 수 있습니다.
레팀노 역시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오래된 골목에는 예술가의 공방과 전통 상점들이 숨어 있어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 좋고, 매년 여름 열리는 ‘르네상스 페스티벌’은 음악과 공연, 시장이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된다고 하네요. 저희가 간 계절은 4월 초라서 관광객이 많지 않았지만. 피크 시즌인 여름에 이 좁은 골목들이 어떻게 변할지는 가늠할 수 없네요. 그래서 다시 한번 피크시즌을 피하시라고 권해드립니다.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은 가족 여행객들에게 특히 인기 있고, 구시가지의 소박한 타베르나에서는 현지인과 나란히 앉아 집밥 같은 식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레팀노에서 여행자들은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갖고 현지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듯한 ‘휴식의 도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앞 글에서 보여드린 저희가 묵은 에어비앤비 숙소도 이 레팀노의 한 바닷가에 있었답니다. 사람은 무척이나 주관적인 존재입니다. 집이 너무 맘에 들고 가족이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던 덕에 크레테에서 가장 좋은 기억은 레팀노에 남아있으니 말이에요.
끝으로 헤라클리온에 대해 살짝 언급할게요. 너무 큰 도시라 레스토랑 한 곳만 가고 패스한 곳이라 잘은 모르지만, 근교 크노소스 궁전 유적은 가 볼만한 곳입니다. 아니 꼭 가봐야 할 유적지입니다. 헤라클리온은 크레타 섬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로, 섬의 관문 역할을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크노소스 궁전과 가장 가까운 도시라서, 크레타 문명을 상징하는 거점이라 할 수 있죠. 베네치아 시대에는 거대한 성벽과 항구 요새가 지어졌고, 지금도 구도심을 걷다 보면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필수 관광 코스로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헤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입니다. 미노아 문명 유물을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시다시피 저희는 못 가봤습니다. 도심을 벗어나면 크노소스 궁전의 유적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리스 유적다운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항구 앞에 있는 쿨레스 요새는 해 질 녘 산책 코스로 인기 있습니다. 저희는 차로 돌아보기만 했는데, 시간이 있다면 꼭 더 머무르고 싶은 멋진 곳이었어요. 헤라클리온은 활기찬 시장과 레스토랑, 카페도 많아 역사 탐방과 일상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크레타 섬을 대표하는 유적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가운데 하나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약 기원전 2000년경에 건설되어, 전성기에는 수천 명이 살며 정치·종교·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미노타우로스 신화와 미궁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궁전은 여러 차례 지진과 재건을 거쳐 독특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데, 방과 복도가 얽히고설켜 있어 실제로도 미궁처럼 복잡합니다. 다채로운 벽화와 기둥 장식이 복원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시 크레타인의 생활, 종교의식, 예술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황소 도약(fresco of bull-leaping) 장면은 미노아인들의 신앙과 축제 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벽화입니다. 그러나 유적만 휭 둘러보면, 이런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꼭 미리 예습하시고 알고 방문하시기를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