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물 빠진다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단물 빠진다


시월이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아침,

이른 한파특보가 내려졌다.

잎에 색이 들기도 전에 나무들이 바빠졌다.

푸른 단풍은 생경하기만 할 뿐 감흥이 없으리라.

그리움이 많다는 것은 생을 관통해 나가며

지은 죄가 가볍지 않다는 거다.

잡지 않은 죄, 잡을 수 없었던 죄.

게다가 잊지 않고 있다는 방관의 죄까지.

한파에 몸을 사리며 푸른 멍이 들어가는 마음에

저주처럼 도사리고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회상의 온도에 감응하며 체감의 구멍을 뚫는다.

가을의 맛을 살릴 단물이 구멍들 사이로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덜 익은 단풍잎 하나 따서 잔에 띠워놓고

낮술이라도 한 대접해야겠다.

잃어버린 것들에게 푸념을 건네고

잊혀지지 않는 것들에게 돌아와 달라고

그리움을 호들갑스럽게 고백해야겠다.

그렇다고 메워질 구멍이 아닐지라도 빠져나온 단물을

단술처럼 마시는 것으로 불콰하게 가을에 맞서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을로부터의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