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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우진 Aug 09. 2021

[blah blah] 박존재

저 여기 있어요


박존재




다들 존재하고 계시나요?

저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차라리 입술이라도 편하게 ‘아직 명함이 없어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그냥 물 한 잔 마시겠습니다. 실은 더 많은 일들이 얽히고설켜 크기가 더욱 크지만요. 표면적으로만 보면 참 별꼴이겠지요. 저만 겪는 시기도 아닌데요. 사실 얼마 되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제가 더 확실히 살았다면, 일도 아닌 일이었을 텐데 말이죠. 2017년부터 매일 0.1%라도 발전하자며 매일 무언가를 해온 저도, 그 ‘확실히’의 기준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어쨌든 저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2014년 처음 제주도 여행을 하며 이방인이 되어보았을 때. 그때 저는 처음 외딴 사람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명함부터 내밀더군요. 명함. 네, 그 명함. 그 뒤론 그 명함 하나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존재한다고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고요. 그 뒤로 제 삶은 존재하기 위해, 살아졌습니다.


그렇게 책을 출판했고, 사진을 찍었고, 글도 썼습니다. 물론 디자인도 했죠. 기필코 존재하고 싶었습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작년 어떤 날엔, 존재 모를 어느 독자분께 한 통의 감사함을 받았습니다. 제 책에 대한 긴 감상이었죠. 그 글의 끝엔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길게 감사드리고, 길게 대답드렸습니다. 하지만 짧게는 이렇게도 대답드렸습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라졌죠. 표현이 조금 그런가요?, 그럼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야겠네요. 지금의 저에겐 내일을 위한 오늘만 존재합니다. 당장 다음 주에도 제가 이곳 대구에 있을지 서울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보장받은 미래는 없습니다. 보장받고자 계속해서 외치겠죠. 그런데 여전히 이 글에서도 슬프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단어는 보이지 않네요. 사실 별일은 아니거든요. 언제나 그렇듯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힘 빠지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좀 그렇습니다. 사라질 것 같으면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빽빽 질러보죠 뭐.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라면, 잘 보일 때까지 과하게 가까이 다가가 보죠 뭐. 저는 그저 이 시기마저도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용하겠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존재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겐 제가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라도, 저는 제 목표 아래 존재할 때까지 소리 지르겠습니다.



아, 혹자는 요즘 처음 만난 직장인 분들이 명함 없이, 직업에 대한 언급 없이 대화를 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우린 스스로의 존재에 더 집중하고 또,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것 또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그 전자의 명함, 직업이란 것을 가져보고 난 후 그걸 겪어보겠습니다. 일단은 미친 듯이 소리치겠습니다. 존재한다고요.


저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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