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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작 Oct 30. 2022

뒷모습

안아줄게

언제나 그래. 난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어.

너를 바라보면서.


해가 뜨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알람이 울려. 해초처럼 흐물거리는 팔을 뻗어 어렵게 알람을 끄지. 그러고 나서도 같은 소리가 몇 번은 더 울려야 넌 겨우 일어나. 비척비척 욕실로 걸어가는 모습이 퍽 안쓰럽기도 해. 씻고 나서는 좀 더 부리나케 움직이는 것 같아. 뭐 빠진 것 없나 급히 체크하는 모습은 매일 같더라. 마지막으로 가스 밸브, 콘센트, 전등 스위치를 꼼꼼히 확인하고 현관문을 나서. 그럼 난 조용히 속삭여. 잘 다녀와.


널 기다리면서 난 뭘 할까.


해가 머리 꼭대기 위까지 떠올랐다가 서서히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모습도, 새들이 날아들었다가 유리창 앞에서 급하게 방향을 트는 모습도,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 모습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네가 돌아올 시간이 돼. 네가 9시에 온다면 나는 7시부터 설레기 시작하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아마 멋대로 뛰어 대는 내 심장만이 붉게 보일 거야.


띠리리릭. 

네가 번호판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 등이 켜지네. 발자국 소리도 들려.


틱.

불을 밝힌 네가 돌연 한숨을 쉬어. 오늘 고됐나 봐.


소파에 털썩 앉은 네가 옆으로 스르르 넘어져. 마음 같아서는 씻고, 옷 갈아입고, 침대에 편하게 누우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난 마음 만은 네 가족인데. 가끔은 티를 내고 싶어. 나 여기에 있다고.

그렇게 얼마간 누워있다가 넌 욕실로 향해. 마치 아침에 힘겹게 들어가던 그 순간처럼. 얼마간 부산스럽다가 조용히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지. 피로한 눈을 감으면 다시 시작될 내일을 기다려. 네가 눈 뜰 순간을 기다려.


어둑한 밤중에는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이 생생해. 가판대 위에 있던 날 젊은 여자가 주워 들고는 활짝 웃고 있는 너에게 건넸어. 넌 날 보면서 눈을 빛냈어. 이렇게 예쁜 전등은 처음 본다고. 꽃 모양인 것까지 너무 자기 취향이라고. 네 웃음이 좋았어. 네가 제일 잘 보이는 탁자에 날 둔 것도 좋았어. 너의 일상을 내가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어.


잘 자, 내 친구. 내일도 널 반겨줄게.

너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보아줄게.

그러니까 한 번씩은 날 켜줘. 예쁜 주홍빛으로 널 빛낼 수 있게 해줘.


난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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